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반도체 모든 사업이 어렵다. 경영진 책임이다.”
노조의 불만 표출이 아니다. 삼성전자 반도체의 새 수장이 빠르게 내부를 점검한 뒤 내린 진단이다. 창사 이래 최대 적자와 창사 이래 첫 파업이라는 양대 난관 앞에, 최고 경영진부터 팽팽하게 긴장감을 조이는 모양새다. 30일 전영현 삼성전자 반도체(DS) 부문장(부회장)은 사내 게시판에 이같은 내용의 취임사를 올렸다. 정기 인사 시즌이 아님에도 지난 21일 전격 위촉된 전 전 부회장은 지난 28일부터 출근했다. 이틀간 임원 보고와 회의를 통해 각 사업 상황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지며, 이날 오전 9시 취임사를 올리는 것으로 본격 업무를 시작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별도의 취임식 등 행사 계획은 없다”라고 말했다.
’되는 게 없다’ 직격탄
그는 지난해 DS 부문이 회사 설립 후 최대 적자를 기록한 것을 언급하고는 “부동의 1위 메모리 사업은 거센 도전을 받고 있고, 파운드리 사업은 선두 업체와의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고, 시스템 LSI 사업도 고전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메모리·파운드리(위탁생산)·시스템’이라는 삼성전자 반도체의 사업 중 잘 되는 게 없다는 얘기다. 현재 처한 상황이 단지 글로벌 반도체 업황 부진 때문이거나 AI 반도체에 사용되는 HBM(고대역폭메모리)이라는 특정 제품 개발이 늦었다는 등의 문제가 아닌, 회사의 본질적 위기라고 진단한 것이다.
노조엔 “경영진 책임”, 기술엔 ”방향 제대로”
앞서 전날인 29일 삼성전자 최대 노조인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가 파업을 선언하며 내세운 주된 이유가 “불공정한 보상”, “왜 임원이 잘못 결정한 걸 직원이 책임져야 하느냐”였다. 전삼노는 지난해 말 DS 부문 성과급이 ‘0’으로 책정된 것을 계기로 조합원이 급증해 현재는 2만8000명 이상이다. 이런 내부 불만에 대해 전 부회장이 어느 정도 공감을 표하며 다독인 셈이다. 그는 또한 “경영진과 구성원 모두가 한마음으로 힘을 모아 최고 반도체 기업의 위상을 되찾자”라고 독려했다.
기술적으로는 ‘방향’을 강조했다. 전 부회장은 “지금은 AI(인공지능) 시대”라며 “겪어보지 못한 미래”이자 “우리에게 큰 도전”이지만, “방향을 제대로 잡고 대응한다면 다시 없을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새로운 각오로 상황을 냉철하게 분석해 어려움을 극복할 방안을 반드시 찾겠다”라며 우수한 인재와 연구 노하우가 축적돼 있어 빠른 시간 안에 극복할 수 있다는 긍정적 전망도 내놨다. 그는 2000~2017년 삼성전자에서 메모리사업부 D램 설계팀장, 개발실장, 전략마케팅팀장, 메모리사업부장 등을 맡아 설계·개발·사업까지 모두 거쳤다. 지난 이틀간 사업 전 분야를 꼼꼼히 점검하며 ‘기술통 CEO’의 면모를 드러낸 것으로 알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