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윤·한갈등을 바라보는 더불어민주당의 반응이다. 여권의 투톱이 서로 칼을 겨누고 있으니, 야당으로서는 누가 이기든 '꽃놀이패'에 가깝다.
다만 야권에서 이같은 여권 상황을 무조건 즐길수만은 없다는 우려도 없지는 않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정치인 한동훈이 가진 최대 약점 중 하나는 서사가 없다는 것이다. 강남-서울대 배경에 큰 굴곡 없었던 그의 성장 과정이 스토리텔링을 중시하는 대중에게 어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여러 상황이 다르긴 하지만, 윤·한 갈등이 과거 YS(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대척점을 세워 정치적으로 성장한 이회창 전 총재 모델이 되지 말라는 법이 있느냐"고 경계했다.
그렇다면 관전자인 민주당 입장에서 그려볼 수 있는 그림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역사적 사례에서 베스트와 워스트 모델을 꼽아봤다.
①베스트(Best): 1936년 시안사변
장제스(장개석)는 1930년대 국민당의 총통으로 중국을 호령했다. 그의 눈엣가시는 마오쩌둥(모택동)이 이끄는 공산당 세력이었다. 당시 공산당은 국민당에 밀려 서북부의 옌안 지역으로 달아난 상황. 장제스는 부사령관 장쉐량(장학량)을 시안으로 보내 토벌을 지시했다.
전력에서 열세였던 공산당은 민족주의에 호소했다. ‘힘을 합쳐 일본군과 싸우자’는 메시지였다. 당시 일본은 만주와 중국 북동부를 점령한 상태였다. 만주 군벌 출신인 장쉐량과 그의 부하들은 공산당의 호소에 동요했다. 토벌군이 주둔한 시안의 여론도 공산당의 주장을 지지했다.
장쉐량은 국공 내전 정지, 항일 공동 투쟁, 정치범 석방 등을 요구했고, 장제스는 이를 수용한 끝에 겨우 풀려났다. 수모를 겪고 벼랑끝에서 살아난 장제스의 반격이 시작됐다. 국민당 본거지 난징으로 돌아온 장제스는 장쉐량을 체포했다. 국민당 최고 지도부의 분열은 큰 후유증을 남겼다. 일본 패망 후, 국민당은 국공내전에서 패배했고 1949년 대륙에서 철수해 타이완에서 중화민국을 이어갔다.
민주당이 윤·한갈등을 관전하며 가장 기대하는 전개다. 여권의 투톱인 윤 대통령과 한 대표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충돌하고, 여권 약화→정권 교체로 이어지는 그림이다.
②워스트(Worst): 208년 적벽대전
유비는 주목받는 리더였고 주변에 쓸만한 인재도 있었지만 세력이 약했다. 이런 유비와 손을 잡고 조조와 맞서는 적벽대전을 설계한 것은 손권의 책사 노숙이다. 흔히 유비 측의 제갈량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역사소설 『삼국지연의』가 만든 픽션이다. 유비에게 형주의 요충지 강릉을 양보(대여)하라고 설득한 것도 노숙이다. 당연히 손권 주변에서는 반대가 심했다. 유비에게만 좋은 일이라는 이유에서다.
노숙의 구상은 대체로 맞았다. 힘을 키운 유비는 조조의 발목을 잡았다. 덕분에 손권의 오나라는 조조의 견제를 분산하며 힘을 축적할 수 있었다. 하지만 노숙의 계산이 하나 놓친 게 있었다. 유비가 형주에 이어 파촉까지 점령하면서 오나라에 필적하는 거대 세력으로 성장한 것이다. 그리고 유비 측은 다른 근거지를 확보하면, 오나라에 반환하기로 한 강릉을 돌려주지 않았다.
최근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한 대표가 윤 대통령보다는 말이 잘 통하는데 너무 세력이 없다. 수도권 보수층을 흡수해 어느 정도 힘을 갖추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러다가 한 대표에게 TK(대구·경북)까지 넘어가면 곤란하니까, 딱 거기까지만 바란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가 각각 TK와 수도권 보수층을 양분하는 상태는 좋지만, 한 대표가 보수층을 아우르는 ‘미래 권력’으로 자리잡는 것은 경계한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