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선 초‧중‧고등학교와 군부대까지 텔레그램 등 보안 메신저앱을 통해 불법 딥페이크 음란물이 확산하자 국회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 개정 논의에 착수했다.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과 박은정 조국혁신당 의원이 각각 발의한 개정안의 핵심은 현재 아동‧청소년 대상 디지털 성범죄에만 허용되는 ‘신분 비공개수사 및 위장수사 허용 특례’를 성인 피해자 대상 딥페이크까지 확대하자는 것이다. 위장수사가 허용되면 경찰 등 수사관은 텔레그램 유료 채널같은 비공개 채팅방에서 경찰 신분을 숨기거나 가짜 신분증과 문서 등으로 신분을 위장해 딥페이크물 구매자이거나 판매하려는 범죄자인 척 행동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난달 24일 개정안의 적절성을 심사하기 위해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경찰과 법무부의 입장이 갈렸다. 경찰청은 “수사 기반 마련을 환영한다”고 했지만, 법무부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며 유보 입장을 냈다. 두 기관의 입장은 왜 엇갈렸을까.
텔레그램 잠입 영상물 인증…새 범죄 유발?
법무부와 일부 법사위원들이 우려를 표한 건 이 지점이다. 경찰의 영상물 인증이 ‘2차적인 광고‧판매’로 이어져, 경찰에 의해 딥페이크 영상물을 구매하는 범죄자가 생기면 어쩌냐는 것이다. 또 만약 경찰이 실적을 올리기 위해 새로운 텔레그램 방을 만들어 적극적으로 범죄를 교사할 경우 애초 범죄 의사가 ‘없던’ 이들도 수사기관의 계략에 허위음란물을 구매할 우려도 있다.
김승원 민주당 의원은 “비공개 수사관이 딥페이크 영상물 판매를 광고하고, 10대가 충동적으로 사겠다고 하면 처벌할 것이냐”고 의문을 표시했고,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은 “수괴급 제작자를 잡기 위한 수사인데, 소지하고 시청한 사람만 처벌받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석우 법무부 차관도 “새로운 범죄가 발생하고 피해자가 양산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경찰 “범죄자 신뢰 얻는 수단으로만 사용”
유통 총책이 만든 딥페이크 회원방에 입장한 구매자들에게 경찰이 영상물을 인증‧광고하는 건 위법이 아니라는 반론도 나왔다. “대법원은 범죄 의사가 있는 자에 대한 함정수사는 위법이 아니라고 한다(장동혁 국민의힘 의원)”는 것이다. 실제 대법원은 본래 범죄 의사가 없는 사람에게 수사기관이 계략을 써 범죄를 유발하는 건 위법이지만, 범죄 의사를 가진 사람에게 범행 기회를 주는 건 위법이 아니라고 판시한 바 있다. 홍 심의관은 “허위음란물을 판매하고 구매하려 텔레그램 방에 들어간 이들을 범죄 의사가 없다고 볼 수 있느냐”고 반박했다.
경찰은 위장수사가 남용될 우려에 대해서도 선을 그었다. 아동‧청소년 위장수사처럼 법원의 허가를 받아 적법한 절차로 시행하면 된다는 것이다. 또 “범의(범죄를 저지를 의사)를 가지지 않은 자에게 범의를 유발하는 행위는 하지 말아야 한다”고 명시한 현행 아동‧청소년보호법 시행령 제5조를 참고해 개정안을 만들 수도 있다. 차진아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특별한 범죄 유형에 한해 위장수사를 허가하고, 법치 원리에 어긋나지 않게 시행하도록 만들면 된다”고 설명했다.
국회 법사위는 개정안 심사를 유보하고 오는 20일까지 관계기관의 의견을 받기로 했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위장수사를 확대하지 않으면 딥페이크 범죄 수사는 갈수록 어려울 것”이라고 짚었다. 법무부 관계자는 “과거 위장수사 중 새로운 범죄가 유발된 적은 없는지 살피고 있다”며 “기관 사이 협의가 잘 진행되고 있다. 개정안 취지를 반대하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