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진정한 투자”...스웨덴 해스텐스 ‘꿈의 공장’에 가다 [더 하이엔드]

스웨덴 국기보다 더 유명한 문양. 흰색과 파란색이 교차한 ‘블루 체크(Blue Check)’ 이야기다. 블루 체크는 스웨덴 하이엔드 침대 브랜드 해스텐스(Hästens)의 상징이자, 실제 이들의 침대에 사용되는 문양이다. 전 세계적으로 ‘최고급 침대’ ‘하이엔드 침대’로 알려진 브랜드인 해스텐스는 스웨덴 현지에선 ‘국민 브랜드’라 할 정도로 폭넓은 사랑을 받는다. 대를 물려 사용하고 또 누구나 갖고 싶어 하는 침대. 대체 어떤 침대이기에 이런 명성을 얻고 있는지, 중앙일보가 직접 해스텐스 본사가 있는 스웨덴 셰핑(Köping)에 다녀왔다.  

'최고급 침대'를 대표하는 브랜드 해스텐스의 상징 블루 체크. 사진 속 침대는 3단으로 구성된 해스텐스의 수면 시스템을 가장 잘 보여주는 2000T 모델이다, [사진 해스텐스]

'최고급 침대'를 대표하는 브랜드 해스텐스의 상징 블루 체크. 사진 속 침대는 3단으로 구성된 해스텐스의 수면 시스템을 가장 잘 보여주는 2000T 모델이다, [사진 해스텐스]

 

172년 침대 역사의 고장, 셰핑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에서 출발해 차로 2시간 남짓을 달려 도착한 셰핑은 전형적인 산업 도시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넓은 평야 지대에 자리 잡은 공장과 생산 시설이 도시를 채우고 있었고, 주민들은 주로 그 공장에서 일하며 생활했다. 이 중에서도 해스텐스 본사는 쉽게 찾을 수 있다. 여러 개의 아치가 연결돼 볼록볼록한 모양을 가진 건물 위에 거대한 네온사인 말이 빛을 뿜으며 금방이라도 달려나갈 듯한 자태를 뽐냈다.   

스웨덴 셰핑 지역에 있는 해스텐스 본사.[사진 해스텐스]

스웨덴 셰핑 지역에 있는 해스텐스 본사.[사진 해스텐스]

해스텐스의 5대 오너인 얀 리데가 해드 오피스와 드림팩토리가 함께 있는 본사 건물 앞에 서 있다. [사진 해스텐스]

해스텐스의 5대 오너인 얀 리데가 해드 오피스와 드림팩토리가 함께 있는 본사 건물 앞에 서 있다. [사진 해스텐스]

 
셰핑은 바다와 인접한 스웨덴 남동부에 위치한 도시로 13세기부터 많은 상인이 모여들었다. 셰핑(Köping)이란 이름 자체가 스웨덴어로 '상인의 지역'을 뜻하니, 상업이 얼마나 활발히 일어났는지 짐작케 한다. 19세기 셰핑은 대규모 기계 장비를 갖춘 공장과 항구를 갖춘 산업도시로 성장했고, 1920년대엔 자동차 회사 볼보의 공장과 해스텐스 본사가 이곳으로 이전하며 지역을 대표하는 두 기업이 됐다.

해스텐스 창립자 페르 아돌프 얀손(왼쪽)과 3대 오너 잭 리데, 솔베이그 리데 부부.. [사진 해스텐스]

해스텐스 창립자 페르 아돌프 얀손(왼쪽)과 3대 오너 잭 리데, 솔베이그 리데 부부.. [사진 해스텐스]

스웨덴 왕실의 침대 납품업체임을 증명하는 인증서. [사진 해스텐스]

스웨덴 왕실의 침대 납품업체임을 증명하는 인증서. [사진 해스텐스]

해스텐스 브랜드 역사는 1852년 스웨덴인 페르 아돌프 얀손에 의해 시작했다. 19세기에 탄생한 유서 깊은 브랜드들이 그러하듯 해스텐스 역시 마차에 쓰이는 말안장을 만들며 익힌 기술에서 비롯됐다. 해스텐스란 이름 역시 ‘말로부터’란 뜻이다. 그는 말안장과 함께 침대 매트리스를 제작했는데, 본격적인 침대 회사가 된 것은 1917년 페르 아돌프 얀손의 손자 데이비드 얀손이 경영을 맡으면서다. 지금은 데이비드의 손자 얀 리데가 5대 회장으로 재임 중이다.   




