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자리 챙기는 것은 물론 비서실장과도 알력 다툼”
“윤핵관은 인사 칼바람 맞았지만 여사님 라인은 무풍지대”
윤석열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52) 여사의 측근들로 구성된 비선 라인이 용산 대통령실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일까?
당사자는 김대남 전 SGI 서울보증보험 감사로, 인터넷 방송 〈서울의 소리〉기자와의 통화 도중 사적으로 발언한 내용이 공개된 것이지만, 그가 대통령실에서 선임행정관으로 약 2년을 근무한 이력으로 봐서 내부 폭로나 다름없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월간중앙 취재에 따르면, 김 전 감사는 애초 ‘김 여사 라인’과는 거리가 멀었던 인사다. 대선 당시 윤석열 대통령의 팬클럽에서 활동하다 캠프에 합류한 뒤 대통령실에 들어갔다.
때문에 김 전 감사가 국민의힘 전당대회 국면에서 김 여사와의 갈등의 골이 깊어진 한동훈 당시 당 대표 후보에 대한 비판 보도를 〈서울의 소리〉에 사주한 것도 ‘현실 권력’인 김 여사에 대한 충성 표시로 이해하는 이들이 많다. 그런 그가 공개된 녹취록에서 “여사가 자기보다 어린 애를 갖고 쥐었다 폈다 하며 시켜 먹는다”면서 김 여사 라인을 국정농단의 상징인 ‘십상시’에 빗대 입도마에 올랐다. 그동안 대통령실의 김 여사 라인은 용산 안팎에서 소문만 무성했는데, 그 실체적 진실의 한 자락이 드러난 것이다.
계급장보다 강한 金의 문고리 권력
하지만 김 여사와 오래전부터 인연을 맺거나 친분이 깊은 탓에 대통령실의 수장인 비서실장과 알력 다툼을 벌여도 인사 칼바람을 피해가는 무풍지대에 속해 있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2기 대통령실에서 있었던 얘기다. 김 여사 라인으로 불리던 이모 의전비서관과 강모 홍보비서관이 이관섭 전 비서실장을 상대로 누구 입김이 더 센가를 겨루듯 파벌싸움을 벌였다고 한다.
4월 총선이 끝난 직후였는데, 모 언론에서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총리로,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을 비서실장으로 영입하는 작업이 추진되고 있다고 단독 보도했다. 당장 대통령실 공식 라인이 뒤집어졌다. 본인들도 전혀 모르는 얘기인데, 누가 언론에 흘렸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윗선의 결재 없이 멋대로 뜬소문을 흘려 여론을 확인하는 행위는 명백한 월권 행위였다.
당시 상황을 기억한다는 한 인사는 “정보의 출처를 찾아봤더니 이 비서관과 강 비서관이었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이들은 기자들에게 “이관섭 비서실장은 (이 상황을) 잘 모른다. 우리 얘기가 맞는다”는 식으로 정보를 계속 흘렸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영입은) 여사님의 뜻”이라는 발언이 나왔다.
통상적으로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내부 조사를 벌여 후속 조치를 취해야 하지만 아무 일도 없이 유야무야 넘어갔다고 한다. 오히려 이 전 비서실장이 총선 참패 뒤 민심 수습 차원에서 대통령실에서 물러나면서 김건희 라인의 위세만 더 높아졌다.
