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데뷔 30주년 박찬호와 멘토 이태일
두 저자와 함께한 인터뷰는 ‘박찬호 빌딩’으로 알려진 서울 신사동 PSG빌딩 팀61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책의 키워드에 대해 묻고 대답하는 방식이었다.
책 제목 ‘베터 앤 베터’(BETTER & BETTER) 의미는?
▶박찬호 대표(이하 박)=“나는 늘 더 나아지려고 노력했고, 분명한 계획을 세웠다. 그 노력과 꾸준함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이태일 대표는 항상 조언을 해 줬고, 같이 공부하는 시간도 많았다. 형제 이상의 친밀감도, 의견 충돌도 있었다. 끊임 없는 질문 속에서 서로 성장했던 것 같다.”
▶이태일 부사장(이하 이)=“큰 제목인 ‘B2’는 베이스볼 앤 베이스볼을 뜻한다. 야구 선수가 본 야구, 기자와 구단 운영자 입장에서 본 야구, 그를 통해 얻었던 교훈들을 담아보려고 했다.”
‘눈앞에 있는 타자를 알아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 스스로를 알아가는 일이었다’에 담긴 뜻은?
▶박=“1998년 다저스에 대투수 케빈 브라운이 있었다. 자신에게 혹독하고 까칠한 선수였는데 어느 날 자기 방으로 날 불렀다. 노인 한 분이 계셨는데 브라운의 멘털 코치인 하비 도프만 스포츠심리학 박사였다. 슬럼프에 빠져 있던 날 도와주려고 특별히 불렀다고 했다. 본인 얘기를 해 보라고 해서 서툰 영어로 30~40분 말했더니 다 듣고 나서 ‘알았다. 이젠 너의 얘기를 해라’고 말하는 거다. ‘왓? 지금까지 내 얘기 했다’ 그랬더니 ‘아니다. 부모님 걱정, 팬들에 대한 부담감, 동료에 대한 미안함 이런 건 네 얘기가 아니다’고 했다. 나는 타인의 생각과 행동을 내 것이라고, 내 얘기라고 착각하고 있었던 거다.”
그럼 자신의 얘기는 뭔가.
▶박=“내가 이렇게 던졌는데 공이 이렇게 가더라, 무시무시한 홈런 타자도 내가 몸쪽 직구 던졌더니 못 치더라, 이런 게 내 얘기라고 도프만 박사가 말해줬다. ‘부모·구단·팬·미디어 이런 건 늘 변한다. 변하는 건 네 것이 아니다. 네가 컨트롤 할 수 있는 것만이 네 것이다’는 말에 큰 깨달음을 얻었다. 내가 유일하게 컨트롤 할 수 있는 일, 즉 공을 어떻게 던질 건지 결정해서 목표에 정확하게 던지는 데만 집중하겠다고 다짐했다. 결국 타깃과 나의 승부지 나와 타자의 승부가 아닌 것이고, 내가 타자를 아웃 시키는 게 아니라 타자가 아웃을 당하는 거다. 그날 이후 슬럼프를 벗어났다.”
박찬호, 기자 집서 MLB 책 읽고 꿈 키워
고교 시절 이태일 기자 집에 갔다가 놀란 라이언의 책을 보고 ‘나도 훌륭한 투수가 돼서 한국 야구에 도움 되는 책을 만들고 싶다’고 다짐했다는 내용이 있다.
▶이=“‘피처스 바이블’이라는 책을 빼서 넘겨보길래 놀란 라이언이 어떤 투수인지 설명을 해 줬다. 그 책을 본다고 해서 메이저리거가 될 거라는 생각은 못했다.(웃음) 그런데 어느 날 이 친구가 놀란 라이언 특유의 하이킥 투구 폼을 하고 있더라. ‘아, 찬호가 지식에 대한 의지와 배우려는 열정이 강하구나. 멋진 선수가 돼 후배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책으로 전해줄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박=“그 책 모서리를 후루룩 넘기면 투구 동작을 연속으로 볼 수 있었다. 나한테는 큰 쇼크였다. 빠른 볼을 던지려면 저렇게 해야 하나 싶어서 흉내도 내 봤다. 책에는 투수가 웨이트 트레이닝과 러닝을 많이 해야 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당시 국내에선 투수가 웨이트를 많이 하면 안 된다는 얘기가 있었지만 나는 근력 운동을 정말 열심히 했다.”
‘가장 이상적인 타고남은 근력도 스피드도 아닌 호기심과 꾸준함이다’는 구절도 있다.
