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게실보다 차라리 밖이 낫네요.
바깥 기온이 36도를 넘어선 5일 정오쯤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의 한 공사현장에서 3개월째 일하는 이모(49)씨는 임시휴게실 바깥 의자에 앉아 휴대용 선풍기로나마 열을 식히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씨는 “5층에도 휴게실이 있지만 오늘 같은 날은 더워서 안에 있을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 공사 현장엔 100여명 넘는 건설 노동자가 매일같이 일하고 있지만, 정수기와 제빙기는 밖에 설치된 가로 5m 크기 임시휴게실에 1대씩 설치된 게 전부다. 땀에 머리와 옷이 푹 젖은 현장 근로자들은 수시로 휴게실을 들락거리며 제빙기 속 얼음을 봉투에 담아 머리 위에 올렸다. 겨우 오전 일과가 끝난 시간이었지만 제빙기 속 얼음은 3분의 1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1층을 수시로 왔다갔다할 수 없는 10층 옥상 작업자들은 이마저도 그림의 떡이다. 이들은 냉동고에 보관된 얼음물을 미리 준비해 온 보냉백에 챙겨갔다.
마트나 백화점 주차장 안내요원 또는 카트정리 작업자들 역시 온열질환 위험에 노출돼 있긴 마찬가지다. 지난해 6월엔 서울 영등포구 한 주차장에서 카트를 옮기던 20대 직원이 폭염에 사망하기도 했다. 사건 이후 사용자 측은 무리한 작업을 막기 위해 한 번에 최대 6개 카트만 옮기도록 내부규정도 바꿨다. 하지만 이날 오후 1시쯤 해당 마트 직원들은 평균 10개가량 카트를 옮기고 있었다. 한 번에 옮기는 카트 개수가 줄면 그만큼 하루 동안 이동 거리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차량 열기 등으로 주차장 온도는 여전히 바깥보다 2도 높은 38도를 가리켰고 습도는 50%에 육박했다.
행정안전부는 지난달 31일부터 폭염 위기경보 수준을 ‘심각’으로 상향하고 낮 시간대 야외활동이나 작업 최소화할 것 권고하고 있으나 이처럼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일부는 온열질환 위험에 크게 노출된 상황이다. 지난 3일 기준 온열질환자는 1546명, 이 중 사망자는 11명. 4일 전남 순천에서 숨진 2명을 포함하면 올해 온열질환으로 인한 사망자는 총 13명이다.
노동부 역시 온열질환 예방 가이드를 매년 배포하고 있으나 권고사항일 뿐 법적 구속력은 없다. 국회에는 폭염이나 한파 상황에서 작업을 중지하도록 하는 내용의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등이 4건 발의돼 있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는 “현재는 폭염이나 한파시 작업장 대응 방침이 노동부 내부 지침 수준에 그치기 때문에 법적 구속력이 없다”며 “사업주 처벌 조항을 만들지 않더라도 법적 근거를 마련해 실효성 있게 작업자들의 안전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