앞서 이 비서관이 데려온 것으로 알려진 최모 비서관은 언론인 출신인데, 주변에 자신이 재직한 방송국의 인사를 주도할 것이라고 과시하고 다녀 언론계에서 평판이 곤두박질쳤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이 전 비서실장의 후임으로 들어온 정진석 현 비서실장이 취임 직후 첫 회의에서 “비서들, 정치하지 마라”고 바짝 군기를 잡았던 것도 괜히 나온 발언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정 실장도 반년이 지난 현재 낯빛이 어둡고 건강이 악화됐다는 얘기가 돌고 있다. 심지어 “곧 대통령실을 나갈 거라고 주변에 말했다”는 얘기도 들려온다. 이를 두고 용산 주변에서는 5선 의원이자 국회부의장까지 거친 관록의 정치인도 “여사 인맥이 파워게임을 벌이는 데다가 윤 대통령이나 공식 라인은 자신을 밀어주지 않으니 내심 스트레스가 곪았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정 실장은 강 전 비서관이 사표를 내고 공공기관 사장으로 직행하려 하자 주의를 줬다가 되레 ‘윗선’으로부터 질책을 당하는 수모도 겪었다고 한다. 알고 보니 강 전 비서관에게 이직(移職) 로드맵을 제시한 게 김 여사였다는 것은 용산에서 잘 알려진 얘기다. “김 여사가 얼마나 인사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는지 보려면 강 전 비서관의 사례를 보면 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김 여사의 총애를 받는 측근들은 대통령실 내부에서 ‘언터처블’로 자리한다. 대표적으로 강모 국정기획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은 지난 7월 용산 한남동에서 음주운전을 하다 경찰에 적발된 바 있다. 이 사실을 알고도 용산은 별다른 조치 없이 강 선임행정관을 정상 출근시켰다. 한 달 뒤에야 언론 보도가 나오자 부랴부랴 여론의 눈치를 보며 대기 발령 조치를 내렸다.
강 선임행정관의 공직 인생은 이제 끝난 것일까? 놀랍게도 기자가 취재 과정에서 만난 대통령실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저으며 “안 잘릴 가능성이 높고, 잘려봐야 다른 자리를 보장받을 것”이라고 냉소했다. 강 선임행정관은 과거 극우정당을 대변하는 유튜버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후 그는 정권 창출에 기여한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의 정무실장을 바탕으로 대통령실에 기용된 것으로 파악된다.
“金 여사 라인은 용산 복귀도 쉽다”
그런가 하면 김모 비서관은 트위터에서 금융전문가로 활동하며 공직 취임 전까지 고액을 받고 투자자문을 해주던 트레이더 출신이다. 그는 2013~2014년 김 여사의 코바나컨텐츠 주최 행사에서 도슨트로 활동하면서 친분을 맺었을 뿐 이렇다 할 정치 경력은 전무한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그는 이 의전비서관, 강 전 홍보비서관과 함께 용산에서 김 여사에게 통하는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린다.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기용되는 데 그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얘기가 떠돌 만큼 대통령실에서 주가가 높다. 또한 그는 올해 321억원 상당의 주식을 보유했다고 신고하면서 대통령실 재직 중 1년 새 210여 억원을 벌어들인 것으로 확인됐다. 가족 회사로 알려진 비상장 주식을 상당수 보유 중인데 이익이 크게 증가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김 여사 라인 중 황모 시민사회수석실 행정관은 김 여사 라인에서도 특별한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황 행정관은 앞서 김 전 감사의 녹취파일에서 “여사와 직접 통화하며 정보를 주고받는 가장 확실한 소식통”이라고 묘사될 만큼 30대임에도 최고 실세로 알려진다. 한참 어른이자 시민사회수석실에서 상사였던 김 전 감사가 오히려 저자세로 굽힐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윤 대통령과 40년 지기인 강원도 동해의 사업가 황모 씨의 아들이며 윤 대통령과 김 여사를 각각 ‘삼촌’, ‘작은 엄마’로 부를 만큼 가까웠다고 한다. 황씨 회사의 등기부에 윤 대통령 부부를 주선했다는 무정스님이 사내이사로 기재된 것도 우연은 아니다. 황 행정관은 대선 당시 캠프에서 윤 대통령의 대외일정 수행을 맡았으나 ‘문고리 인사’ 논란이 일자 코바나컨텐츠로 출근해 김 여사를 보좌한 바 있다. 그는 2021년 9월 김 여사 집안과 악연인 정대택 씨가 대선 정국을 뒤흔든 ‘윤석열 X파일’과 관련해 국회 증인으로 채택됐다가 나중에 철회되는 과정에서도 김 여사의 측근으로 활동한 것으로 파악된다. 당시 사정을 아는 인사는 “윤 대통령 부부의 운전기사였다. 차 안에서 얼마나 내밀한 얘기가 나오겠나. 그만큼 믿는다는 것”이라고 했다.
