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인터뷰 : 286조원 굴리는 ‘미국 가치투자의 전설’ 하워드 막스
그의 역발상 투자가 빛을 발한 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너무 많은, 무모한 투자가 이뤄졌다”며 갑작스레 시장에서 빠져나왔을 때다. 그리곤 리먼 브러더스 파산과 함께 시장이 붕괴하자 15주에 걸쳐 매주 5억 달러(약 6000억원) 이상씩 투자해 큰 이익을 거뒀다. 이후로도 오크트리의 투자 원칙은 바뀌지 않았다. '쌀 때 사서, 비싸게 판다'.
그가 매달 투자자에게 보내는 메모를 두고 워런 버핏은 “메일함에서 가장 먼저 찾아 읽는다”고 치켜세운다. 방한한 그를 지난 13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인터뷰했다. 트럼프 얘기부터 시작했다.
-‘트럼프 2기’ 시대를 앞두고 있습니다. 주식과 채권, 부동산, 금, 가장자산까지 투자자는 어디에 주목해야 합니까.
“우리는 생각보다 트럼프를 잘 모릅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가 ‘이념적인 지도자(ideological leader)’가 아니라 ‘거래하는 지도자(transactional leader)’란 사실 뿐입니다. 섣불리 예측하는 대신, 트럼프 정부의 행동을 봐야 합니다. 핵심은 빚을 갚을 능력이 있는 좋은 회사에 투자하는 것입니다.”
-밋밋하게 들립니다.
“경제학자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1908~2006)의 말처럼 두 부류의 예언자가 있죠. 모르는 사람과,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 ‘잘 모르지만’ 또는 ‘내가 틀릴 수도 있지만’이라는 말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투자자를 큰 곤경에 빠뜨리는 법이 없습니다.”
원론적인 얘기로 들리지만, 그가 오랫동안 지켜온 투자 철학이다. "확신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7월 투자자에게 보낸 메모)이라는 것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은 유튜브에 차고 넘친다”며 “족집게처럼 투자 종목을 짚거나, 미래를 예측하기보다 투자의 본질을 얘기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가 말하는 투자의 본질은 2012년 펴낸 베스트셀러『투자에 대한 생각』에서 엿볼 수 있다. 이 책은 리스크(위험)에 대한 언급으로 가득하다. 리스크는 우리기 인지하지 못할 때 가장 크고, 거꾸로 리스크가 가장 크다고 여기는 곳에 기회가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가 발언은 방어적이지만, 월가에선 역설적으로 가장 공격적인 투자자로 꼽히는 이유다.
-확실한 ‘트럼프 스톰’이 예상되는 영역도 있지 않을까요.
“트럼프 1기(2017~2020년) 때 수많은 예측이 맞아떨어졌나요? 당시는 대선 결과부터 힐러리 클린턴이 이긴다는 예측이 다수였습니다. 하지만 트럼프가 승리했죠. 트럼프가 이길 경우 주식 시장은 폭락한다는 확신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결과는? 트럼프 당선 후 14개월간 증시가 30% 이상 올랐습니다. 전문가들이 틀린 예측 이후 반응은 다음에 더 나은 전망을 하겠다는 다짐뿐이었습니다.”
-정중히, 한 번만 더 묻고 싶습니다.
“만약(if), 만약에 상당한 경우라면(그는 만약을 5번이나 강조한 끝에야 답을 이어갔다), 인플레이션이 증가하는 것이 주요 위험입니다. 미국의 기준금리는 향후 5~10년간 평균 3~3.5% 수준에 머무를 것입니다. 예전의 초(超) 저금리 시대로 돌아가지 않을 겁니다. 그렇다면 제가 할 수 있는 조언은 장기 채권(bonds)을 사지 말라는 것입니다. 만약 금리가 오른다면 채권값은 상당히 떨어질 것입니다. 인플레이션을 우려한다면 20년, 30년물 채권을 사지 말라고 조언하겠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대부분 장기 투자자산이 인플레이션 환경에서 가치가 하락할 것입니다.
-채권 투자자가 아니더라도 당신의 조언을 구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나만 더 말씀드리죠. 미국 경제가 계속 번창할 거란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트럼프의 행동이 그것(미국의 지속적인 성장)을 돌려세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여러 시나리오를 준비한다면 투자자도 함께 번창할 것입니다.”
그는 인터뷰 내내 “스스로 모른다고 말하는 전문가가 가장 안전하다”며 “확신에 찬 의견을 말하는 전문가는 매력적일지 몰라도 틀릴 가능성이 높다”고 전제했다. 와튼스쿨에서 공부하던 20대 시절 우연히 접한 불교의 교리 ‘무상(無常·덧없음)’을 새겼다는 그의 일화가 떠올랐다. ‘투자의 구루(guru·대가)’로 꼽히는 이들의 미래 예측을 귀담아듣지 말라는 그의 ‘선문답’식 조언이 이어졌다. ‘얼치기’ 전문가의 투자 지침서로 가득한 세상에서 담백한 고전을 듣는 듯했다. 몇 마디만 그대로 옮긴다.
