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폭스바겐의 준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 ‘아틀라스’가 내년 출시될 예정이란 소식에, 소비자들 사이에서 날 선 반응이 터져 나왔다. 이 차량이 2017년부터 북미 시장에서 판매됐는데, 그 사이 두 차례 페이스리프트(부분변경)를 거치긴 했지만한국엔 무려 8년이나 늦게 출시되는 상황이라서다.
15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시장에서 공개된 외산차가 한국에 출시하기까지는 약 2년이 걸린다. 수입차 업계의 한 관계자는 “처음부터 한국 시장을 타깃으로 출시된 차량이 아닌 경우 한국 정부의 인증을 받기 위해 별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 소비자들은 불만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이미 ‘철 지난’ 차량이 국내에선 신차로 인도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볼보는 지난해 6월 처음 공개한 소형전기 SUV EX30에 대해 국내에선 반년이 지난 지난해 12월부터 사전예약을 진행했다. 당초 올해 6~7월 국내 소비자들에게 인도될 예정이었지만, 국내 인증 절차 등으로 일정이 밀리면서 여전히 차량이 출고되지 않고 있다.
결국 볼보는 연식 변경 모델을 소비자들에게 인도하는 것으로 전략을 바꿨다. ‘2025년형’으로 꼬리표를 바꿔 달 예정이지만, 소비자 입장에선 2023년 출시된 차량을 2025년형으로 받게 됐다. 볼보코리아 관계자는 “예정대로였다면 2024년형 차량이 인도되었겠지만, 출시일정이 연기되며 소비자들의 선호도를 고려해 2025년형을 전달하기로 했다”며 “연식변경 모델임에도 새롭게 인증 절차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BMW는 지난해 10월 프리미엄 세단 ‘5시리즈’의 8세대 완전변경 모델(뉴 5시리즈)을 한국에서 전 세계 처음으로 출시했다. BMW코리아 관계자는 “5시리즈가 한국 시장에서 의미 있는 모델인 만큼 본사에서도 한국 시장을 중요하게 보고 이런 결정을 했다”며 “다른 모델도 글로벌 출시 이후 한국 출시까지 시차가 3개월 내외로 짧은 편이다”라고 말했다.
사실 차량 연식을 어떻게 정의할 지에 대한 법적인 기준은 없다. 통상 연식은 자동차 업계의 마케팅 수단으로 쓰여 왔다. 현대차는 지난 6월 준대형 세단 그랜저의 연식변경 모델인 ‘2025 그랜저’를 출시했다. 기아는 2023년 1월 ‘니로’의 연식변경 모델을 출시하며 11개월이나 앞선 ‘2024년형 니로’라고 명명해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국내 완성차 업계는 통상 연말이 가까워지는 4분기에 다음 해 모델명을 부여한 차량을 출시해 신년 판매 전략을 세워왔는데, 기아 니로가 이 관행을 깼다는 평가가 나왔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자동차 연식 부여는 자동차 회사의 고유 권한이라 시장 상황 등을 다양하게 검토해 결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차량 연식 부여에 대한 기준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홍대순 광운대 경영대학원장은 “차량 연식은 중고차 판매 가격에 영향을 주므로 소비자가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구매하는 게 중요하다”면서도 “한국은 수입차 구매력이 높은 국가인 만큼, 소비자가 빠르게 신제품을 향유할 수 있도록 글로벌 기업의 전략 변화를 유도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