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디지털교과서가 내년 시범 도입을 앞둔 가운데, 교육청별로 책정된 예산 편차가 최대 260배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AI디지털교과서 도입은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사업이지만 학교에 직접 투입되는 구독료(사용료), 인프라 구축 등의 예산은 교육청이 편성, 집행한다.
경기는 3900억, 울산은 15억…격차 260배
5일 예산안을 공개한 시도교육청의 AI디지털교과서 관련 예산을 비교한 결과, 교육청별로 금액이나 예산 비중에서 차이가 컸다. 경기도교육청은 내년도 23조 540억 원의 예산안 중 3918억 원(1.7%)을 AI디지털교과서 관련 비용으로 편성했다. 정보화여건 개선비 3389억 원, 학습안전망 구축 및 교과서 구입 지원비(구독료) 529억 원 등이다. 내년부터 정부가 초등 3·4학년, 중 1학년, 고 1학년 영어·수학·정보 과목에 AI디지털교과서를 시범 도입하기로 한 계획에 맞춰 관련 예산을 증액했다.
서울시교육청은 내년도 AI디지털교과서 관련 예산으로 2037억 원을 편성했다. 전체 예산 10조 8102억 원의 1.8% 수준이다. AI디지털교과서 구매 비용(구독료) 256억 원, 스마트기기 구입 1472억 원, 충전함 설치 97억원 등이다. 제주도교육청도 1조 5973억 원 중 299억원(1.8%)을 AI디지털교과서에 투입한다.
반면 울산시교육청은 AI디지털교과서와 관련해 구독료 15억 원 외에 다른 예산은 편성하지 않았다. 구독료도 1년치 예상 금액 45억 원 중 30~40% 수준만 반영됐다. 시교육청 전체 예산 2조 2948억 원의 0.06%에 해당한다. 학생 수가 가장 많은 경기도와는 260배가량 차이 난다.
울산시교육청 관계자는 “이미 유선망, 디바이스 등 관련 인프라는 다 구축돼있는 상태”라며 “추가로 필요한 예산은 학기 시작 후라도 추경을 통해 마련할 계획이 있다”고 설명했다.
아직 예산안을 확정하지 못한 교육청에서도 상대적으로 적은 예산을 책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인천시교육청 관계자는 “현재 전체 예산의 1%인 500억 원가량을 인프라 구축, 디바이스 구매, 구독료 등에 편성할 예정”이라며 “더 편성하고 싶어도 예산 사정이 녹록지 않다”고 했다.
진보 교육감 AI디지털교과서 도입에 신중
교육청별 예산 격차가 큰 이유 중 하나는 예산 편성 권한을 가진 교육감의 성향 차가 꼽힌다. 진보 성향의 교육감들은 대체로 AI디지털교과서 도입과 관련해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17명의 교육감 중 진보·중도 성향인 인천·대전·광주·울산·세종시와 충남·전북·전남·경남도 교육청 등 9개 교육청이 AI디지털교과서 찬성·반대·기타 선택지 가운데 ‘기타’를 선택했다. 반대는 하지 않지만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취지다. 당시 부교육감 대행 체제였던 서울은 의견을 내지 않았다.
교육감들은 정부의 긴축 재정 운영으로 인한 재정난을 명분으로 내세운다. 내년부터 1조 7000억 원가량의 담배 소비세 내 교육세 이관이 일몰되는 데다 고교 무상교육·유보통합·늘봄학교 등 재정부담이 큰 교육정책 사업도 모두 교육청 예산으로 지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AI디지털교과서 예산을 1% 이상 편성한 제주, 경기, 서울도 ‘비상금’인 안정화 기금을 끌어온 상황이다.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지난해 9000억 원, 올해 1조 원이 넘는 기금을 사용했다”며 “내년 잔여 안정화 기금은 3600억 원 수준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시도교육청의 추가 예산 편성 등을 유도해 디지털교과서 보급에는 차질이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교육부 관계자는 “아직 교과서 출판사와 구독료 협상 전이기 때문에 교육청 역시 정확한 예산을 추계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며 “2026학년도 이후 반영 과목 등을 조정해 시도교육청에 재정 부담이 없도록 하겠다”고 했다. 또 “특정 항목을 지정해 교육청에 내리는 특별교부금 편성도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