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어사전 > 후후월드
※[후후월드]는 세계적 이슈가 되는 사건에서 주목해야 할 인물을 파헤쳐 보는 중앙일보 국제부의 온라인 연재물입니다.
“정말 강한 지도자(very tough guy)”
지난 7월(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 수락 연설에서 자신과 친분 깊은 그를 이렇게 소개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제외하면 이날 연설에서 언급된 유일한 외국 지도자였다. 그는 같은 달 트럼프의 별장에 초청받기도 했다. “예쁜이 안녕(Bella Ciao)”
이달 초 유럽연합(EU) 순회의장에서 이런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에서 파시스트들을 조롱하기 위해 불렀던 노래다. 진보 성향 EU 의원들이 친러·친중 행보로 유명한 그를 조롱하러 이 노래를 부르자, 그를 지지하는 극우 성향 의원들이 맞서면서 EU 회의장이 아수라장이 됐다. 작은 시골서 어린 시절…공산당원 父 폭력 등
삼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난 오르반은 어린 시절 소심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성장기에 그는 가정 폭력에 시달렸다. 오르반은 1989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매년 두 차례씩 얻어맞았다. 아버지는 때릴 때마다 고함을 지르곤 했다”며 “나는 이 모든 나쁜 경험을 기억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2년 간의 군 복무 뒤 외트뵈시 로란드대에서 법학을,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정치학을 공부했다. 소심했던 성격도 이 시기에 바뀐 것으로 알려진다. 오르반의 전기 『오르반 빅토르』에 따르면 그는 군 복무 이전의 자신을 공산 정권의 “순진하고 헌신적인 지지자”였다고 자평했다.
오르반의 정치인생은 1989년 6월 16일 시작된다. 그날 26세 오르반은 25만명의 대중이 모인 부다페스트의 영웅광장에서 이렇게 연설했다. 그는 당시 공산주의 정권에 반대하는 청년민주동맹 피데스(Fidesz)의 창립 멤버였다. 1956년 소련에 맞선 민주화 운동에서 숨진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식에서 행한 이 연설에서 오르반은 자유 선거와 소련군 철수를 요구했다.
BBC는 당시 오르반의 연설로 “자유 선거와 헝가리의 독립을 꿈꿔온 국민의 열망이 깨어났다”고 전했다. 공산주의 체제에 대한 불만을 대변한 이 연설로 오르반은 스타가 됐다. 이후 그가 이끌던 피데스는 중도 좌파 성향의 정당으로 진화했다.
그러자 오르반은 놀라운 ‘반전 카드’를 꺼냈다. 중도 좌파였던 당 노선을 중도 우파로 바꾼 것이다. 정치학자 졸탄 라크너는 BBC에 “자유주의-사회주의 연합에 의해 통치되던 시절인 90년대 중후반 오르반은 정치적 성공을 위해 반자유주의적 세력으로 탈바꿈해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오르반과 피데스의 변신은 성공적이었다. 피데스는 98년 총선에서 의석 과반(148석)을 차지하면서 원내 제1당이 됐다. 당시 35세였던 오르반은 ‘유럽 최연소 총리’ 타이틀을 거머쥐게 됐다.
그런데 급속한 경제성장에 따른 빈부 격차 확대로 서민들의 불만이 커졌고, 국유기업 민영화 과정에서 부패가 만연하자 여론이 급속히 악화했다. 결국 오르반은 2002년 중도 좌파인 사회민주당(MSZP)에 정권을 내줬다.
정권 되찾은 오르반, 극우 성향 변모
2010년 총선에서 경제성장 공약을 내세운 피데스는 52.7% 득표율로 압승을 거뒀다. 이때 오르반은 기존 친서방 자유주의 노선에서 극우 성향으로 변신한다.
정권을 탈환한 오르반은 법원·검찰·언론을 장악하는 일련의 조치를 감행했다. 헌법 개정을 통해 정부가 대법관을 해임할 수 있는 규정을 마련했고,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은 폐쇄하거나 친정부 기업에 인수됐다. 난민 수용을 거부하는 한편, 난민을 도운 시민을 징역형에 처벌하는 ‘반이민법’을 제정했다.
특히 헝가리는 올 하반기 6개월 동안 EU 의장국(순번제)을 맡고 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자금 지원, 우크라이나의 EU·NATO 가입에 반대하는 오르반의 행보는 상당수 회원국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특히 러시아에 편향된 그의 평화회담 주장에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유럽에서 평화가 항복과 같은 의미라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며 공개 비판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