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렌드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욕망과 가치를 반영합니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의 모호함을 밝히는 한줄기 단서가 되기도 하고요. 비크닉이 흘러가는 유행 속에서 의미 있는 트렌드를 건져 올립니다.
」 계엄 사태와 탄핵 시위로 어느 때보다 우울한 연말이지만, 그럼에도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발견할 수 있는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맘때쯤 연례행사처럼 서울 곳곳을 물들이는 크리스마스 행렬이 올해도 어김없이 재현되면서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대형 미디어 파사드로 주목도를 높이는 데 집중했던 예년과 달리 크리스마스 마켓을 재현한 공간이 늘었다는 점. 대형 트리를 중심으로 소품이나 간단한 음식 등을 판매할 수 있도록 상점가를 열고 체험 중심의 콘텐트를 강화한 형태다. 단순 인증샷 촬영만이 아니라 직접 방문해 경험하고, 오랫동안 체류할 수 있도록 보다 적극적 형태로 변화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6일 경기도 이천 시몬스테라스에서 열린 크리스마스 마켓. 지역 소상공인들과 협업해 크리스마스 테마의 상점가를 열었다. 사진 시몬스
수면 브랜드 시몬스가 연말을 맞아 경기도 이천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 시몬스 테라스에서 ‘크리스마스 마켓’을 열었다. 지난해에 이어 2회째로 지난 6~8일에 이어 오는 13~15일까지 총 6일간 개최된다.
시몬스 테라스는 지난 2018년부터 연말마다 ‘트리 명소’로 유명세를 타왔다. 너른 잔디 마당 곳곳에 세워진 최대 8m 높이 대형 트리를 배경으로 인증 샷을 찍는 사람들이 몰리면서다. 지난해부터는 방문객들을 위한 체험 거리를 늘리기 위해 마켓 형태의 이벤트를 열고 있다. 지난해 시몬스 크리스마스 마켓 6일간 방문객은 3만여 명에 달했다.
지난 6일 방문한 시몬스 크리스마스 마켓에서도 오건농장(토마토), 온방(요거트·치즈), 라우딸기(딸기), 더숲온(소품) 등 이천 지역 소상공인들이 중심이 된 작은 마켓이 성업 중이었다. 이 밖에 필기구 업체 ‘파이롯트’, 빈티지 패션 편집숍 ‘수박 빈티지’ 등 브랜드 부스도 눈에 띄었다. 시몬스 관계자는 “이천 지역에 사업장이 있는 만큼 상생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지역 상인들과 협업해 매년 크리스마스 테마의 마켓을 열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성수동 복합문화공간 LCDC서울에서 열린 크리스마스 마켓 '윈터 트립.' 사진 SJ그룹
같은 날 서울 성수동 복합문화공간 LCDC 서울에서도 크리스마스 마켓 ‘윈터 트립’이 열렸다. LCDC 서울은 패션 기업 SJ그룹이 지난 2021년 문을 연 공간 플랫폼. 개관 이후 누적 85만명이 다녀가면서 성수동의 명소로 자리 잡았다.
윈터 트립은 올해 2회째로, LCDC서울의 가장 큰 연중행사다. 특히 올해는 개관 3주년을 맞아 100여평에 달하는 야외 광장에서 다양한 브랜드를 초청한 크리스마스 마켓 형식으로 연출돼 눈길을 끌었다.
윈터 트립은 지난 6일부터 8일까지 주말 3일간 개최됐다. 뱅쇼·핫초코·슈톨렌 등 겨울 간식을 판매하는 부스부터, 트리 장식·크리스마스 카드·향초·장갑 등 계절에 어울리는 라이프 스타일 상점까지 다채롭게 구성됐다. LCDC서울 관계자는 “크리스마스 기차 여행 콘셉트로 연출했던 지난해 윈터 트립은 전년 동기 대비 방문객 30% 증가, F&B 매출 10% 증가 등 의미 있는 결과를 얻은 바 있다”며 “실력 있는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와 함께하는 올해 행사도 고객들에게 특별한 경험과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연말에 어울리는 잡화 및 액세서리, 간식 거리 등을 판매하는 부스로 구성돼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사진 SJ그룹
백화점 업계에서도 대형 오프라인 공간을 활용한 다양한 형태의 크리스마스 마켓을 열어 눈길을 끈다. 대표적으로 롯데백화점 잠실점은 지난달 20일부터 ‘롯데 크리스마스 마켓’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보다 공간을 20% 늘린 역대 최대 규모로, 약 700여평의 공간에 유럽 현지 크리스마스 마켓 분위기를 연출했다는 설명이다.
서울 송파구 잠실 월드몰 앞 야외 잔디 광장에 선보인 크리스마스 마켓 전경. 사진 롯데쇼핑
내달 5일까지 진행되는 이번 마켓에는 연말 장식, 소품, 선물, 액세서리, 먹을거리 등 다양한 크리스마스 테마의 41개 상점이 참여했다. 마켓의 하이라이트는 22m 높이의 대형 트리와 회전목마. 크리스마스 마켓 입장권을 구매한 고객은 무료 이용할 수 있다. 이 밖에 소원의 벽, 포토 부스 등 가족·연인·친구와 함께 방문한 고객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체험형 콘텐트들도 다양하게 마련됐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같은 공간에서 열린 크리스마스 마켓의 방문객만 약 24만명. 특히 20·30세대 비중이 70%를 차지할 만큼 체험 거리를 원하는 젊은 소비자들에게 호응이 높다고 한다. 이밖에 롯데 타임 빌라스 수원에서도 지난달 28일부터 내년 1월 5일까지 첫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린다. 약 180여평의 공간에 식음료·와인·식료품점 등 16개의 상점이 운영된다.
서울 중구 소공로에 위치한 신세계백화점 본점의 신세계스퀘어 크리스마스 영상을 관람하는 시민들. 사진 신세계백화점
해마다 유통가의 크리스마스 장식 경쟁은 격화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고물가 여파로 경기침체가 지속하면서 연말 성수기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컸던 터였다. 빠르게는 11월 1일부터 크리스마스 공간을 꾸려, 주로 12월 말에 집중되는 크리스마스 수요를 앞당기기도 했다. 업계에 따르면 현대백화점은 크리스마스 팝업 오픈 첫날인 지난달 1일부터 28일까지 여의도 더현대 서울 일평균 방문객이 6000여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45% 늘었다. 미디어 파사드를 볼 수 있는 신세계백화점 본점 외부에는 지난 1일부터 열흘간 지난해보다 59% 늘어난 20만 명이 방문한 것으로 집계됐다.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더현대서울의 크리스마스 장식 전경. 움직이는 대극장을 테마로 했다. 사진 현대백화점
올해는 이런 크리스마스 장식이 마켓으로 진화, 관람에서 체험으로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뚜렷하다. 방문하는 소비자의 시간을 보다 오래 점유하기 위한 다양한 콘텐트가 동원되는 것이다. 천천히 시간을 들여 산책할 수 있는 상점가를 연출하거나, 편지 쓰기·사진 찍기 등 경험 거리를 더하는 식이다. 연말 분위기에 맞게 소상공인·작은 브랜드와의 협업, 지역 사회 기부 등 착한 메시지를 넣는 경우도 많다. 시몬스는 지역 농가나 상인들의 참여를 끌어냈고, 롯데백화점은 크리스마스 마켓의 수익금의 일부를 송파구청 후원사업에 기부할 계획이다.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