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통일평화연구소가 이날 '핵무장 여론의 실체'를 주제로 진행한 세미나에서 정상미 국립외교원 연구교수·이경석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조교수는 핵무장과 관련한 찬·반 여론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분석한 결과를 공개했다. 조사는 올해 6월 여론조사 기관인 엠브레인리서치에 의뢰해 성인 남녀 1785명을 대상으로 온라인으로 이뤄졌다.
연구자들은 한국의 자체 핵무장 여부에 대한 찬·반을 물으면서 국가 위상, 군사 안보, 경제 타격, 한·미동맹과 주한미군 등 8가지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소를 함께 제시했다. 북핵 위협에 대한 대응인지 혹은 핵보유국으로서의 국가 위상을 선호하는 것인지, 경제적으로 타격이 있음에도 핵무장을 한다면 얼마만큼 참을 수 있을지 같은 핵무장 여론과 관련한 다양한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서였다.
연구자들은 경제제재에 따른 개인소득 감소가 핵무장 지지여론에 끼치는 영향을 검토했다. 구체적으로 한국의 핵무장 이후 경제 제재로 개인 소득이 직접적으로 줄어드는 상황을 가정하고, 이 상황이 6개월에서 최대 6년 지속하고 회복하는 경우와 사실상 영구히 영향을 미치는 경우를 세분화해 찬·반 여부를 물었다. 개인 소득 감소 비율은 파키스탄 사례를 참고해 25%로 설정했다. 그 결과 "25%의 개인 소득 감소 효과가 최대 4년까지 지속하고, 이후 대·내외적인 상황 변화로 경제 제재 효과가 완화된다면 핵무장을 지지한다"는 답이 53.3% 나왔다. 경제 제재의 효과가 6개월로 짧게 지속하고 회복된다면 찬성 비율은 57.8%로 더 올라갔다.
반면 소득 감소가 6년 이상 지속하거나(47.7%),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지속(37.0%)하는 경우에는 찬성 여론이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이번 연구에서 과반(50%) 이하는 핵무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가 있다. 이경석 교수는 "다만 바꿔 말하면 어떤 불이익을 감수하더라도 37%의 '콘크리트 지지층'은 핵무장을 지지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핵무장 찬성 여론을 높이는 요소도 있었다. 국가 위상·북핵 위협 독자 대응 등 외교·안보 요소 가운데 "핵무기 개발로 인해 세계 핵 클럽(핵보유국)에 가입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를 줬을 때 동의한다는 답변 비율이 61.8%로 가장 높았다. 즉 현재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자 국제적으로 합법적 핵보유국인 미국·영국·프랑스·중국·러시아와 동등한 수준의 국제 위상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가장 선호하는 요인으로 꼽았다는 의미다. 이는 "북핵 위협에 한국이 독자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52.6%)보다 9.2%포인트 높은 수치였다. 정상미 교수는 "이는 정책 입안자·전문가들과 일반 대중이 핵무장 필요성에 관한 인식에서 상당한 괴리가 있다는 얘기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핵무장의 반대 여론을 높이는 요소로는 "국제 규범 미준수국으로 낙인 찍히는 상황"을 가장 많이 꼽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시나리오에선 핵무장 찬성 여론이 37.6%까지 떨어졌다. 이는 "한·미 동맹 파기, 주한 미군 완전 철수"라는 최악의 외교·안보적 시나리오를 줬을 때(38.2%)보다도 낮은 수치였다. 이 역시 응답자들은 한국이란 나라의 국제적 지위가 달라지는지 여부를 핵무장 여부를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로 인식하고 있다는 해석을 할 수 있다.
일본의 핵무장 가능성이 증가하는 경우에도 찬성 비율은 절반 이하(47.3%)로 떨어지는 것으로 나왔다. 일본의 핵무장이 영향을 미치는 배경에 대해 연구자들은 "일본에 이어 한국까지 핵무장에 가담할 경우 아시아의 도미노 핵무장에 대한 우려가 작용했을 수 있다"고 해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