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처럼 멈추지 않는 외국인투자자의 매도세에 ‘한국 대장주’ 삼성전자 주가가 결국 5만원 밑으로 떨어졌다. 종가 기준으로 삼성전자 주가가 5만원대 아래로 내려온 건 코로나19 시기였던 2020년 6월 15일 이후 4년 5개월 만이다. 삼성전자 시가총액도 300조원 대가 깨졌다.
외국인투자자는 삼성전자를 12거래일 연속 팔았다. 이날도 삼성전자 주식을 4770억원 어치 순매도하는 등 이달 들어서만 2조8750억원을 팔아치웠다. 삼성전자 매물을 사들인 건 개인투자자들로 이날 3650억원, 이달엔 2조8150억원을 담았다. 이날 SK하이닉스 역시 전일보다 5.41% 급락한 17만3000원에 장을 마감하며 4거래일 연속 하락세를 보였고, KRX 반도체 지수도 -2.79% 떨어졌다. 이날 코스피는 닷새 만에 0.07% 올라 2418.86에 마감하며 가까스로 하락세를 멈췄지만, 코스닥 지수는 1.17% 내렸다.
삼성전자는 내우외환이 겹쳐 주가가 이례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내부적으론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 선점 실패에 따른 기술력 의구심,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사업) 사업 부진 등에 위기감이 높아진 상태다. 미래에셋증권은 이날 삼성전자 목표주가(12개월)를 기존 11만원에서 8만4000원으로 내리면서 “HBM의 매출화 시기에 대한 낙관적 전망이 지배적이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삼성증권도 삼성전자 목표주가를 8만3000원으로, 신한투자증권도 9만원으로 내려 잡았다.
여기에 ‘트럼프 쇼크’도 무시할 수 없는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당선으로 달러 강세와 무역 분쟁 우려로 반도체 심리가 전반적으로 악화한 것이다.
이에 외국인투자자들은 트럼프 2기 정부의 관세 폭탄에 직격탄을 맞을 한국, 대만 등 대미수출 흑자국에서 자금을 거둬들이고 있다. 외국인들은 ‘아이셰어 MSCI 한국(EWY)’ 등의 상장지수펀드(ETF)로 한국에 투자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에서 삼성전자는 17% 안팎의 비중을 차지한다. 외국인이 ‘셀 코리아’에 나설수록 자동적으로 삼성전자 순매도가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는 고점 대비 약 44% 빠졌는데, 금융위기 때 하락폭이 -46%였다. 극심한 저평가 구간에 들어온 것”이라며 “여러 악재가 많지만 실제 현실화한 우려는 없다. 불안 심리가 주가에 반영된 것이라면, 불안감이 진정되는 것만으로도 반등할 소지가 있다”고 분석했다. 악재가 이미 주가에 많이 반영돼 있다는 이야기다.
KB증권 하인환 연구원도 “현 시점에서는 미국 제조업 건설투자의 증가세가 둔화해 반도체 업종 자체를 선호하진 않는다”면서도 과거 삼성전자 주가순자산비율(PBR)이 1 미만으로 낮아진 이후 반등했다는 점을 들며 “삼성전자의 주가가 바닥에 근접해가고 있다”고 봤다.
외환 시장은 정부의 ‘구두 개입’에도 원화값이 1400원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14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원화값은 주간거래 종가(오후 3시30분) 기준 전날보다 1.5원 소폭 오른(환율하락) 1405.1원에 마감했다.
개장 직전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금융ㆍ외환시장 변동성이 과도하게 확대되는 경우엔 적극적 시장안정조치를 적기에 신속히 시행해달라”며 구두 개입에 나섰다. 이에 원화값도 전일 종가보다 3원 오른 1403.6원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트럼프발 강달러가 몰아치며 오전 11시께 1409.3원까지 밀려났고 결국 1400원대를 유지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13일(현지시간) 기준 주요 6개 통화 대비 미국 달러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106.48까지 뛰었다. 1년여 만에 가장 높다. 박상현 iM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세계적으로 미국 달러만 독주하고 있어 정부의 구두개입 효과가 크지 않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