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현안, 하나씩 해결하자"
이에 윤석열 대통령도 "우리 두 사람의 견고한 신뢰를 기반으로 지난 한 해 반 동안 한·일 관계는 크게 개선됐다"고 화답했다. 두 정상은 이번 회담을 통해 국민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다양한 협력 구상을 공개했다. '제3국 내 재외국민보호 협력 각서'를 체결해 제3국에서 자국민을 긴급 대피할 시 적극 협력하기로 했다. 또 양국 국민이 상대국을 방문할 때 자국 공항에서 입국 심사를 미리 하는 '사전 입국심사' 제도 도입도 적극적으로 논의하기로 했다.
정부 소식통은 "내년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을 앞두고 관계 개선의 혜택을 양국 국민이 실제 체감할 수 있도록 하는 다양한 아이디어가 하나씩 현실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시다 총리는 또 윤 대통령이 지난달 15일 발표한 '8·15 독트린'에 대해서도 "지지한다"는 입장을 재차 확인하며 정부의 통일 구상에 힘을 실었다.
일본이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새로운 조치를 취한 건 기시다 총리의 방한을 하루 앞둔 지난 5일 우키시마호 승선자 명부가 담긴 자료 19건을 전달한 게 전부다. 기시다 총리의 '고별 방한'이었던 만큼 불편한 이슈는 되도록 피하고 미래지향적인 관계 개선에 주로 방점을 찍었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기시다 총리의 마지막 방한이 이렇게 마무리되면서 차기 내각에서도 관련 이슈에 대해 '기시다 이상을 바라긴 어려워졌다'는 우려가 나온다. 1년 반 만에 판결금 지급 재원 고갈 사태를 맞은 강제징용 '제3자 변제' 문제 등과 관련한 제대로 된 마무리 작업이 이뤄지지 않은 채 추상적으로 관계 발전의 의지만 다지는 건 충분치 않다는 지적이다.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시다 총리는 이번 방한을 통해 차기 일본 정부에서도 원만한 한·일 관계가 지속되기를 바란다는 점을 행동으로 보여줬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핵심적인 갈등 사안을 자꾸 피하기만 하는 건 양국 관계에 궁극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과거사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방안을 모색하고 관련 대화를 지속적으로 타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日 언론 "역사 문제는 위험 요소"
일본의 새 총리 선출과 함께 내년에 맞이할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은 양국 간 과제로 꼽혔다. 이와 관련, 요미우리는 "한국은 1998년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발전시킬 '새 공동 문서'를 발표하려 하며 일본 역시 이에 대해 긍정적"이라고 보도했다. 마이니치도 "한국 정부 내에서 새로운 파트너십 선언을 내놓는 방안 등이 검토되고 있다"며 "다만 현재 우호 무드를 유지하고 여론의 일정한 지지를 얻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전망했다.
일본 언론은 현재 한·일 관계의 위험 요소로 '역사 문제'를 꼽았다. 한국 내 정치 상황에 따라 한·일 관계가 윤석열 정부의 '성과'가 아닌 '약점'이 될 위험도 있다는 것이다. 마이니치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이 공동 기자회견을 하지 않은 건 "야당으로부터의 공격 소재가 될 수 있다는 한국 측 우려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요미우리도 "윤석열 정부가 야당으로부터 '매국 정부'라는 비판을 받는 점은 한·일 관계에 위기 요소"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는 일본의 새 총리가 한국과의 외교에서 어떤 자세를 보일지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