▶박=“난 굉장히 호기심이 많은 친구였다. 임춘애 선수가 라면 먹고 우승(1986 서울 아시안게임 육상 3관왕)했다는 기사 보고 ‘잘 뛰려면 라면을 많이 먹어야 되나 보다’ 싶어서 한동안 엄청 먹었다. 담력을 키우기 위해 한밤중에 공동묘지도 가고 깡패들 많은 유흥가도 가 보고 했다. 그런 호기심을 통해 찾은 뭔가를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다.”
마운드에서 부정적인 생각이 들 때마다 “So what? ”이라고 외쳤다던데.
▶박=“우리가 실패하는 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의심이 많아서다. 여기서 실패하면 어떡하지, 홈런 맞으면 어떡하지, 이런 두려움과 의심이 사람을 흔든다. 그럴 때 내뱉는 ‘그래서 어쩌라고’ 라는 말에는 용기와 대범함, 챌린지(도전)가 있다. 상사에게 내는 보고서를 만들 때 ‘통과될 수 있을까’ 걱정하기보다는 ‘소 왓’의 마음으로 내 버려라.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안 되면 다시 하면 된다.”
‘스포츠는 자기 육체를 끝없이 괴롭히는 일이기 때문에 즐거워야지 견딜 수 있다’는 구절도 인상적이다.
▶박=“재미있으면 안 지친다. 게임이 재밌으니까 밤새 하지 않나. 푸시업을 20개도 못 하다가 조금씩 늘려서 100개, 110개 하고, 이런 데 맛을 들이는 거다. 작은 목표를 하나씩 달성해 가면서 내 근육이 커지고 정신도 성장한다. 누가 시켜서 하면 재미도 없고 힘만 든다. 나는 운동장 100바퀴도 혼자서 어렵지 않게 돌았다.”
우리나라 선수들은 자기 입장을 명확하게 전달하는 능력, 스포츠 리터러시(문해력)가 떨어진다는 걱정을 하는데.
▶이=“우리 학생 선수들은 ‘운동할 시간도 모자라는데 무슨 공부를 해’ 라는 압박에 몰린다. 그런데 운동을 잘하기 위해서 운동만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하루라도 일찍 프로를 가서 한 시간이라도 더 야구를 하고, 군대도 면제 받을 수 있는 길을 찾는다. 그런데 프로야구 최다안타 기록을 갖고 있던 박용택, 홈런왕 양준혁, 최다승 투수 송진우 모두 대학 가고 군대 갔다 온 선수들이다. 야구를 잘 하려면 다양한 경험과 소양을 쌓아야 한다.”
최고 선수들은 군필, 다양한 소양 쌓아야
박찬호 대표의 사무실에는 현역 시절 각종 기록이 새겨진 수백 개의 야구공과 배트·글러브·사진 등이 전시돼 있다. 웬만한 박물관 못지않다. 박 대표는 “플레이 하드(Play hard), 열심히 하는 건 기본이다. 플레이 스마트(Play smart)로 가야 하는데 그러려면 역사와 데이터가 쌓여야 한다”고 했다. 다저스에서 메이저리그 첫 삼진을 잡은 공 얘기도 해 줬다. “그날 경기를 망쳐서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토미 라소다 감독님이 그 공을 갖고 있다가 건네주면서 ‘너는 역사의 한 사람이 됐어’라고 말했다. 내가 남긴 발자취가 훗날 어떻게 인식이 될 건지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
올해 KBO리그가 1000만 관중을 돌파했는데 대표팀의 국제경쟁력은 점점 떨어지는 것 같다.
▶박=“한 시즌 1000만 관중은 엄청난 일이다. 이런 잔치 분위기 속에 위기가 도사리고 있다는 걸 느꼈으면 한다. 과거 야구 대표팀은 국민에게 기쁨과 자랑이었는데 요즘은 나가기만 하면 욕을 먹고 내부에서 서로 비난하는 모습이다. 그런데도 KBO리그 인기가 폭발하니 현실을 잊고 있는 것 같다. 지금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한국 선수가 몇 명이나 되나. 일본과 비교해서 부끄러운 수준이다. 꿈나무들과 다문화 아이들 속에서 원석을 키워내고, 동남아 등으로 야구를 확산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할 때다.”
▶이=“야구의 지속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 아무리 훌륭한 기업도 200년 가기 어렵지만 야구는 우리 손주의 손주들까지 즐길 수 있으니까 500년 이상 갈 수 있다. 한국 야구의 정체성을 살리고 지역에 뿌리박은 야구단을 만드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두 저자는 “함께 잘사는 사회, 즐겁고 공정한 문화를 만드는 데 야구가 보탬이 됐으면 좋겠다”며 손을 맞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