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공영제 악용, '먹튀' 차단"...서울시, 민간자본 시내버스 인수 억제한다

서울역 인근 도로에서 주행 중인 시내버스가 물보라를 일으키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역 인근 도로에서 주행 중인 시내버스가 물보라를 일으키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시내버스 시행 방식이 20년 만에 달라진다. 사후 정산하던 운송 수지 적자 보전 방식을 사전 확정 방식으로 바꾸고, 도보 5분 이내 대중교통 접근이 가능토록 시내버스 노선도 전면 개편한다.

서울시는 22일 서울 시내버스 준공영제 20주년을 맞아 혁신 추진 정책을 발표했다. 2004년 7월 서울시가 전국 최초로 도입한 준공영제는 자치단체가 버스업체 적자를 메워주는 대신 취약지역 노선을 유지하는 등 공공성을 확보하는 제도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0년 동안 국민 세금 수천억원을 지원하면서 서울시 재정 부담이 커졌고, 민간자본이 진입하는 과정에서 공공성이 훼손되는 등 여러 문제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서울 버스 연도별 운송수지. 그래픽=김영희 디자이너

서울 버스 연도별 운송수지. 그래픽=김영희 디자이너

서울시내버스 준공영제 20년 만에 변화

오세훈 서울시장이 22일 오전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 '시내버스 준공영제 20주년' 혁신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오세훈 서울시장이 22일 오전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 '시내버스 준공영제 20주년' 혁신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시는 우선 천문학적인 재정 지원 구조를 손질한다. 현재는 운수회사가 적자를 기록하면 서울시는 적자분 전액을 보전하는 사후정산 방식으로 버스회사를 지원하고 있다. 문제는 사후정산 방식을 적용하면 운수회사가 적극적으로 비용을 절감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하지만 앞으론 다음 해 총수입·총비용을 예상해 차액만큼만 지원하는 사전확정 방식으로 바꾼다. 운수회사가 자발적으로 수입 증대나 비용 절감을 위해 노력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다.  

서울시 윤종장 교통실장은 “재정 지원 방식 변경을 통해 각종 행정비용·대출이자 등 연간 최대 180억원을 절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서울시는 2026년부터 사전확정제를 시행할 계획이다.

서울대병원 본관 앞 마을버스 정류장. 승객이 줄어 버스 안이 텅 비어 있다. 채혜선 기자

서울대병원 본관 앞 마을버스 정류장. 승객이 줄어 버스 안이 텅 비어 있다. 채혜선 기자

투기성 자본이 서울 버스 시장에 진입하는 것도 억제한다. 현재 서울 시내 64개 운수회사 중 6개는 자산운용사가 보유 중이다. 차파트너스가 한국비알티·동아운수·도원교통·신길교통·선일교통을, 그리니치PE·칼리스타캐피탈·차파트너스가 선진운수를 인수했다.  

물론 현행법상 자산운용사가 버스회사를 인수하는 건 불법이 아니다. 다만 서울시는 이들 운용사가 과도하게 수익을 추구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공공성 훼손을 우려하고 있다.

오세훈 시장은 “사모펀드가 공공을 물렁물렁하게 보고 (서울 버스 시장에) 들어오는 것을 애써 눈감아왔다”며 “더는 좌시할 수 없다는 결심 하에 (사모펀드가) 돈 벌 길을 차단, 감히 준공영제에서 돈 벌어가겠다는 발상을 못 하게 하겠다”고 말했다. 

연도별 서울 버스 재정지원금. 그래픽=박경민 기자

연도별 서울 버스 재정지원금. 그래픽=박경민 기자

차파트너스 자산운용 로고

차파트너스 자산운용 로고

먹튀 자본 ‘철퇴’…장거리·중복노선 폐지 
이에 시는 사전심사제도를 도입해 불건전·외국계 자본 진입을 제한한다. 국내 자산운용사는 설립 2년 이상이 지나야 운수회사 인수가 가능하다. 서울시는 서울시의회와 협력해 연내 관련 조례를 개정할 예정이다.

이미 진입한 민간자본도 올가미를 죈다. 배당성향 100% 초과 금지, 현금성 자산 1개월분 보유 의무화 등 규제를 도입한다.  

알짜 자산 매각 후 단기간에 운수업계를 청산·이탈하는 이른바 ‘먹튀’ 방지책도 나온다. 예컨대 버스회사가 임의로 차고지를 매각하면 차고지 임차료를 지원하지 않는다. 윤종장 실장은 “사모펀드가 수익 극대화를 위해 차고지를 팔 때가 있는데, 차고지 매각 시 버스 면허를 박탈하면 인수의향이 있는 회사도 운수회사를 사들일 유인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전기자율주행버스가 광화문 앞을 주행하고 있다. [사진 서울시청]

전기자율주행버스가 광화문 앞을 주행하고 있다. [사진 서울시청]

한편 서울시는 20년 만에 버스노선 전면 개편도 준비 중이다. 서울시는 이를 위해 최근 버스노선 체계 전면개편 용역을 발주했다. 장거리·중복 노선을 손보고 노선 굴곡도는 완화할 계획이다.

또 이층 버스는 차내 혼잡이 극심한 간선버스 중 굴곡도가 낮은 노선에 투입하고, 자율주행버스는 새벽·심야 시간대 청소·경비 노동자 탑승이 많은 노선에 우선 공급한다. 고령 인구가 많거나 사회복지시설 인근에 수요응답형 교통수단을 투입할 예정이다.  

 
서울시버스운송사업조합은 “서울시가 발표한 개선 방안에 동의한다”며 “이번 기회에 시민 편의성을 제고할 수 있는 노선 개편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오 시장은 “누구나 5분 이내에 대중교통 이용이 가능한 시스템을 갖출 것”이라고 말했다.

윤종장 서울시 교통실장이 22일 오전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 '시내버스 준공영제 20주년' 혁신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윤종장 서울시 교통실장이 22일 오전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 '시내버스 준공영제 20주년' 혁신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