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족산 맨발길 만든 조웅래 선양소주 회장
조웅래 회장은 트레이드마크가 된 중절모에 환한 웃음을 머금고 나타났다. 우리는 나란히 맨발걷기를 시작했다. 황토의 서늘하고 촉촉한 감각이 좋았다. 오가는 사람들이 조 회장을 알아보곤 인사를 건넸다. “길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회장님 건강하세요.” 사진 찍자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시간이 계속 지체됐다.
조 회장은 대전·충남지역 소주 브랜드인 (주)선양소주를 이끌고 있다. 그는 2006년 사재를 털어 계족산 임도 14.5㎞에 황토를 깔아 전국 최초의 ‘맨발길’을 만들었다. 맨발걷기가 몸에 좋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전국 지자체가 앞 다퉈 맨발걷기길을 만들었고, 맨발걷기는 일종의 신드롬이 돼 퍼져나갔다.
“맨발걷기=만병통치약 띄우는 건 지나쳐”
위쪽에서 흰 닭 한 마리가 내려온다. 이름이 ‘꼬꼬’인 녀석은 희한하게도 넓은 임도는 안 가고 황톳길만 밟는다. 닭 주인인 전범석(75)씨는 “이놈도 황톳길이 좋은 줄 아는가 봐요. 저는 5개월째 매일 여기를 걷는데 지병인 허리 디스크가 좋아져서 병원에 안 가고 있어요”라며 맨발걷기 예찬론을 폈다.
황톳길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질 좋은 황토를 전북 김제·익산 쪽에서 가져와 매년 2000t씩 새로 깔아야 한다. 매주 목요일 황토를 뒤집어 다시 부드럽고 평평하게 만드는 작업을 하고, 토·일요일에는 ‘뻔뻔(fun fun)한 클래식’ 공연을 연다. 이 비용들을 합치면 매년 10억원 가량 든다. 19년간 200억원 가까운 돈을 쓴 거다. 연 매출 500억원에 직원 200명인 회사에서 부담스러운 지출임에 분명하다. 우리는 음악회가 열리는 야외 공연장 자연석 벤치에 마주 앉았다.
회장님에게 계족산 황톳길은 어떤 의미입니까.
“매일 새벽 여기를 걷고, 주말에는 지인과 함께 옵니다. 제게 이 곳은 새소리·물소리·벌레소리가 들리고 참나무·소나무에서 나오는 피톤치드로 가득 찬 놀이터이자 헬스장입니다. 걸으면서 사업 구상을 하게 되니 집무실이고, 사람들을 주로 여기서 만나니 사교장이죠. 마지막으로 세상에서 제일 큰 제 별장이기도 합니다. 하하.”
1년에 100만 명이 오는 명소가 됐는데요.
“우선 접근성이 좋습니다. 대전역·신탄진역에서 가깝고 고속도로 IC에서도 멀지 않아요. 14.5㎞ 전체가 숲 터널인데 깊고 높아서 갑갑하지 않아요. 길 폭이 넓고 평탄한 데다 부드러운 황토가 깔려 있어서 관절에 무리가 없고 온 가족이 편안하게 걸을 수 있죠.”
‘맨발걷기 전도사’라는 별명이 있는데요.
“저는 전도사는 아닙니다.(웃음) ‘맨발걷기가 이래서 좋다’는 얘기를 한 적이 없어요. 제가 해 보니 좋아서 황톳길을 깐 겁니다. 잠도 잘 오고, 밥맛도 좋고, 기분도 상쾌해지고… . 어싱(Earthing) 이론 같은 걸 앞세워 맨발걷기를 마치 만병통치약처럼 떠받드는 건 좀 지나치다고 봐요. 해 보니 몸에 좋고, 돈 안 들고, 남한테 해 안 끼치는 거니 좋은 거지요. 황토도 무슨 효험보다는 색감과 촉감이 좋아서 깐 겁니다.”
맨발걷기를 위한 팁을 준다면?
“걷기는 똑같은데 맨발로 걷는다는 것 밖에 없어요. 자기 몸에 맞게 속도·거리·방식을 선택하면 됩니다. 다만 충격을 흡수해 주는 신발·양말이 없으니까 끝나고 나서는 꼭 스트레칭을 해 줘야 합니다. 안 그러면 무릎이나 고관절에 통증이 올 수 있어요.”
