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총재는 29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올해 성장률이 2.4%보다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며 “2.2∼2.3% 정도로 떨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앞서 한은은 3분기 실질 GDP(국내총생산) 증가율을 전 분기 대비 0.1%로 집계했다. 내수가 소폭 회복세를 보였지만 수출이 뒷걸음질 치면서 한은 전망치(0.5%)에 못 미친 것이다. 정부의 연간 경제성장률 목표치(2.6%) 달성에는 빨간불이 켜졌다.
4분기 전망도 어둡다. 수출 둔화세가 한동안 지속할 수 있는 데다 내수 회복세도 여전히 더딘 수준이라서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실장은 “4분기에 반도체 등을 중심으로 수출이 꺾일 조짐을 보이고 있고, 내수는 2분기에 워낙 안 좋았던 기저효과로 3분기 수치가 회복됐을 뿐 여전히 부진한 모습”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이 총재는 현재 전면적인 경기 부양책이 필요한 상황은 아니라고 봤다. “경기 침체라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면서다. 그는 “3분기 성장률 수치를 고려하더라도 연간 성장률이 잠재 성장률보다 높은 수준”이라며 “자영업자나 건설업 등 어려운 부분에 대해 부분적 부양은 필요하겠지만 금리 등으로 적극적 부양에 나서면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한은은 가격 변동 요인을 제외한 수출 물량을 기준으로 실질 GDP상 수출을 측정한다. 반면 정부는 통관 수출액(가격X수출량)을 기준으로 삼는다. 이 때문에 관세청이 집계하는 수출액 통계를 보면 지난 3분기 수출액은 1737억6100만 달러로, 지난 2분기보다 1.4% 증가했다. 전 분기보다 수출이 0.4% 감소한 한은의 실질 GDP 통계와는 방향이 다르다.
이 총재는 “가계부채‧부동산을 고려하지 않고 금리를 낮출 경우에는 다른 부작용이 있다”며 금리 인하 시점이 늦었다는 주장을 일축했다. 이날 공개된 금융통화위원회 의사록에서도 금통위원들은 내수 부진을 우려하면서도 금리 인하로 인한 가계부채 증가세가 금융안정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이수형 금통위원도 2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기자들과 만나 ‘실기론’을 정면 반박했다. “책임지지 않는 사람들이 김연아 선수한테 왜 은메달을 땄냐고 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는 “한은의 임무는 원래 물가 목표와 금융안정”이라며 “(통화정책은) 여러 요소와 경제 전반 건전성, 생산성, 체력을 고려해 우리 입장에서 최선을 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경제 성숙도가 달라졌기 때문에 전통적인 통화정책을 했을 때 얼마나 내수를 끌어내는지, 민간에 활력을 줄 수 있는지는 과거와 같은 영향을 기대하기 어렵다”며 “자영업이 어려운 것이 금리 인하로 해결되느냐, 해결된다면 얼마만큼 될 수 있느냐에 보수적인 입장”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은이 추가 기준금리 인하에 나서 경기 방어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는 계속 커지고 있다. "물가나 내수를 보면 금리 인하 여건이 조성됐다"(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 경제전망실장), "장기간 높은 수준에서 유지된 기준금리의 인하가 필요한 시점"(한국경영자총협회), "다음 달 0.5%포인트의 빅컷 금리 인하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윤상현 국민의힘 의원) 등 경제계·정치권을 망라한다. 세계적인 경기 둔화로 당장 수출 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운 데다, 고물가·고금리로 내수도 살아나는 데 한계가 있어서다.
이 총재는 다음 달 28일 기준금리 결정 방향에 대해 “하나의 변수만 보지 않고 종합적으로 보겠다”며 “미 대선과 연방준비제도(Fed) 금리 결정으로 달러(가치)가 어떻게 될지, 수출 등 내년 경제 전망과 거시안전성 정책이 부동산‧가계부채에 미치는 영향 등도 고려해 결정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