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나쁜 기운 누르고 행운 부른다는 중국 중추절 토란

중국에서는 중추절 저녁 둥근 보름달을 바라보며 구운 토란을 나눠 먹는다. 바이두(百度)

중국에서는 중추절 저녁 둥근 보름달을 바라보며 구운 토란을 나눠 먹는다. 바이두(百度)

우리나라는 추석에 토란국을 끓여 먹는데 중국도 역시 중추절에는 토란을 먹는다. 다양한 토란 음식이 있지만 주로 중추절 저녁 보름달을 바라보며 군고구마 까먹듯 구운 토란을 먹는다고 한다.

추석 토란은 한국에서도 먹는 지방이 있고 안 먹는 곳도 있다. 중국 역시 지역별로 차이가 있다. 북경을 비롯해 화북에서는 중추절에 특별히 토란을 먹지 않지만 상해나 항주를 비롯해 장쑤, 저장, 광둥 지역에서는 중추절에 토란을 빼놓지 않는다고 한다. 토란 재배 유무에 따른 지역별 풍속 차이일 것이다.

참고로 일본에서도 예전에는 일본 추석에 토란을 먹었다. 일본도 옛날에는 음력 8월 15일을 중추의 보름달(中秋の名月)이라며 명절로 지냈는데 교토를 중심으로 한 관서 지방에서는 토란이 필수 명절 음식이었다고 한다. 심지어 이날을 우명월(芋名月), 이모메이게츠라고 불렀는데 이모(芋-いも)는 토란, 메이게츠(名月-めいげつ)는 보름달이니까 직역하면 토란 보름달이라는 뜻이다.

토란은 이렇게 한·중·일 공통의 추석(중추절) 명절 음식이었는데 세 나라 모두 평소 토란을 그렇게 열심히, 즐겨 먹는 것 같지 않은데 왜 이런 토란을 굳이 명절 음식으로 삼았던 것일까?

여러 배경이 있겠지만 일단은 추석 무렵이 토란의 수확철인데다 옛날에는 토란이 일반 백성들의 주요 식량이었기 때문일 것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아직 벼농사가 널리 퍼지지 않아 쌀은 상류층의 곡식이었고 남미가 원산지인 감자와 고구마는 근대 이후 유럽을 거쳐 아시아에 전해졌으니 그사이 서민들은 토란을 주요 곡식으로 삼았고 특히 재난으로 양식이 떨어졌을 때는 토란을 먹으며 굶주림을 견뎠다.


특히 중국의 경우가 그랬다. 옛 문헌을 통해 그런 정황을 엿볼 수 있다. 사마천의 『사기』「화식열전」에는 촉나라 민산(岷山) 아래의 기름진 땅에는 토란이 자라고 있어 이곳 사람들은 아무리 흉년이 들어도 굶지 않는다고 나온다. 민산은 지금의 중국 쓰촨성과 간쑤성 사이에 있는 산이다.

전설처럼 전해지는 이야기도 있다. 서기 1세기 왕망이 유방이 세운 한나라, 즉 전한을 멸망시키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자 유방의 후손인 유수가 군대를 일으켜 왕망을 공격했지만 오히려 역공을 당해 왕망의 군대에 포위됐다. 몇 날 며칠을 굶주림에 시달려 전멸당하기 직전, 설상가상으로 왕망이 주변에 불을 지르며 화공을 펼쳤다.

굶어 죽기 전 불에 타 죽을 판국이었는데 때마침 하늘에 먹구름이 끼더니 폭우가 쏟아졌다. 불이 꺼진 후 불탄 자리에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르며 구수한 냄새가 퍼졌기에 땅을 파보니 알맞게 구워진 토란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굶주린 병사들이 이 토란을 캐 먹고는 기운을 차려 왕망을 공격해 마침내 승리를 거뒀다.

이렇게 다시 세워진 나라가 후한이고 폭우가 쏟아진 날이 음력 8월 15일이었기에 이를 기념해 토란이 훗날 중추절 명절 음식이 됐다는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전설 같은 이야기지만 어쨌든 역사책 사기와 입소문을 토대로 추정컨대 2,000년 전 한나라 무렵에는 토란이 백성들의 주요 식량이었고 재난이 닥쳤을 때 굶주림을 면하게 해준 구황작물이었던 것만큼은 분명하다. 그렇기에 토란이 중국에서도 중추절 명절 음식이 됐을 것이다.

소동파 집안에서 끓였던 전통적인 토란국 '옥삼갱(玉糝羹)'을 재현한 영상 갈무리. 소후 비디오(搜狐視頻)

소동파 집안에서 끓였던 전통적인 토란국 '옥삼갱(玉糝羹)'을 재현한 영상 갈무리. 소후 비디오(搜狐視頻)

이런저런 이유로 옛날 중국에서는 토란에 대해 특별한 환상을 품었다. 먼저 토란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는 것인데 음식 맛도 모른다고 타박하기에는 너무나 유명한 인물이 한 소리다.

중국 ‘최고’의 미식가이며 중국에서 중추절이 명절로 자리 잡기 시작할 무렵인 송나라 때 사람인 소동파가 한 말로 토란을 놓고 땅 위에 이보다 더 좋은 음식은 없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옛 문인들이 감탄해 마지않았던 요리로 옥삼갱(玉糝羹)이라는 국이 있는데 빛깔이 옥처럼 맑고 고운 채솟국으로 소동파 집안에서 끓인 토란국이다. 그러니 소동파가 토란을 좋아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옛날 중국 사람들 웃으면 복이 오듯 토란을 먹어도 복이 온다고 믿었다. 그래서 중추절이면 보름달 바라보며 군고구마 먹듯이 구운 토란 껍질을 벗겨 먹으며 소원을 빌었다. 토란 껍질을 까먹으면 액땜을 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인데 새까맣게 그슬린 토란이 귀신처럼 보였는지 귀신 껍데기를 벗기듯 나쁜 기운을 누를 수 있다는 것이다.

동시에 행운이 찾아온다고도 믿었다. 중국 특유의 단어 풀이, 해음(諧音)에서 생겨난 풍속으로 토란은 중국어로 위나이(芋艿)라고 한다. 그런데 이 말이 행운이 찾아온다는 뜻의 윈라이(運來)와 발음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런 만큼 달의 정기에 더해 토란에 담긴 행운이 더해져 복 받기를 소원했던 것이다.

토란 사랑이 이렇게 각별했던 것을 보면 옛날 중국에서 토란은 정말 구원의 식품이었던 것 같다.

윤덕노 음식문화 저술가

더차이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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