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매치 데뷔골 당시 세리머니를 재현하는 주민규. 김경록 기자
태극마크를 달고 감격을 첫 골을 터뜨린 주민규(34·울산 HD)는 활짝 웃었다. 그는 지난 6일 열린 싱가포르와의 북중미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5차전 원정경기에서 최전방 공격수로 선발 출전해 1골 3도움을 몰아치며 한국이 7-0으로 이기는 데 앞장섰다. 지난 3월 태국전에서 '만 33세 343일'의 나이로 역대 한국 최고령 A매치 데뷔 신기록 작성했던 주민규는 세 번째 출전이었던 싱가포르를 상대로 '34세 54일'의 나이로 A매치 데뷔골을 맛봤다. 한국 축구 최고령 A매치 데뷔골 역대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었다.

싱가포르전에서 1골 3도움을 몰아친 주민규. 로이터=연합뉴스

팬들의 환호를 더 크게, 더 오래 그리고 더 소중하게 듣겠다는 의미의 세리머니다. 김경록 기자
주민규는 A매치 데뷔골을 넣은 뒤 양손을 귀에 갖다 대는 세리머니를 펼쳤다. 그는 "대표팀 경기에서 팬들이 '주민규'를 외쳐주기까지 무려 34년이나 걸렸다. 팬들의 환호를 더 크게, 더 오래 그리고 더 소중하게 듣겠다는 의미의 세리머니다. 앞으로 더 자주 선보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팬들은 주민규에게 '주리 케인'이라고 부른다. 주민규와 잉글랜드의 간판 스트라이커 해리 케인(31·바이에른 뮌헨)을 합친 말이다.

2022년 토트넘 방한경기 당시 해리 케인(가운데)와 볼 경합하는 K리그 올스타팀의 주민규(왼쪽). 뉴스1

싱가포르전에서 손흥민(오른쪽)의 골을 어시스트한 주민규. 연합뉴스
주민규가 국가대표 공격수가 되는 과정은 한 편의 드라마다. 가장 밑바닥인 연습생으로 시작해 축구 선수로는 최고 무대인 대표팀까지 올랐기 때문이다. 한양대를 졸업한 주민규는 2013년 참가한 K리그 드래프트 참가했다. 하지만 지명을 받지 못하면서 연습생으로 당시 2부 리그 팀 고양HiFC(해체)에 입단했다. 당시 연봉은 2000만원에 불과했지만, 처우나 팀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주민규는 "홍명보 감독의 격려와 응원이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김경록 기자

주민규는 "싱가포르전이 마지막 대표팀 경기라는 마음가짐으로 간절하게 뛰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탄탄한 체격(1m83㎝·82㎏)에 정교한 킥 능력을 앞세운 그는 이랜드 입단 첫 시즌에 23골을 터뜨리며 2부리그를 평정했다. 2019년엔 울산 유니폼을 입고 꿈에 그리던 1부 무대를 밟았다. 주전 경쟁에서 밀려 2020년 제주 유나이티드로 이적했지만, 이듬해 22골을 터뜨리며 생애 첫 1부 리그 득점왕을 차지했다. 2023년 다시 울산으로 이적한 그는 같은 해 또다시 득점왕(17골)에 오르며 30대 중반의 나이에도 전성기를 이어갔다.

주민규는 K리그를 평정한 대표 골잡이다. 뉴시스

서른넷에도 여전히 전성기를 달리는 주민규. 김경록 기자
주민규는 2026 북중미월드컵이 개막할 때면 36살이 된다. 그는 "팬들이 '늦게 핀 꽃이 더 아름답다'라는 걸개를 만들어 응원해주셨다. 나이가 더 많아질수록 세울 기록들도 생기겠다는 동기부여가 됐다. 늦었지만, 활짝 폈으니 다음 A매치만 보고 열심히 달리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골을 넣을 수만 있다면 머리, 발, 배, 엉덩이 등 신체 부위를 가리지 않겠다. 최대한 오래 버티겠다. 지금 말할 수 있는 건 '서른넷 주민규의 컨디션이 굉장히 좋다'는 것뿐"이라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