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김모(32)씨는 8월부터 두 달째 왼팔에 CGM(연속혈당측정기)을 붙이고 다니며 혈당을 수시로 확인하고 있다. CGM은 팔에 부착한 센서와 스마트폰을 연동해 혈당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는 기기다. 김씨는 “지난여름 건강검진을 한 결과 ‘당뇨는 아니지만 혈당이 높아져 위험할 수 있다’는 경고를 받았다”며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된다는 얘기도 있어 탄수화물 조절 겸 혈당 체크를 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앱에서 실시간 그래프를 보며 탄수화물 중에서도 백미·라면 같은 음식이 혈당 상승에 바로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김씨는 이런 음식은 자제하고 있다. 또 ‘저탄건지’(저탄수화물 건강한 지방) 식단을 병행하며 ‘혈당 일기’를 쓰는 한편, 냉장고엔 제로 콜라·탄산수 등을 박스째 주문해 쟁여 뒀다. 그는 “체중계에 올라가는 대신 혈당 앱에 들어가는 게 루틴이 됐다”며 “시간별로 혈당 그래프를 확인하니 더 경각심이 생긴다”고 말했다.
최근 2030 젊은층 사이에서 ‘혈당관리’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CGM과 같은 의료기기 사용뿐 아니라 혈당 스파이크(glucose spike)를 막기 위한 ‘식사 순서 다이어트’(섬유질→단백질→탄수화물 섭취)나 사과발효식초(애사비) 섭취가 주목받으면서다. 직장인 박모(27)씨는 “입사하고 잦은 회식에 10㎏ 넘게 살이 쪘지만 식단을 엄격하게 관리하긴 어려웠다”며 “일반식을 하되, 혈당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되는 애사비와 삶은 달걀을 가방에 넣고 다닌다”고 말했다.
가수 강민경도 지난달 29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요즘 다들 혈당 신경 쓰시지 않나. 막차 타고 혈당관리 하고 있다”며 “아침에 일어나서 레몬즙 짠 물을 한 컵씩 마신다”고 밝혔다. 카카오톡엔 혈당을 낮게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키토제닉 식단’이나 ‘혈당관리 00일차 후기’ 등을 공유하는 오픈채팅방이 다수 올라와 있다. 키토제닉 식단은 탄수화물 섭취를 극도로 줄이고 지방 섭취를 늘려 지방이 분해될 때 나오는 케톤체를 주 에너지원으로 삼는 ‘저탄수화물 고지방’ 식단을 말한다.
4050의 주요 관심사로 여겨졌던 혈당관리가 젊은 세대의 키워드로 떠오른 건, ‘젊은 당뇨’로 불리는 2030 당뇨병 환자와 ‘당뇨 전 단계’ 위험군이 늘었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11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30대 당뇨 환자는 2018년 13만9682명에서 2022년 17만4485명으로 꾸준히 증가해 25% 가까이 늘었다. 대한당뇨병학회는 2022년 30대 10명 중 3명이 당뇨병 전 단계(공복혈당 100~125㎎/dℓ)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다이어트 목적의 저당 식습관을 실천하거나 건강한 삶을 추구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난 것도 ‘혈당관리 붐’에 한몫했다. 지난 2월부터 인공지능(AI) 혈당 관리 서비스를 제공 중인 ‘카카오 파스타’ 관계자는 “전체 이용자 중 36.9%가 2030에 해당한다”며 “혈당 스파이크·혈당 관리가 2024년 헬스케어 시장의 가장 큰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유행을 타고 제로 시장도 활황기를 맞았다. 액상과당이나 설탕 대신 아스파탐과 같은 인공 감미료가 첨가된 ‘제로’ 탄산·아이스크림·사탕을 찾는 소비자는 늘어나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는 2022년 기준 약 179억2000만 달러 수준이었던 전 세계 제로 시장 규모가 2027년까지 연평균 4%씩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젊은 당뇨’ 질환이 증가함에 따라 반대급부적으로 혈당관리를 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난 것은 긍정적이라면서도 제로 식품과 CGM의 효과를 다이어트와 연결 짓는 건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하상도 중앙대 식품공학과 교수는 “살이 찌는 데에는 유전·운동량·수면 등 다양한 요인이 있기에 혈당 관리에만 치중해 다른 중요한 체질 개선 습관을 놓치면 안 된다”며 “제로 식품도 개인마다 편차가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혈당 변화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한비만학회 관계자는 “당뇨병이 없는 사람들이 체중 감량을 위해 CGM을 사용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지만 비만 관리 목적으로 CGM을 사용하는 것과 관련해 의학적으로 입증된 바가 없다”고 밝혔다.
특히 키토제닉 식단의 경우 혈당 조절이 어려운 기존 당뇨 환자나 심혈관 질환자에게 저혈당증을 유발하고, 혈중 중성지방·콜레스테롤을 상승시켜 오히려 해로울 수 있다. 대한당뇨병·내분비·비만학회와 한국영양학회·지질동맥경화학회 등 5개 학회는 지난 2016년 ‘저탄고지 식사 열풍에 대한 공동 입장문’을 내고 “탄수화물·지방·단백질의 균형이 잘 잡힌 식단으로 적정 칼로리를 유지하는 것이 비만, 당뇨병 및 심혈관질환의 예방과 관리에 필수적”이라며 “열량 섭취를 줄이고 활동량 늘리기를 꾸준하게 실천해야 비만과 다양한 질환을 예방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