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년 침대 역사의 고장, 셰핑
셰핑은 바다와 인접한 스웨덴 남동부에 위치한 도시로 13세기부터 많은 상인이 모여들었다. 셰핑(Köping)이란 이름 자체가 스웨덴어로 '상인의 지역'을 뜻하니, 상업이 얼마나 활발히 일어났는지 짐작케 한다. 19세기 셰핑은 대규모 기계 장비를 갖춘 공장과 항구를 갖춘 산업도시로 성장했고, 1920년대엔 자동차 회사 볼보의 공장과 해스텐스 본사가 이곳으로 이전하며 지역을 대표하는 두 기업이 됐다.
천천히, 완벽한 침대를 만들다
해스텐스 침대는 크게 소나무로 만든 프레임, 포켓 스프링, 여러 겹의 충전재 등으로 구성된다. 특히 충전재는 말총·순면·양모가 겹겹이 쌓인 구조로 소재별 역할이 다르다. 맨 위의 순면은 자면서 흘리는 땀을 흡수하고, 순면 바로 밑에 붙어 있는 양모는 순면이 흡수한 수분을 바로 아래 있는 말총으로 발산시킨다.
말총은 침대의 편안함·쾌적함을 만들어주는 핵심 소재다. 이들은 말총을 오랜 시간 땋고 세척하고 말리는 과정을 거친 뒤 잘게 잘라 사용한다. 준비된 말총은 마치 짧게 자른 곱슬머리 같은 형태인데, 이것이 침대 안에서 작은 스프링처럼 작용해 통기성과 푹신함을 느끼게 한다. 장인은 말총을 면·양모 혼방 섬유 위에 일일이 손으로 깔고, 톡톡 가볍게 두드려 일정한 두께로 만든다. 손끝의 감각으로 뭉친 곳을 찾아내고, 이물질을 걸러내니 완성품이 깔끔할 수밖에 없다. 박상현 해스텐스 한국 영업 총괄은 현장에서 “자연 소재만을 침대 재료로 사용하니 혹시 벌레나 곰팡이가 생기진 않을지 걱정하는 사람도 있지만, 170년 넘는 역사 동안 그런 일은 한 번도 없었다”면서 “위생적으로 정제된 자연 소재를 사용해 내구성과 통기성을 높인 결과”라 말했다.
천천히 공들여 제작하는 만큼, 해스텐스는 품질 보증 기간도 길다. 자그마치 25년. 보통 공산품의 품질 보증 기간이 1년에서 길어야 3년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놀라운 기간이지만, 이 역시 이들의 품질에 대한 자부심에서 나왔다. 애쉬베르거 디렉터는 “오랜 품질 보증 덕분에 스웨덴에선 대를 이어 우리 침대를 사용하는 사람이 많다”며 “높은 가격이어도 부자나 특별한 사람만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신의 한 수된 ‘블루 체크’
블루 체크는 1978년 4대 오너 잭 리데(데이비드 얀손의 딸 솔베이그의 남편)가 스톡홀름 가구 박람회에서 처음 발표했다. 당시 스웨덴을 포함한 유럽에선 연두색, 주황색 같은 밝은 톤의 단색 침대와 가구가 유행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블루 체크로 뒤덮인 침대는 혹평을 받았지만, 확실히 눈에 띄었다. 당시 사람들에게 ‘못생긴 침대’였던 해스텐스는 써본 이들의 만족도를 바탕으로 오히려 널리 알려졌고, 지금 블루 체크는 “스웨덴 국기보다 유명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브랜드의 상징이 됐다.
잭 리데가 블루 체크를 개발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디자인 효과를 넘어 제품 품질과 생산 효율을 높이기 위한 수단이었다. 엔지니어 출신인 그는 장인이 충전재 등 침대 내부 재료와 겉 원단을 고정하기 위해 일정한 간격으로 정확하게 바느질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결과 태어난 게 블루 체크다. 파란 줄무늬를 따라 꼼꼼한 바느질로 침대 하나를 완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140~150시간. 톤 차이가 거의 없는 화이트 체크의 경우 바느질하는 데 두 배의 시간이 걸린다.
인생 3분의 1 위한 투자
애쉬베르거 CCMO는 “자신에게 진정한 투자를 하고 싶은 사람”이라 강조했다. 단순히 돈이 많아서 또는 유명인이어서가 아니란 이야기다. 그는 “컨디션이 중요한 운동선수나 의사 등 전문직, 중요한 결정을 시시각각 내려야 하는 경영인 등 숙면을 통해 자신의 컨디션을 최상으로 만들고 싶은 사람들이 해스텐스를 쓴다”며 “침대를 자동차나 가전·가구보다 더 오래 사용하는 생활의 일부라 생각하면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해스텐스와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전 테니스 선수 마리아 샤라포바는 2004년 대회에서 딴 첫 우승 상금으로 해스텐스 침대를 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당시 큰 금액이었지만, 돌이켜 보면 내 인생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투자 중 하나”라며 “지금도 그때 구매한 침대에서 잔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해스텐스 침대에서 자보고 싶다면, 이를 갖춘 호텔에서 숙박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스톡홀름과 셰핑엔 해스텐스 침대를 갖춘 호텔이 여럿 있다. 1650년대 스웨덴 여왕이 별장으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스톡홀름의 스탈메스타레고르덴(Stallmästaregården) 호텔이 대표적이다. 여기선 해스텐스의 대표 모델 ‘2000T’와 ‘마랑가’ 등을 경험할 수 있다.
2000T는 상단과 중간 매트리스, 침대 받침대의 3단으로 구성된 해스텐스의 수면 시스템을 가장 잘 보여주는 모델이다. 침대 강도는 소프트, 미디움, 펌, 엑스트라 펌 등으로 나뉜다. 침대에 누웠을 때 몸이 감싸 안아지는 푹신함을 느끼고 싶다면 소프트를, 조금 단단한 느낌을 원한다면 펌을 선택하면 된다. 본사가 있는 셰핑엔 상위 모델인 ‘드리머’가 비치된 호텔도 찾을 수 있었다. 국내에선 서울·대구·부산의 플래그십 매장에서 자신에게 맞는 침대를 찾을 수 있는 ‘슬립 스파’ 프로그램을 활용할 수 있다.
단순히 ‘고급 침대’로 치부하기엔 해스텐스는 갖춘 게 많다. 천연 소재를 장인의 손길로 채우고 꿰매 만들어진 침대는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나’만을 위한 것이다. 내 몸을 최상의 컨디션으로 끌어올려 줄 수 있는 가구. 이들이 172년 시간 동안 명성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