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영국과 프랑스 방문을 마치고 27일 오후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사진 뉴스1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선택은 변화보다 안정이었다. 길어지는 글로벌 경기 침체와 불확실한 경영 환경 속에 기존 사업 연속성에 무게를 둔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신사업을 발굴하는 ‘미래사업기획단(미사단)’을 신설해 ‘안정 속 혁신’을 꾀했다.〈본지 11월 27일 경제 3면〉
삼성전자는 27일 사장 승진 2명, 업무변경 3명 등 5명 규모의 2024년 정기 사장단 인사를 발표했다. 9명(사장승진 7명, 업무변경 2명)의 변화를 줬던 지난해보다 인사 폭이 크게 줄었다.
인사 시기도 매년 12월 초에 실시하던 예년에 비해 일주일 이상 앞당겼다. 올들어 3분기까지 주력인 반도체 사업에서만 13조원에 달하는 적자를 기록하는 등 실적 부진에 대해 경고등을 켜고, 내년 사업에 발 빠르게 착수하기 위해서다.
이날 삼성전자는 용석우(53) 디바이스부문(DX)부문 산하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부사장을 사업부장(사장)으로, 김원경(56) 경영지원실 글로벌협력실(GPA)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 인사했다. 용 신임 사장은 1970년생으로 TV 개발 전문가다. 이번 승진으로 TV 사업 글로벌 1위 입지를 다지고, 기술 리더십을 강화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용석우(왼쪽) 삼성전자 DX부문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장(사장), 김원경 삼성전자 Global Public Affairs실장(사장). 사진 삼성전자
또한 삼성전자는 투자전문사인 삼성성벤처투자 신임 대표에 기획재정부 출신의 삼성전자 김이태 부사장을 사장 승진해 내정했다. 이로써 삼성전자 사장단은 기존 16명에서 3명이 추가된 19명이 됐다.

김이태 삼성벤처투자 신임 대표(사장). 사진 삼성전자
김원경 신임 사장은 삼성의 ‘외교통’으로 꼽힌다. 외교통상부 출신인 김 신임 사장은 이날 2030년 부산엑스포 유치 유럽 출장을 마친 이재용 회장의 귀국길에도 동행했다.
기존 ‘한종희-경계현’ 대표이사 투톱 체제는 그대로 유지한다. 다만 한종희 DX부문장(부회장)이 겸임하던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장은 용 신임 사장이 맡게 된다. 경계현 반도체(DS)부문장은 삼성종합기술원(SAIT) 원장을 겸임한다.

전영현 삼성전자 미래사업기획단장(부회장, 왼쪽부터), 한종희 디바이스경험(DX) 부문장(부회장), 경계현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장(사장). 사진 삼성전자
삼성전자는 지난 2018년부터 ‘김기남(반도체)-김현석(가전)-고동진(모바일)’ 3인 대표 체제를 유지해오다 지난해 초 기존 경영진을 전원 교체하고 ‘디바이스-반도체’ 투톱 체제로 전환한 바 있다. 반도체 사업이 역대 최악의 실적을 냈다는 지적에 대해 삼성 측은 “글로벌 경영 환경 악화와 불확실한 대내외 환경에서 안정적인 리더십을 유지하고자 했다”며 “현 경영진이 회사 발전을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신 삼성전자는 이날 위기돌파의 메시지로 ‘미래사업기획단’을 신설하고, 전영현 삼성SDI 이사회 의장(부회장)이 단장을 맡는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측은 “미사단은 삼성전자와 전자 관계사와 관련해 10년 뒤 미래먹거리가 될 신사업을 발굴한다”며 “특정 부문에 종속되지 않고 대표 직속으로 편제된 조직으로 규모는 아직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과거 신사업추진단에서 삼성의 5대 신수종 사업을 기획해서, 현재 배터리 및 바이오 사업이 꽃을 피우는 시작이 됐다”며 “미사단 역시 비슷한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가 27일 사장 승진 2명, 위촉 업무 변경 3명 등 총 5명 규모의 2024년 정기 사장단 인사를 발표했다. 사진은 27일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 연합뉴스
이번에 발족한 미사단은 지난 2009년 삼성의 ‘신사업추진단’ 인사와 매우 흡사하다. 당시 삼성은 전략기획실 해체 이후 신규 사업추진, 업무 분장 및 조율 등에 어려움을 겪다가 부회장급 신사업추진단을 새롭게 만들었다. 수장 역시 이번 전영현 부회장과 마찬가지로 당시 삼성SDI의 김순택 사장을 부회장으로 승진시켜 단장을 맡게 했다.
재계 관계자는 “당시 신사업추진단은 삼성이 중앙집권 체제로 가기 위해 단계적으로 만든 조직이었다”며 “내년 1월 중순 이재용 회장의 ‘부당 합병’ 1심 선고 이후 과거 미래전략실과 같은 컨트롤타워 부활 논의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미사단 신설로 현행 투톱 체제에 집중된 힘을 분산시킨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영희 디자이너
재계에선 삼성의 ‘진짜 인사’는 내년 말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오는 2025년 3월 경계현·노태문(DX사업부)·박학규(경영지원실)·이정배(메모리사업부) 등 4명 사장의 임기가 종료되기 때문이다. 1970년대생인 용 사장을 발탁해 주요 사업을 넘긴 것도 향후 경영진 세대교체의 신호탄이라는 해석이다. 같은 맥락에서 삼성전자는 오는 29일로 예상되는 임원 인사에서도 1970~80년대생 정보기술(IT) 인재를 다수 발탁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