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독립성 유지"..."베이조스 결정" 비판
지난 25일(현지시간) WP의 발행인 겸 최고경영자(CEO)인 윌리엄 루이스는 "WP는 이번 대선과 앞으로의 대선에서 특정 후보를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오피니언을 통해 밝혔다. 이 신문이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않는 건 조지 H.W. 부시(공화당)와 마이클 두카키스(민주당)가 맞붙은 1988년 대선 이후 36년 만이다.
WP는 1976년부터 줄곧 민주당 후보를 지지해왔다. 지난 2020년 대선에선 조 바이든, 2016년 힐러리 클린턴, 2012년 버락 오바마 당시 후보 등을 지지했다. 베이조스가 WP를 인수한 건 2013년이다.
루이스는 이번 결정의 이유에 대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나라의 수도에서 발행되는 신문사로서 독립성 유지가 우리의 임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가 할 일은 뉴스룸은 모든 미국인을 위해 초당파적인 뉴스를 제공하고 오피니언팀은 독자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생각할만한 시각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WP는 1952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공화당)를 지지한 것을 빼면 (이후) 6차례 대선 중 5차례에서 특정 후보를 지지하지 않았다"며 "우린 대선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우리의 뿌리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같은 날 WP는 별도 기사를 통해 "오피니언팀이 카멀라 해리스를 지지하는 사설 초안을 썼지만, 사주인 베이조스가 이를 게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의 편집인 로버트 케이건은 이 결정에 반발해 사임하며 "이는 분명 베이조스가 트럼프의 승리를 예상해 호감을 사려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WP의 칼럼니스트 17명은 공동성명을 통해 "이번 결정은 끔찍한 실수"라고 비판했다.
다만, WP 발행인 루이스는 이번 결정에 베이조스가 관여했다는 보도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고 부인했다.
이 신문 출신으로 워터게이트 사건을 특종 보도했던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도 공동성명을 내고 "대선을 불과 12일 앞두고 내린 이 결정은 트럼프가 민주주의에 끼친 위협에 대해 그간 WP가 보도해 온 압도적인 증거들을 무시한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측에선 WP의 이번 결정을 환영했다. 트럼프의 고문인 스티븐 밀러는 X(옛 트위터)에 "WP조차 지지를 거부하면서 해리스 캠페인이 가라앉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고 썼다. CNN에 따르면 트럼프는 WP가 특정 후보를 지지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몇 시간 뒤 베이조스의 우주 기업인 블루오리진 간부들과 만나 환담했다.
민주당 '텃밭' 최대 언론사도 "지지 안해"
앞서 지난 23일 현지 언론은 "LA 타임스가 사주인 바이오테크 거물 패트릭 순시옹의 뜻에 따라 이번 대선에서 후보 지지를 표명하지 않기로 했다"고 전했다.
LA타임스는 진보 성향이 강해 민주당 '텃밭'으로 분류되는 캘리포니아주(州)의 최대 신문사로 지난 2008년 대선 이후 민주당 후보를 지지해왔다.
순시옹은 이번 결정에 대해 "편집국의 결정을 수용한 것"이란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마리엘 가르자 LA타임스 편집장은 "해리스 지지 선언 초안을 작성하던 중 순시옹이 이를 철회하라고 했다"고 반발하며 사임했다. 순시옹의 딸 니카는 "이번 결정은 트럼프 지지를 의미하는 게 아니며 바이든 정부의 중동 전쟁 대응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 신문의 행보는 지난달 일찌감치 해리스 지지를 선언한 뉴욕타임스(NYT)와 대조적이다.
미국에선 표현의 자유를 규정한 수정헌법 1조를 근거로 언론사들이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관행이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폭스뉴스에 따르면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를 지지한 신문사는 10곳 미만인 반면 해리스를 지지한 신문사는 약 80곳에 이른다. 하지만 2016년 240곳의 신문사가 힐러리를, 2020년 120곳의 신문사가 바이든을 지지했던 것에 비하면 크게 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