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틀 로얄’은 일본의 영화감독 후카사쿠 킨지(深作訢二)가 연출한 영화다. 요즘 넷플릭스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의 포맷과도 비슷하다. 특히 영화 속 대사가 올해 외식업계 종사자들이 느낀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한다.
「
한마디로 동료가 망한 건 슬프지만 그럼에도 정신 차리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인생은 게임이다. 끊임없이 싸워서 생존하라!
」지난달 딘타이펑(鼎泰豐·중국의 딤섬 전문 레스토랑)이 10월에 14개 매장을 폐점하고 중국 화베이(華北) 시장에서 철수하겠다고 발표했다. 딘타이펑은 중국의 중고가 레스토랑으로 주로 월수입 10만 위안(약 1895만 원) 이상의 중산층을 타깃으로 한다.
1인당 1000위안이 넘는 베이징의 고급 레스토랑 리퍼(Refer), 티아고(TIAGO), 오페라 밤바나(Opera Bambana) 등도 잇따라 문을 닫았다. 상하이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작년 5월에는 단가가 500위안(약 9만 5000원) 이상인 레스토랑이 2700여 곳이었으나 올해 7월, 1300여 개로 절반 아래로 감소했다.
올해 중추절(中鞦節·우리나라의 추석에 해당하는 중화권의 명절)에도 중국 소비 시장에 변화가 있었다. 월병(月餅·보름달을 본뜬 모양의 중국 과자) 가격이 최근 몇 년 사이 최저점으로 떨어졌다. CCTV(China Central Television·중국 중앙텔레비전)는 명절 전, 500위안(약 9만 5000원)이 넘던 고가 월병은 이미 시장에서 자취를 감췄고 100위안(약 1만 9000원)대 선물 세트가 주력상품이 됐다고 보도했다. 과거 1888위안(약 35만 8000원)짜리 월병 세트를 출시했던 베이징 국제무역호텔에서 이번에 내놓은 가장 비싼 월병 세트는 488위안(약 9만 2500원)에 불과했다. 매년 웃돈을 줘야 살 수 있었던 홍콩의 메이신(美心) 월병도 올해는 명절 1~2주 전부터 30%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됐다.
그렇다면 고급 레스토랑은 왜 기울고 있을까?
여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비즈니스 접대 수요가 줄어들면서 고급 레스토랑 영업이 큰 타격을 받았고 소비자들의 선택에도 변화가 있었다. 불경기가 지속됨에 따라 사람들은 한 끼 식사에 큰돈을 지출하는 욜로(YOLO)성 소비를 줄이고 있다. 글로벌 트렌드 리서치 회사 민텔(Mintel)의 조사에 따르면, 지금은 ‘신중한 소비’ 시대로 올해 들어 ‘고급 레스토랑에 매우 가고 싶어 하는’소비자 비율이 감소했다고 한다. 지난달 차이신(財新) 매거진도 1000위안(약 19만 원) 이상의 돈을 써야 하는 고급 레스토랑에 도전하던 젊은이들의 열기가 점차 식고 있으며 예약이 필수였던 고급 레스토랑들도 방문하면 바로 이용할 수 있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보도했다.
첫 번째, 비용이 지나치게 많이 든다.
중국의 작가이자 미식가인 차이란(蔡瀾)은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할 수 없다고들 하지만, 나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사람은 충분히 겉모습으로 평가할 수 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말은 고급 레스토랑 업계에서도 유효하다.
고급 레스토랑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는 고객이 단번에 ‘이 가격이 합당하다’라는 인상을 받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고급 레스토랑은 재료, 서비스, 분위기에 특히 공을 들이고 이러한 요소들은 비용을 증가시키는 직접적인 요인이 된다. 또한 고급 레스토랑은 대체로 번화한 지역에 자리 잡고 있어 일반 식당보다 임대료가 훨씬 비싸고 인건비도 높게 책정돼 있다. 모든 요인은 비용 증가로 이어진다. 두 번째, 표준화 혹은 규모화할 수 없다.
고급 레스토랑의 주요 매력 중 하나는 셰프에게 있다. 유일무이한 인적 자원이 레스토랑의 경쟁력이자 정체성인 셈이다. 즉 셰프가 바뀌면 손님들이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객단가를 높게 잡아도 규모가 작거나 표준화할 수 없다면 수익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세 번째, 고급 식재료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졌다
‘세계 3대 진미’로 불리는 거위 간(Foie gras·푸아그라), 블랙 트러플, 캐비어는 원래 고급 레스토랑에서만 접할 수 있는 희귀한 식재료였다. 그런데 현재 세계 푸아그라의 45%, 블랙 트러플의 70%, 캐비어의 60%가 중국에서 생산되면서 적어도 중국 소비자들에게 이 식재료들은 희소성을 잃었다. 많은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사용하는 칼루가 캐비어도 이커머스 플랫폼에서 70위안(약 만 3000원) 정도면 구매할 수 있다.
이에 중국의 많은 고급 레스토랑은 여러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점포 규모 축소다. 이는 가장 직접적인 비용 절감 방법으로 많은 레스토랑이 같은 상권 내에서 더 작은 매장으로 이전해 임대료 부담을 줄이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간접적인 가격 인하를 통해 소비자를 유치하려는 시도도 보인다. 일부 레스토랑은 가격을 낮춘 저렴한 세트 메뉴를 내놓았다. 예를 들어 1인당 800위안(약 15만 2000원) 이었던 신룽지(新榮記·베이징 미슐랭 가이드 3 스타 레스토랑)는 최근 398위안(약 7만 5000원)짜리 점심 세트를 출시했다.
일부 고급 중식 브랜드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서브 브랜드를 선보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 1인당 2500위안(약 47만 5000원) 이었던 차오산(潮汕) 요리 레스토랑은 항저우에 서브 브랜드를 출시했는데 1인당 객단가를 기존의 20% 수준인 500위안(약 9만 5000원)으로 낮췄다.
고급 광둥(廣東)-잔장(湛江·중국 남부에 있는 항구 도시) 요리 전문 레스토랑인 위거잔장(Yu Ge Zhanjiang·2024 상하이 미슐랭 가이드 레스토랑)도 최근 상하이에서 성공적으로 확장 중이다. 현지의 신선한 해산물을 이용한 깊고 풍부한 맛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이 레스토랑은 광둥의 전통적인 요리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특히 중국의 대도시에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박지후 차이나랩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