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장호의 사자성어와 만인보] 간담상조(肝膽相照)와 유종원(柳宗元)

간담상조(肝膽相照), 서로가 마음속을 툭 털어놓고 숨김없이 친하게 사귄다는 뜻이다. 바이두

간담상조(肝膽相照), 서로가 마음속을 툭 털어놓고 숨김없이 친하게 사귄다는 뜻이다. 바이두

천산조비절(千山鳥飛絶), 만경인종멸(萬徑人蹤滅), 고주사립옹(孤舟蓑笠翁), 독조한강설(獨釣寒江雪). 한·중·일 교과서에 실리기도 하는 그 유명한 ‘강설(江雪)’이다. 송나라 정치가 겸 문인 범중엄(范仲淹)은 ‘당나라 오언절구 가운데 유종원(柳宗元. 773-819)의 이 시를 빼곤 뛰어난 작품이 없다’라며 극찬했다.

 
초반부는, 뭇 뫼에 새 한 마리 날지 않고 대부분의 길에 사람 발자국도 끊긴 어느 눈 내리는 겨울의 풍경화처럼 느껴진다. 이 적막한 풍경에 작은 배 한 척, 그리고 도롱이 걸치고 삿갓까지 머리에 눌러쓰고 낚시하는 한 노인이 더해진다. 그는 누구일까.

이번 사자성어는 간담상조(肝膽相照. 간 간, 쓸개 담, 서로 상, 비출 조)다. 앞의 두 글자 ‘간담’의 본래 뜻은 ‘간과 쓸개’다. 여기에선 ‘진정한 마음’이란 비유적 의미로 쓰였다. 뒤의 두 글자 ‘상조’는 ‘서로 비추어 보다’라는 뜻이다. 이 둘이 결합되어 ‘서로의 진정한 마음을 내보일 정도의 참된 우정’이란 의미가 된다. 하지만 과거의 쓰임은 정반대였다.

사실, 진정한 친구 사이라면 교류할 때 화려한 말이나 꾸밈이 필요하지 않다. 깊숙한 곳에 위치한 간이나 쓸개를 번거롭게 굳이 꺼내어 보여줄 이유는 더욱 없다.

한유와 함께 ‘당송 8대가’의 일원인 문장가 유종원은 당나라 수도 장안(長安)의 명문가 자손으로 태어났다. 자(字)는 자후(子厚)다. 일찌감치 과거에 급제하여 중앙 관료로 순탄하게 승진할 기회를 잡았지만 타고난 성품이 매우 강직했다. 신진 관료로서 ‘영정혁신(永貞革新)’에 참여했다. 하지만 환관들의 반격으로 혁신은 채 1년도 지속되지 못했고 유종원도 지방으로 좌천당하는 신세가 된다.


이런 곤경에 처하자 그는 ‘문장으로 도를 밝힌다(文以明道)’라는 새로운 인생 목표를 세웠다. 저술에 몰두하다가 안타깝게도 지방 근무지에서 병에 걸렸다. 46세에 일찍 세상을 하직했다. ‘천설(天說)’, ‘포사자설(捕蛇者說)’ 등 자신의 많은 원고를 과거 합격 동기로 인연이 시작된 절친 유우석(劉禹錫. 772-842)에게 남겼다.

실재로 유종원과 유우석은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 유우석이 파주자사(播州刺史)로 좌천되었을 때의 일이다. 파주는 오늘날 귀저우(貴州)성 준의(遵義)현 일대다. 과거 이곳은 중국 서남부의 아주 외진 곳이라 왕래하기가 쉽지 않았다. 임지로 떠날 날이 다가왔지만 80세가 넘은 노모를 모시던 유우석은 혼자 괴로워하고 있었다.

이를 안 유종원은 자신의 임지와 유우석의 임지를 바꿔달라고 여러 차례 상소를 올린다. 마침 유종원 자신도 지금의 광시(廣西)성 유주(柳州)시로 좌천을 당한 상태였는데, 준의보다 유주가 덜 외진 곳이었기 때문이다. 무척 당돌한 상소였다. 하지만 유종원의 상소는 효과를 발휘한다. 비록 임지 맞교환까진 아니지만, 유우석의 임지가 덜 외진 곳으로 바뀌고 노모와 함께 생활할 수 있게 됐다.

많은 후학들이 유종원의 인품과 그가 남긴 문장을 흠모했다. 그는 어휘를 고를 때 털끝만큼의 속기(俗氣)도 개입시키지 않았다. 또한 주장의 근거가 분명했기에 그의 글에 반박하기가 쉽지 않았다. 세종대왕도 한유, 유종원의 문장과 두보의 시를 꼭 익히라고 주위에 권했다.

사후에 한유도 유종원이 친구 유우석과 폄적지를 바꾸려 노력했던 이 일화와 선명하게 대비시키며 ‘유자후묘지명(柳子厚墓誌銘)’에 당시 세태를 기록해 꼬집었다. ‘간과 쓸개라도 보여줄 듯 행동하며, 하늘의 태양을 가리키며 눈물까지 흘려가며 살아서도 죽어서도 배반하지 말자고 마치 진실인 양 맹세도 한다. 하지만 일단 작은 이해관계라도 걸리면 소소한 이익까지 비교하며 시선을 외면하거나 모르는 사람처럼 대하기 일쑤다. 혹시 친구가 함정에 빠지면 손을 내밀어 구해줄 생각은 않고 구덩이로 더 깊이 밀어 넣고, 심지어 돌까지 던진다.’

다행히 현재 ‘간담상조’는 부정적 의미에서 긍정적 의미로 그 쓰임이 바뀌었다. ‘관포지교(管鮑之交)’, ‘문경지교(刎頸之交)’, ‘적성상견(赤誠相見) 등과 의미가 서로 통한다. 반대말로는 아귀다툼을 의미하는 ‘구심두각(鈎心斗角)’이 중국에서 자주 쓰인다.

홍장호 ㈜황씨홍씨 대표

더차이나칼럼

더차이나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