천천히, 완벽한 침대를 만들다

해스텐스 본사와 공장은 한 건물에 있다. 공장은 ‘드림 팩토리(Dream Factory)’로 불린다. 1998년 유명 건축가 랄프 어스킨의 설계로 공장을 증축할 때 지어진 이름이다. 여기서 ‘꿈’은 여러 의미를 갖는다. 제임스 애쉬베르거 해스텐스 최고 고객&마케팅 경영자(CCMO)는 “직접적인 의미로 잠을 잘 때 꾸는 꿈, 그리고 사용자의 꿈을 이루게 만드는 침대를 만드는 곳이란 의미가 있다”며 “여기에 더해 셰핑 지역 주민의 일터로써 그들의 꿈을 이루게 한다는 의미도 담았다”고 덧붙였다.  

셰핑에 있는 드림 팩토리에서 직원들이 침대 만드는 모습.. [사진 해스텐스]

셰핑에 있는 드림 팩토리에서 직원들이 침대 만드는 모습.. [사진 해스텐스]

이곳은 경영자뿐 아니라 직원 역시 대를 이어 근무하는 경우가 많다. 셰핑 지역에서만 100년을 있었으니, 온 가족이 이곳에서 일하며 ‘침대 장인’의 반열에 오른 것. 깔끔하고 고요한 드림 팩토리에서 직원들은 천천히, 그리고 꼼꼼하게 침대를 만든다. 속도전에 익숙한 한국 정서로는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다. 공장 관리자에게 물으니 "우리는 직원에게 빨리 일하라고 재촉하지 않는다"고 했다. 재촉하면 실수가 나올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완벽한 품질의 침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천천히 공들여 하는 게 더 낫다는 선택이다.

해스텐스 침대는 크게 소나무로 만든 프레임, 포켓 스프링, 여러 겹의 충전재 등으로 구성된다. 특히 충전재는 말총·순면·양모가 겹겹이 쌓인 구조로 소재별 역할이 다르다. 맨 위의 순면은 자면서 흘리는 땀을 흡수하고, 순면 바로 밑에 붙어 있는 양모는 순면이 흡수한 수분을 바로 아래 있는 말총으로 발산시킨다. 

순면과 양모 섬유 위에 고르게 말총을 깔고, 이것을 여러겹 겹쳐 놓는다, 이 과정마다 장인은 뭉쳐있는 곳을 펴고, 이물질을 골라내며 끊임없이 충전재를 다듬는다. [사진 해스텐스]

순면과 양모 섬유 위에 고르게 말총을 깔고, 이것을 여러겹 겹쳐 놓는다, 이 과정마다 장인은 뭉쳐있는 곳을 펴고, 이물질을 골라내며 끊임없이 충전재를 다듬는다. [사진 해스텐스]

비비더스, 드리머 같은 상위 모델에 들어가는 블루 체크. [사진 해스텐스]

비비더스, 드리머 같은 상위 모델에 들어가는 블루 체크. [사진 해스텐스]

말총으로 만든 충전재 위로 여러 장인이 함께 블루 체크 원단을 씌우고 있다. [사진 해스텐스]

말총으로 만든 충전재 위로 여러 장인이 함께 블루 체크 원단을 씌우고 있다. [사진 해스텐스]

 
말총은 침대의 편안함·쾌적함을 만들어주는 핵심 소재다. 이들은 말총을 오랜 시간 땋고 세척하고 말리는 과정을 거친 뒤 잘게 잘라 사용한다. 준비된 말총은 마치 짧게 자른 곱슬머리 같은 형태인데, 이것이 침대 안에서 작은 스프링처럼 작용해 통기성과 푹신함을 느끼게 한다. 장인은 말총을 면·양모 혼방 섬유 위에 일일이 손으로 깔고, 톡톡 가볍게 두드려 일정한 두께로 만든다. 손끝의 감각으로 뭉친 곳을 찾아내고, 이물질을 걸러내니 완성품이 깔끔할 수밖에 없다. 박상현 해스텐스 한국 영업 총괄은 현장에서 “자연 소재만을 침대 재료로 사용하니 혹시 벌레나 곰팡이가 생기진 않을지 걱정하는 사람도 있지만, 170년 넘는 역사 동안 그런 일은 한 번도 없었다”면서 “위생적으로 정제된 자연 소재를 사용해 내구성과 통기성을 높인 결과”라 말했다.  

천천히 공들여 제작하는 만큼, 해스텐스는 품질 보증 기간도 길다. 자그마치 25년. 보통 공산품의 품질 보증 기간이 1년에서 길어야 3년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놀라운 기간이지만, 이 역시 이들의 품질에 대한 자부심에서 나왔다. 애쉬베르거 디렉터는 “오랜 품질 보증 덕분에 스웨덴에선 대를 이어 우리 침대를 사용하는 사람이 많다”며 “높은 가격이어도 부자나 특별한 사람만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신의 한 수된 ‘블루 체크’  

해스텐스는 어떻게 ‘최고의 침대’로 유명해졌을까. 추운 날씨로 생장이 느려 단단해진 소나무로 프레임을 만들고, 강도 높은 스웨덴 스틸로 스프링을 만든 침대. 여기까진 여느 스웨덴 침대와 큰 차이가 없다. 해스텐스의 첫 번째 차별점은 천연 소재에서 나온다. 말총을 꼬아 가공해 만든 충전재, 이를 감싸는 순면와 양모, 각을 살려주는 아마 섬유까지 침대 안의 모든 것을 천연 소재로 채운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이들만의 상징인 블루 체크가 더해지면 스웨덴 왕실이 인정한 특별한 침대가 완성된다.  