“예측해서 부자가 된 투자자는 드뭅니다. 위대한 투자자는 예측을 피함으로써 부자가 됐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성공 가능성이 높은’ 투자를 해야 합니다.”
“입증되지 않은, 위험하고, 때로는 생존을 위하는 투자를 한다면, 수익을 극대화하려 애쓰지 말아야 합니다. 생존의 열쇠는 워런 버핏이 늘 강조해서 이야기하는 안전 마진(Margin of Safety)에 있습니다.”
“우리가 불확실성을 인정한다면 조사하고, 재차 확인하고, 신중하게 투자를 진행할 것입니다. 투자하기 좋은 때라면 이런 방식 때문에 투자수익이 최적이 아닌 차선에 그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순식간에 망하거나 실패할 가능성은 줄어듭니다.”
-챗 GPT와 엔비디아가 대표하는 인공지능(AI) 투자 붐이 뜨겁습니다.
“2000년대 초반 인터넷이 성장할 당시 ‘닷컴 버블’을 떠올려봅시다. 당시 인터넷이 세상을 바꿀 것이란 믿음이 컸습니다. 실제 그렇게 됐고요. 하지만 당시 생겨난 회사의 상당수가 현재 사라졌습니다. 최근 투자자 사이에서 AI가 마치 ‘조직화한 종교(Organized Religion)’처럼 인식되고 있는데 지나친 기대감을 경계해야 합니다. AI는 모든 시장 붕괴를 막아줄 수 있는 존재도, 피해갈 수 있는 존재도 아니니까요.”
-AI에 투자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이십니까.
“AI가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건 쉽습니다. 하지만 어떤 회사가 성공할지는 모릅니다. AI 회사를 골라 투자 포트폴리오에 얼마나, 어떻게 반영해야 하는지 결정하는 게 어려운 일이지요. AI 관련주에 투자한다고 해서 성공하는 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역사적으로 모든 거품은 광범위한 확신에서 출발했습니다. 위험을 피하고 싶다면 여러 회사에 ‘적당한(moderate)’ 규모로 투자하십시오.”
그를 만난 13일 중앙일보 1면 머리기사 제목은 〈코스피 2500, 원화가치 1400원 다 깨졌다. 금융 ‘트럼프 쇼크’〉였다. 이날 코스피 지수는 나흘 연속 하락한 끝에 2417.08로 장을 마쳤다. 지난 8월 5일 ‘검은 월요일’ 이후 석 달여 만에 2500선을 내줬다.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원화 값은 1407원에 마감했다. 환율 방어 ‘마지노선’인 1400원을 넘겼다. 21일 현재까지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트럼프노믹스(트럼프 정부의 경제 정책)’가 한국에 특별히 더 큰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시장의 부정적 관측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국내 증시에 대한 불신이 깔려있다는 점에서 ‘코리아 엑소더스(대탈출)’란 분석도 나온다.
-한국에선 ‘국장(국내 증시) 엑소더스’에 대한 우려가 큽니다.
“(그는 메모지를 꺼내 그래프까지 그려가며 설명을 이어갔다) 가로축은 시간, 세로축은 가격입니다. (경제가 성장한다는 전제에서) 자산의 공정한 가치(fair value)는 시간이 지나면서 우상향할 겁니다. 하지만 이 곡선은 항상 출렁입니다. 낙관론이 득세할 때는 과대평가한 셈이니 가격이 곧 내려가겠죠. 반대로 비관론이 득세할 때는 가격을 과소평가한 셈이니 다시 오를 겁니다. 우리는 저평가된 자산을 사면 될 뿐입니다.”
-한국 증시가 저평가됐다는 의미입니까.
“한국 증시를 떠나는 것은 단기적으로 좋은 판단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나쁜 판단입니다. 많은 사람이 팔아서 떨어진 주식은 할인품이기 때문에 매력적입니다. 사실 오늘날 미국 주식에 투자한다면 높은 가격을 지불해야 합니다. 최근 한국 증시가 부진하더라도 매우 저렴하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테마주’ 열풍이 상징하는 국내 투자 문화의 후진성도 종종 지적됩니다. 냉·온탕을 오가는 본성을 ‘투자자의 야성’으로 치부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최악의 투자는 흥분해서 이미 잘 된 것을 더 많이 사고, 우울해져서 앞으로 충분히 잘 될 것을 덜 보유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최악을 피하기 어려운지 아십니까? 인간의 본성에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투자는 도박이 아닙니다. 장기적인 부의 축적입니다. 좋은 경제와 회사에 투자하고, 다각화한 포트폴리오에 담아 꾸준히 보유할수록 성공 확률이 높아집니다. 이것이 비(非)전문 투자자가 달성할 수 있는 유일한 성공 방정식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워드 막스
1946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다.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을 졸업하고 시카고대에서 경영학 석사(MBA)를 땄다. 1969년 씨티코프 애널리스트로 투자 업계에 뛰어들었다. 1985년 TWC그룹으로 옮겨 부실 채권, 고수익 채권 등 투자를 총괄했다. 1995년 오크트리 캐피털 매니지먼트를 창업해 회장을 맡아왔다. 개인 자산은 22억 달러(약 3조원). 포브스 선정 세계 억만장자 순위 1496위(2024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