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잘 어울리시네요." "그래요? 감사합니다. (웃음)"
템플스테이 참가자라면 누구나 입는 회색 법복도 이곳에선 '플러팅(호감 표현)' 소재가 됐다. 금욕의 공간으로 여겨지는 사찰에 모인 30대 남녀 10쌍은 거침없이 자신의 매력을 뽐내고, '내 짝이다' 싶은 이성에겐 적극적으로 마음을 표현했다. 지난 9~10일 동해안을 품은 강원도 양양 낙산사에서 펼쳐진 '나는 절로' 참가자들 이야기다. '나는 절로'는 조계종사회복지재단이 저출생 문제를 극복하고자 보건복지부와 협력해 지난해 11월 시작한 1박 2일 미팅 프로그램이다. 이번 5기 모집엔 남자 701명, 여자 773명이 지원해 '70대 1'이라는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참가자 선정 기준으로는 마지막 연애 기간, 나이 등이 고려됐지만, "결혼을 향한 간절함을 가장 중요하게 봤다"는 게 재단 대표이사 묘장 스님 설명이다. 저출생·만혼이 자리 잡은 한국 사회에서 이례적인 '사찰 미팅'의 흥행세에 일본 NHK방송 등 외신에서도 취재를 왔다.
도착 직후 자기소개 시간부터 참가자들은 적극적이었다. 기업 연구원이라는 견우 5호(36)는 "장점이 한 100가지 정도 되는데, 여기서 두 가지만 풀겠다"며 "첫째는 목소리가 좋고 둘째는 호불호가 없어 무엇을 해도 다 좋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나머지 98개는 차차 말씀드리겠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공공기관에 재직 중인 직녀 3호(31)는 "제 성격이 발랄한 편이라 '인생이 무료하다' 싶으면 저를 데려가시면 좋을 것"이라며 "'나는 절로'에 오니 어깨춤이 절로 나네요"라고 인사해 호응을 얻었다. "부모님께서 절에서 만나 결혼하셔서 여기서 좋은 분 만나 결혼까지 가고 싶다"(직녀 4호) 등 결혼·육아에 대한 의지도 눈에 띄었다.
저녁 식사 후 조계종 측에서 준비한 오색빛깔 한복으로 갈아입자 후반전이 시작됐다. 땀이 비 오듯 흐르는 32도 폭염에도 한복 차림의 참가자들은 달뜬 얼굴로 해수관음상이 있는 봉우리에 올랐다. 이어진 1대1 로테이션 차담, 야간 자유 데이트까지 숨 가쁘게 이어지는 일정 속에 서로를 알아간 참가자들은 잠들기 전 문자로 최종 호감 상대를 선택했다.
둘째 날(10일) 아침 발표된 매칭 결과는 총 6쌍의 커플 탄생. '꿈이 이뤄지는 곳'이라는 낙산사 수식어답게 참가자 60%가 소원대로 짝을 찾았다. '나는 절로' 역대 최고 성사율이다.
직녀 9호(31)는 "결혼정보회사를 통하면 조건은 알 수 있겠지만, 인성은 알기 어렵다. 반면 '나는 절로'는 종교단체에서 주최하는 프로그램이라 이곳에 신청한 것 자체가 인성이 믿을만하지 않을까 싶었다"고 말했다. 직녀 9호와 매칭된 견우 3호(34)도 "소개팅을 하면 조건이나 환경, 외모 등을 먼저 따지게 되는데, 여기서는 사람 자체를 먼저 보게 됐다. 좀 더 진실한 마음으로 만날 수 있었다"고 했다.
최근 불교계가 젊은 세대 사이에서 긍정적 인식을 형성한 점도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견우 5호는 "불교는 특히 MZ 세대와 소통을 많이 하는 느낌"이라며 "'나는 절로'도 스님들이 진중하게 사회 문제에 대해 말하는 걸 보고 좋은 취지에 공감됐다"고 말했다.
이번에 짝을 찾지 못한 직녀 6호(34)는 "결혼 연령이 늦어지면서 경력 등 각자에게 중요한 가치들은 커진 동시에, 집값을 비롯한 (결혼에 따른) 비용은 너무 비싸졌다"며 "여러 가지 고려할 게 많아지니 인연을 찾기 어려워진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런 만남 주선 프로그램을 지원하되, 만남 이후 단계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겠다고 강조했다. 9일 낙산사에서 축사한 주형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은 "아직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는 기쁜 마음과 함께 (정부가) 정말 잘해야겠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다시 느낀다. 좋은 반려자를 만나는 데 제약이 되는 부분을 걷어내고 디딤돌이 돼드리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