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할수록 미국, 안 될수록 x86
위기의 반도체 공룡 인텔이 낸 구조조정 안의 핵심이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제조)는 회사를 떼어내고, 미국 밖 대형 투자는 중단하며, 주력인 x86 중앙처리장치(CPU) 위주로 제품군을 정리한다. 시가총액이 장부 가치 아래로 내려간 인텔이 벼랑 끝에서 낸 자구책이다. 미국 빅테크 아마존과 미 국방부는 반도체 제조 물량을 줘 인텔을 돕기로 했다. 인텔이 독일·폴란드·말레이시아의 수십조원 규모 투자를 멈추면서, ‘유럽산 반도체’와 ‘동남아 첨단 패키징’의 꿈은 꺾일 위기다. 인텔 개편으로, 전 세계 반도체 공급망은 또 한 번 요동치게 됐다.
이제는 놓아준다, 파운드리
인텔은 지난 2021년 초 파운드리 사업에 진출했지만, 반도체 회사들은 설계 경쟁사인 인텔의 파운드리에 선뜻 자사 칩 제조를 맡기지 않았다. 게다가 인텔은 문화가 다른 설계와 제조가 한 몸에 있고 몸집도 커, 변화가 느리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지난 2년간 매년 250억 달러(약 33조원)를 투자하고도 파운드리가 지지부진한 배경이다. 인텔 파운드리 분사로, IDM으로 파운드리 사업까지 크게 운영하는 회사는 사실상 삼성전자만 남게 됐다.
믿을 건 미국이다, 고마운 아마존·국방부
이날 인텔은 미국 국방부로부터 30억 달러(약 4조원)어치 군사용 반도체 공급 계약도 수주했다고 밝혔다. 이는 미국 정부가 사용할 최첨단 반도체의 신뢰할 수 있는 제조처를 늘리기 위한 ‘시큐어 엔클레이브(Secure Enclave)’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인텔이 미국 상무부로부터 받기로 한 85억 달러 보조금과는 별개라고 회사는 밝혔다. 이날 인텔은 ’설계와 제조 전반에 걸친 역량은 우리 강점의 원천’이라며 파운드리 매각설을 일축했는데, ‘첨단 반도체를 제조할 수 있는 유일한 미국 기업’으로 미국 국방·보안용 반도체 제조를 도맡겠다는 포부다.
EU는 제낀다, 독일·폴란드 팹 건설 중단
앞서 인텔은 지난해 독일에 300억 유로(약 44조원), 폴란드에 42억 유로(6조원)를 투자해 반도체 제조(독일) 및 패키징·테스트(폴란드) 기지를 건설한다고 밝혔었다. 유럽연합(EU)의 반도체법(Chips Act)에 따라, 투자금의 3분의 1은 독일과 폴란드 정부가 댈 참이었다. 그러나 내 코가 석 자인 인텔의 건설 중단 선언으로 ‘2030년 EU가 세계 반도체 시장 20%를 차지하겠다’라는 EU의 꿈은 커다란 암초를 만나게 됐다. 이로써 인텔이 진행 중이던 대형 건설 프로젝트 중, 미국과 이스라엘, 3나노 반도체 양산을 갓 시작한 아일랜드 외 해외 건설은 모두 중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