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학교에서 학생의 휴대전화를 수거해 보관하는 것이 인권 침해가 아니라는 국가인권위원회 결정이 나왔다. 그동안 관련 진정 사건에서 인권위는 “일괄 수거는 학생의 자유권을 과도하게 제한한다”고 판단해왔는데, 이를 뒤집은 것이다.
국가인권위는 7일 오후 전원위원회를 열어 휴대전화 일괄 수거 관련 진정 사건에 대해 “인권 침해라고 보기 어렵다”며 위원 8대 2의 의견으로 기각했다. 지난해 3월 전남의 한 고등학교 재학생이 “등교 시 휴대전화를 일괄 수거하는 행위는 인권 침해”라며 제기한 진정 사건에서다.
이는 기존 인권위 결정과 상반된 판단이다. 인권위는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관련 진정 300여건에서 일관되게 인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판단해왔다. 그러나 인권위 아동권리소위(소위원장 이충상 상임위원)는 지난 5월 “사안이 중대하고 사회적 파장이 미치는 범위가 넓다”며 사건을 전원위에 회부했다.
인권위 “휴대전화 일괄 수거 인권 침해 아냐”
인용 의견 측은 “휴대전화를 일괄 수거하는 규칙을 개정하라”는 사건조사 결과보고서의 권고를 따라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보고서에는 “희망자에 한해 학생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휴대전화를 수거하는 등 대안을 고려하지 않고 일괄 제출하게 하는 학내 규정은 통신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주장이 제시됐다. 또 “휴대전화는 단지 통신기기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를 생성·유지·발전시키는 도구이기 때문에 자율적 통제가 바람직하다”는 주장도 있었다고 한다.
반면 기각 의견 측은 “사이버 폭력, 교사 불법 촬영 사례 등 교내 휴대전화 사용에 따른 인권 침해가 심각하다”고 주장했다. 또 “쉬는 시간 사용을 허용하는 경우 이를 지도하느라 갈등과 징계가 발생하는 등 교사와 학생의 학습권 침해가 크다”는 주장도 나왔다. 과도한 휴대전화 사용 탓에 다른 학생과 상호작용이 감소하는 등 발달권이 침해된다는 주장도 제시됐다.
지난해 7월 유네스코(UNESCO)가 발표한 ‘2023 글로벌 교육 모니터’ 보고서도 기각 근거로 제시됐다. 유네스코는 보고서에서 “혼란과 학습 부진, 사이버 괴롭힘을 막기 위해 학교에서 스마트폰 사용을 제한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그간 인권위가 관련 사건에 과잉 개입해왔다는 의견도 나왔다고 한다. 인권위 아동소위 조사 결과, 인권위가 설치된 120개국 중 휴대전화 일괄 수거 사건을 인권침해로 결정한 인권위는 한 곳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인권위가 지난 5월 전국 500명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인권위가 휴대전화 일괄 수거 관련 학칙 개정을 권고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62.3%에 달했다.
이날 한 위원은 관련 사건에서 학교가 인권위 권고를 불수용하는 현실도 지적했다. 그는 “지난해부터 올해 5월까지 관련 진정 총 77개 중 8개 학교만이 권고를 수용했다”며 “불수용률이 90%에 달하는데 권고가 실효성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주장했다.
시민단체 “보수화된 인권위, 반인권적 판단” 반발
교내 휴대전화 사용은 해외에서도 논란은 있지만 전반적으로 금지되는 추세다. 프랑스는 이달부터 200개 중학교를 시범 정책 대상으로 선정해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했다. 등교할 때 교사에게 휴대전화를 제출하고 하교할 때 돌려받거나, 사물함에 봉인해야 한다. 뉴질랜드도 지난 5월 전국의 모든 초·중·고교에서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미국에선 지난해 9월 플로리다주(州) 오렌지 카운티가 교내 휴대전화 사용을 전면 금지했다. 지난달 23일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민주당)는 2026년 7월 1일까지 교내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 또는 제한하는 법안에 서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