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무요원으로 분류돼 몇 년간 소집 대기를 하다가 병무청의 판단으로 전시근로역에 편입된 사람은 병역의 의무를 마친 것으로 볼 수 있을까. 이에 대해 1심 법원은 ‘병역 의무를 다한 것’, 항소심 법원은 ‘복무를 마친 것이 아니다’라고 각각 다른 판단을 내놨다.
서울고등법원 행정10-2부(고법판사 김유진‧하태한‧오현규)는 30대 남성 A씨가 서울출입국‧외국인청장을 상대로 낸 국적선택신고 반려처분 취소소송에서 1심을 뒤집고 A씨의 청구를 기각했다고 19일 밝혔다.
A씨는 미국에 살던 한국인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나 미국‧한국 국적을 모두 가진 복수국적자였다. 20대가 돼 병역판정 검사에서 4급을 받고 사회복무요원 소집대상으로 분류됐는데, 소집 대기자가 많아 3년 동안 대기하다가 만 27세가 지난 뒤인 2021년 1월 병역법 65조에 따라 전시근로역으로 편입됐다. 전시근로역이란 전시‧사변 등 국가비상사태가 있을 경우 소집돼 군사지원업무를 담당하는 병역이다.
이후 A씨는 만 29세가 지난 뒤 국적선택신고를 했다. 복수국적자는 성인이 된 뒤엔 한쪽 국적을 선택해야 하는데, 만 22세 전에는 외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은 채 ‘외국 국적 불행사 서약서’만 쓰면 한국 국적을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만 22세부터는 외국 국적을 포기해야 한국 국적을 얻을 수 있다. 다만 군 복무를 한 경우엔 제대 뒤 2년 안에 추가로 서약서만 쓰면 한국 국적을 받을 기회가 주어진다. A씨는 “전시근로역은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사실상 복무를 종료한 것이니 군 복무를 마친 것”이라며 미국 국적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서약서와 함께 국적선택 신고서를 냈다. 그러나 출입국청은 이를 반려했다. “A씨는 군 복무를 마치지 않은 미필자로 봐야 하니 서약서가 아닌 국적 포기서를 내야 한다”는 취지였다.
A씨는 이에 불복해 소송을 냈다. 1심 법원은 A씨의 손을 들어줬다. A씨가 인원 배분 및 코로나19 등으로 소집 대기만 3년 하다가 전시근로역으로 편입된 데에 A씨의 귀책이 전혀 없고, A씨의 경우에 대한 명시적인 규정은 없지만 유사한 다른 기준을 준용하는 게 타당하다는 이유였다. “국가의 병역자원 배분 문제로 A씨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은 부당하고, A씨가 병역을 회피하려고 한 것도 아니다”며 “오히려 3년의 대기기간 동안 언제 소집될지 몰라 장기적 학업·사회생활을 계획하지 못하는 불이익을 이미 받았다”고 판단했다. A씨가 군 복무를 마친 것으로 보는 것이 병역의 의무 이행을 권장하기 위한 입법 취지에 반하지 않고, 오히려 인정하지 않을 경우 “병역 의무 이행을 위해 충분히 노력했는데도 국적선택의 자유가 제한돼 개인이 입는 불이익이 지나치게 크다”고도 했다.
항소심 “규정에 없다, 복수국적은 당연한 권리 아냐”
1심에서 인정되지 않았던 출입국청의 주장도 항소심에선 받아들여졌다. 항소심 재판부는 “사회복무요원 소집 대기자가 적은 지역으로 변경 소집신청을 하거나, 병역처분변경신청을 해서 현역으로 복무할 수도 있었다”면서 “복수국적의 유지는 당연한 권리로 주장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고, 사회복무요원과 현역 복무자와 같은 혜택을 주는 건 병역의무 이행을 유도하고 이행자를 배려하기 위한 법률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A씨 측은 대법원에 상고할 예정이며, 위헌법률심판제청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