황톳길 근처 식당으로 들어갔다. ‘계족산 황톳길 덕분에 먹고 삽니다’라고 써 붙인 문구가 눈에 띄었다.
아픈 분들이 맨발걷기를 많이 한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하는 유튜브 ‘몸이 답이다’에 130명 정도 인터뷰 한 걸 모아 놨어요. 맨발로 걸으면 심리적으로 안정이 된다는 건 과학적으로 인정됐죠. 아픈 사람이 집에만 있으면 더 불안한데 밖으로 나와서 자연과 함께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의학적 치료에 도움이 되는 거라고 봅니다.”
황톳길 운영·관리하는 데 너무 많은 돈이 드는 건 아닌가요.
“초창기에는 회사 내부에서도 반발이 심했어요. 저는 황톳길에 들어가는 돈이 영업이익의 몇 퍼센트냐, 이걸로 소주가 몇 병 더 팔리냐, 이런 건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좋아서 한 거고, 51년 된 향토기업이 지역에 기여할 수 있다면 감사한 일이죠. 다만 꾸준히 신뢰를 쌓아간다면 ‘좋은 일 하는 기업을 도와주자’는 가치소비가 일어날 거라는 희망은 갖습니다. 세상에는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것들이 많거든요.”
맨발걷기에 입문한 과정이 재밌던데요.
“2006년 지인들과 계족산 임도를 걷는데 하이힐을 신고 온 여성이 힘들어 하기에 운동화를 벗어주고 맨발로 걸었어요. 그날 저녁 몸이 후끈거리고 희한한 반응을 경험했죠. 잠도 잘 오고, 거짓말처럼 스트레스도 풀리고요. 사실은 그 전부터 마라톤에 입문해 걷고 뛰는 건 자신 있었습니다.”
24년간 마라톤 풀코스 83차례나 완주도
‘면(免)수습 마라톤’은 20년째 이어지는 선양소주의 전통이다. 신입사원의 수습 기간이 끝나는 토요일 새벽. 조 회장을 포함한 임원진과 수습사원 부서의 선배들이 함께 10㎞를 뛰는 거다. 김현우 선양소주 대외협력실장은 “50~60명이 10㎞를 완주한 뒤 땀에 젖은 채로 국밥집으로 가지요. 거기서 꽃다발과 사령장을 받을 때 느낌은 지금 떠올려도 울컥한 감동입니다”라고 말했다.
경남 함안에서 태어나 찢어지게 가난한 시절을 보낸 조 회장은 경북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뒤 삼성전자에 입사한다. 서른세 살에 단돈 2000만원을 갖고 홀로 창업에 나섰고, ‘700-5425’ 전화정보와 벨소리 서비스로 대박을 터뜨린다. “칠공공 오사~이오”라는 징글(업체나 상품을 알리는 짧은 멜로디)도 그가 만들었다. ‘벤처 1세대’ 사업가로 승승장구하던 2004년, 매물로 나온 선양소주를 인수해 주류업계에 뛰어든다.
조 회장이 말했다. “음악이나 술이나 황톳길이나 사람과 사람을 이어준다는 점에선 본질이 같아요.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겠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겠습니다’가 우리의 슬로건이지요.”
조 회장은 계족산 황톳길 조성 스토리와 자신의 마라톤 인생을 담은 책을 내고 계족산에서 출판기념회를 할 예정이다. 책 제목은 ‘맨발의 선물’로 정했다. “맨발걷기를 통해 저는 건강과 기쁨, 소통을 얻었어요. 그건 어떤 선물보다 값지죠. 거기에 대한 보답의 선물로 내놓은 게 계족산 황톳길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 곳에서 저와 같은 경험을 했다면 그것 또한 멋진 선물이겠죠. 저는 ‘괴짜’ 소리를 들을 정도로 많은 아이디어를 냈고 그걸 실현시켰어요. 그 창조의 핵심은 ‘배려’라고 생각합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1959년생인 조 회장은 경로우대증이 나오는 시기에 맞춰 1만㎞ 유럽 마라톤 투어를 계획하고 있다. 다음 달 열리는 JTBC마라톤에도 출전한다. “핑계가 하나씩 쌓이면 포기가 됩니다. ‘나답게 사는 게 어떤 걸까’ 궁리를 게을리 하지 않아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