정확하고 정교한 바느질의 기준이 되는 것도 블루 체크다.. [사진 해스텐스]

정확하고 정교한 바느질의 기준이 되는 것도 블루 체크다.. [사진 해스텐스]

 
블루 체크는 1978년 4대 오너 잭 리데(데이비드 얀손의 딸 솔베이그의 남편)가 스톡홀름 가구 박람회에서 처음 발표했다. 당시 스웨덴을 포함한 유럽에선 연두색, 주황색 같은 밝은 톤의 단색 침대와 가구가 유행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블루 체크로 뒤덮인 침대는 혹평을 받았지만, 확실히 눈에 띄었다. 당시 사람들에게 ‘못생긴 침대’였던 해스텐스는 써본 이들의 만족도를 바탕으로 오히려 널리 알려졌고, 지금 블루 체크는 “스웨덴 국기보다 유명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브랜드의 상징이 됐다.  

잭 리데가 블루 체크를 개발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디자인 효과를 넘어 제품 품질과 생산 효율을 높이기 위한 수단이었다. 엔지니어 출신인 그는 장인이 충전재 등 침대 내부 재료와 겉 원단을 고정하기 위해 일정한 간격으로 정확하게 바느질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결과 태어난 게 블루 체크다. 파란 줄무늬를 따라 꼼꼼한 바느질로 침대 하나를 완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140~150시간. 톤 차이가 거의 없는 화이트 체크의 경우 바느질하는 데 두 배의 시간이 걸린다. 

인생 3분의 1 위한 투자

드림 팩토리에서 제작 과정을 직접 보니 왜 이 침대를 명품이라 부르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만큼 가격이 만만치 않다. 과연 이 침대를 쓰는 사람은 누굴까.  

애쉬베르거 CCMO는 “자신에게 진정한 투자를 하고 싶은 사람”이라 강조했다. 단순히 돈이 많아서 또는 유명인이어서가 아니란 이야기다. 그는 “컨디션이 중요한 운동선수나 의사 등 전문직, 중요한 결정을 시시각각 내려야 하는 경영인 등 숙면을 통해 자신의 컨디션을 최상으로 만들고 싶은 사람들이 해스텐스를 쓴다”며 “침대를 자동차나 가전·가구보다 더 오래 사용하는 생활의 일부라 생각하면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해스텐스와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전 테니스 선수 마리아 샤라포바는 2004년 대회에서 딴 첫 우승 상금으로 해스텐스 침대를 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당시 큰 금액이었지만, 돌이켜 보면 내 인생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투자 중 하나”라며 “지금도 그때 구매한 침대에서 잔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해스텐스 침대에서 자보고 싶다면, 이를 갖춘 호텔에서 숙박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스톡홀름과 셰핑엔 해스텐스 침대를 갖춘 호텔이 여럿 있다. 1650년대 스웨덴 여왕이 별장으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스톡홀름의 스탈메스타레고르덴(Stallmästaregården) 호텔이 대표적이다. 여기선 해스텐스의 대표 모델 ‘2000T’와 ‘마랑가’ 등을 경험할 수 있다. 

2000T는 상단과 중간 매트리스, 침대 받침대의 3단으로 구성된 해스텐스의 수면 시스템을 가장 잘 보여주는 모델이다. 침대 강도는 소프트, 미디움, 펌, 엑스트라 펌 등으로 나뉜다. 침대에 누웠을 때 몸이 감싸 안아지는 푹신함을 느끼고 싶다면 소프트를, 조금 단단한 느낌을 원한다면 펌을 선택하면 된다. 본사가 있는 셰핑엔 상위 모델인 ‘드리머’가 비치된 호텔도 찾을 수 있었다. 국내에선 서울·대구·부산의 플래그십 매장에서 자신에게 맞는 침대를 찾을 수 있는 ‘슬립 스파’ 프로그램을 활용할 수 있다. 

단순히 ‘고급 침대’로 치부하기엔 해스텐스는 갖춘 게 많다. 천연 소재를 장인의 손길로 채우고 꿰매 만들어진 침대는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나’만을 위한 것이다. 내 몸을 최상의 컨디션으로 끌어올려 줄 수 있는 가구. 이들이 172년 시간 동안 명성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