김 여사 라인 일부가 국회로 입성했다는 주장도 있다. 김 전 감사의 녹취에 따르면 국민의힘 조지연 의원(경북 경산)과 강명구 의원(경북 구미시)이 그들이다. 조 의원은 출마 전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실에서 행정관을, 강 의원은 대통령실 국정기획 비서관을 지낸 바 있다. 김 전 감사의 발언에 어떤 입장이냐는 물음에 강 의원은 “허무맹랑한 얘기여서 대응할 필요도 못 느낀다”고 본지에 전해왔다. 반면 조 의원은 아무 답변도 하지 않았다.
늘공들, 김여사 측근들 만나면 외면
이전과는 달리 “대통령 집무실과 같은 층이며 청와대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규모”라는 구체적인 설명까지 뒤따랐다. 하지만 용산 주변에서는 이조차도 유명무실한 기구로 전락할 공산이 높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제2부속실이 검토될 때 이미 김 여사 라인이 들어가는 것으로 인사가 내정돼 있었다는 얘기도 나온다. 김 여사를 덮어놓고 옹호하고 비호하는 이들에 둘러싸인다면 상황이 호전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김 여사 측근들의 현실 감각은 국민 여론과도 동떨어져 있다. 사석에서 기자와 만난 한 인사는 “여사님이 너무 좋은 집안에서 자라 훌륭한 사람만 만나다 보니 자신을 이용하려는 질 나쁜 세력의 의도를 구분 못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모두 호의로 받아들이니 이런저런 사고가 나는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측근은 “솔직히 대선 때 김 여사가 방탄 역할을 하면서 윤 대통령이 당선된 것 아니냐. 지금 같은 시기에 (여사를) 도와줘야 된다”고도 했다.
대통령실 내부에선 김 여사 라인을 애써 못 본 체하는 기류까지 감지된다. 대통령실의 한 인사는 “출범 초기부터 지금까지 실무진 교체는 숱하게 있었지만 김 여사 라인은 항상 자리를 지켰다. 특히 윤핵관이 꽂아넣은 어공(정치권 출신 공무원)들이 사고를 치고 사적 채용 논란까지 불거져 권고사직 폭풍이 불 때도 그들에겐 아무 일도 없었다. 윤핵관이 밀려나도 김 여사 라인은 굳건하다는 메시지가 된 것이다. 그렇게 인사 공백기를 몇 번 거치고 난 뒤 그들의 영향력은 더 커졌다”고 말했다.
최근 대통령실 ‘늘공(직업공무원)’들은 이들 김여사 측근들을 만나면 외면한다는 후문이다. 대통령실 한 행정관은 “김 여사와 관련된 보고는 위(비서관)에서 아예 안 보려고 한다.
특히 논란이 되고 있거나 부정적 여론, 혐의에 대한 보고를 확인한 것만으로도 나중에 현 정권이 탄핵으로 무너지면 같이 엮여 들어갈 수 있다는 걱정 때문 아니겠나. 박근혜 정부 때 얼마나 많은 청와대 인사들이 적폐 수사를 받았나? 여사 라인도 피하는 게 상책이라고 여기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공무원 집단은 학습 효과가 빠르다. 박근혜 정부 때는 자신이 한 일이 어떻게 평가받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너도나도 수첩에 필기하는 게 유행이었다면, 지금은 김 여사와 관련해 (같이 엮여 들어갈까봐) 외면하는 게 용산 대통령실의 현실이다.
안덕관 월간중앙 기자 ahn.deokkw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