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스탈린의 속셈은 무엇이었을까. 문서들에서 드러난 결론은 유럽에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부터 소련은 서진을 거듭하며 유럽을 붉게 물들이던 중이었다. 가장 큰 장애물은 1949년까지 유일하게 핵무기를 보유했던 미국이었다. ‘철의 장막’ 운운하며 서방이 압박 강도를 높여갈 때 터진 6·25는 소련 입장에선 유럽 석권이라는 가장 중요한 전략 목표를 달성하는데 단비 같은 일이었다. 여기에 잠재적 경쟁자였던 중국의 힘을 빼는 효과까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북한 지상군의 참전이 이런 과거사를 재현하지는 않을까. 미국 CNN은 29일(현지시간) 전선에 파병된 북한군이 결국 우크라이나에 진입했다고 알렸다. 2명의 서방 정보 당국자를 인용, "소수의 북한군이 이미 우크라이나 내부에 침투했다"며 "당국자들은 북한군이 러시아 동부에서 훈련을 마치고 최전선으로 이동하게 되면 침투 병력 규모도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 당국자는 "상당수의 북한군이 이미 작전 중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우크라이나 고위 정보 당국자를 통해 3000여 명의 북한군이 민간 트럭에 실려 러시아 극동 지역에서 서부 쿠르스크 지역으로 비밀리에 이동했으며,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50km 떨어진 병영에 배치됐다고 전했다. 이 중에는 수백 명의 특수부대원도 포함됐다고 덧붙였다. 한국 국정원은 북한이 올해 12월까지 총 1만900명을 러시아에 파병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 정부는 북한의 파병에 맞서 155㎜ 포탄 지원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군 파병이 한국의 안보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고 반대급부로 러시아가 북한에 군사기술을 이전하는 등 레드라인을 넘고 있다는 점을 포탄 지원 이유로 들었다. 국정원은 북한이 러시아로부터 지원받은 첨단 부품과 기술협력을 통해 지난 5월 실패한 정찰위성 발사를 다시 할 준비가 됐다고 국회에 보고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6·25 전쟁 이후 현대전을 치러보지 않은 북한이 우크라이나전에서 얻은 경험을 100만 명이 넘는 북한군 전체에 습득시킨다면 우리 안보에 커다란 위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남북 안보 갈등이 근래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중국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바라볼까. 상당수 언론은 북한과 러시아의 밀착을 중국이 좋게 보지만은 않을 것이란 뉘앙스의 평가를 하고 있다. 경제·무역 등 영역을 중심으로 중국에 절대적으로 의존해온 북한이 러시아에 바짝 다가서고 '준(準)동맹' 성격의 조약까지 맺은 가운데, 중국으로서는 '한미일 대 북중러' 같은 서방과의 대결 구도에 끌려 들어가는 상황이 달갑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물론 미국을 상대로 경제적 실리를 추구해야 하는 중국 입장에서 이런 측면은 부담이 될 것이다. 중국 외교 당국은 조심스러운 반응을 이어오고 있다. 린젠 외교부 대변인은 29일 브리핑에서 ‘북러 군사 협력에 어떤 입장인가’란 기자 질문에 "각 당사자가 국면 완화를 추동하고, 우크라이나 위기의 정치적 해결에 힘써야 한다는 중국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고, 중국은 이를 위해 계속해서 건설적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고 원론적 답변을 했다. ‘중국이 파악하고 있는 정보’나 ‘한반도 정세에 대한 중국의 역할’을 묻는 질문에도 "중국은 시종 반도(한반도)의 평화·안정 수호와 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 프로세스 추동이 각 당사자의 공동이익에 부합한다고 인식해 왔다"고만 언급했다. 미국 정부가 '북한 압박에 나서달라'고 중국을 설득 중이라는 CNN 보도가 나왔지만 중국이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하리란 전망은 크지 않다.
확실한 건 북한의 파병이 이번 전쟁을 더 치열하게 만들고 당사국들의 피로를 증가시킬 것이란 점이다. 이런 측면에서 미국은 더욱 골치 아파질 것이다. 한반도의 안보 긴장도가 높아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적어도 미국과 안보 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엔 나쁘지 않은 상황이다.
중국이란 국가의 핵심 전략 목표 중 하나는 대만과의 통일이다. 통일을 이룩한다면 경제 침체로 허덕이는 시진핑 정권은 단번에 위기를 일소할 뿐만 아니라 신중국 역사에서 가장 굵은 글씨를 새기게 된다. 현재 대만에 대한 무력 통일을 공공연히 천명하고 있는 중국에 가장 걸림돌은 역시 미국이다.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지난 3년간 대만에 76억9700만달러(약 10조6800억원) 규모의 무기 판매를 승인했고 25일엔 또다시 19억8800만달러(약 2조7600억원)어치의 무기 판매 계획을 내놨다. 중국은 ‘주권 침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현재 유럽과 중동에서 ‘두 개의 전쟁’에 말려든 미국이 북한 참전으로 전쟁의 늪에서 헤어나오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북한 참전이 한반도 긴장도를 최고 수준으로 높인다면, 거기에 동맹국 안보를 책임지기 싫어하는 트럼프 정권이 탄생한다면 중국은 속내는 어떨까.
미국의 국가 대전략에서 핵심 원칙 중 하나는 두 곳 이상 지역에서 복수의 전쟁을 수행하지 않는 것이다. 스탈린의 소련은 6·25를 통해 미국의 힘을 빼 유럽 공산화라는 자신의 전략 목표를 달성하려 했다. 현재 대만 통일을 지상 과제로 삼고 있는 중국에게도 미국의 힘을 빼는 것은 중대한 국익이 될 것이다. 2차 대전을 치르느라 지치고 유럽에서 소련과의 대결에 집중해야 했던 미국이 6·25 직전 ‘애치슨 라인’을 발표해 한국과 대만을 방위선에서 제외했다. 이런 일이 재현된다면 중국은 속으로 함박웃음을 터뜨릴지도 모른다.
차이나랩 이충형 특임기자(중국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