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내년 성장률 1%대" 글로벌 IB 8곳 중 5곳의 경고, 왜

한국의 경제 전망이 갈수록 어두워지고 있다. 내년 성장률은 잠재성장률 수준을 밑도는 1%대에 머무를 것이란 관측이 속속 나오는 중이다. 한국 경제의 성장 동력을 끌어올릴 상방 요인은 많지 않고, 하방 위험이 많다는 평가다.

24일 세계 주요 투자은행(IB) 8곳의 내년 경제 전망을 보면, 최근 바클레이스·씨티·JP모건·HSBC·노무라 등 5곳이 내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1%대에 머무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국제금융센터가 집계한 이들의 내년 한국 성장률 전망치 평균은 지난달 말보다 0.1%포인트 낮은 2.0%였다. 올 상반기 2.2% 수준에서 계속 내리막이다.

해외에서 내년 한국 경제를 부정적으로 보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우선 수출‧소비‧투자 등 국내 경기를 좌우하는 주요 요인들의 성장 모멘텀(추세)이 약해지고 있다. 한국 경제를 지탱했던 수출은 ‘피크 아웃(peak out‧정점을 찍고 하락 전환)’이 우려된다. 실제 월별 전년 동기 대비 수출액 증가율은 7월 13.5%, 8월 10.9%로 10%를 웃돌다 9월 7.1%, 10월 4.6%로 둔화하는 추세다. 연내 흐름으로 보면 지난 3분기에는 수출이 전 분기 대비 0.4% 감소로 돌아섰다. 이 여파로 3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기 대비 0.1% 증가하는 데 그쳤다.

“반등 모멘텀 안 보여”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글로벌 IB뿐만 아니라, 외국계 증권사 중에선 SG증권이 내년 한국 성장률 전망치를 당초 2.1%에서 1.6%로 하향 조정했다. 오석태 SG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수출 증가율이 점차 둔화하는 가운데, 민간 소비와 투자가 반등해야 하지만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오 이코노미스트는 “지금 추세로 간다면 월별 수출 증가율이 다시 0%에 수렴할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며 “소비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대로 안정화했는데도 활기를 찾지 못하고 있고, 부진한 건설업을 중심으로 투자도 부진이 계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소비를 나타내는 소매판매도 지난 9월에 전월 대비 0.4% 줄었고(전년 동월 대비 2.2% 감소), 건설업체 실적을 나타내는 건설기성도 전월 대비 0.1% 감소(전년 동월 대비 12.1%) 감소했다. 건설 경기 악화는 나아가 고용시장 전반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명약관화’ 트럼프 리스크

내년 출범하는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불확실성도 한국에 큰 짐이다. JP모건은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 내년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8%에서 1.7%로 하향 조정했다. JP모건은 “내년 2분기부터 미국이 중국산 상품에 대한 관세를 대폭 인상할 것으로 보인다. 내년 2‧3분기 중국 경제성장률 둔화가 한국의 수출‧산업생산 증가율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밝혔다.

박석길 JP모건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미국과 중국 간의 무역 긴장 고조가 예고된 상황에서 특히 중국 성장률에 마이너스(-) 요인이 많을 것으로 봤고, 한국도 여기에 영향을 크게 받을 것이라고 예상한다”고 설명했다. SG증권 오 이코노미스트도 “트럼프발(發) 하방 리스크가 현실화한다면 전망치는 더 낮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도 미국의 관세정책에 압박을 받을 것이란 예측도 나오고 있다. 골드만삭스의 아시아‧태평양 이코노미스트 앤드류 틸튼은 최근 CNBC 방송에서 “한국과 대만은 반도체 분야에서 미국에 대해 큰 이익을 봤다”면서 “향후 미국과 교역하는 아시아 국가는 이런 흑자 규모를 줄이고, 미국으로부터의 수입을 가능한 늘리는 등의 수단을 강구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경기 부양‧잠재성장률 제고할 여력 있나”

최상목(오른쪽)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대외경제장관 간담회를 열고 미국 신정부 출범 동향 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향후 범정부 차원의 대응 계획을 논의하는 모습. 사진 기획재정부

최상목(오른쪽)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대외경제장관 간담회를 열고 미국 신정부 출범 동향 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향후 범정부 차원의 대응 계획을 논의하는 모습. 사진 기획재정부

대외 여건도 어렵지만, 한국이 내년 적극적인 경기 부양책을 펴고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있는 정치‧경제적 여유가 있냐는 점에도 해외에선 물음표를 찍고 있다. 익명을 요청한 한 해외 IB 이코노미스트는 “정부가 ‘건전재정’을 강조해 왔지만, 재정 수입은 정상화되지 못했다”며 “건전재정이 일종의 선언에 그치면서 앞으로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펴지도 못하는 딜레마 상황에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성장률 둔화 전망이 줄을 잇고 있지만, 정부는 대통령실에서 불거진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론에는 선을 그은 상태다. 다만 지금처럼 내수 부진이 계속된다면 내년 연초에는 추경 편성론에 다시 불이 붙을 가능성이 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정부가 경기 부양책을 쓴다는 발표가 나오면 전망치를 수정하겠지만, 최근 수출 동향을 보면 기존 전망(2.2%)을 하향 조정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1981년 이후 한국의 성장률이 연 2% 미만을 기록한 건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5.1%)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0.8%)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2020년(-0.7%) ▶지난해 2023년(1.4%) 네 번밖에 없었다. 특히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2%로 추정된다. 한 국가의 경제 기초체력으로 볼 수 있는 잠재성장률을 밑돈다는 점에서 1%대 성장은 이례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여진다.  

앞서 국제통화기금(IMF)도 내년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2%에서 2.0%로 낮춰 잡았다. 라훌 아난드 한국미션단장은 “경제 전망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이며, 위험은 하방 리스크가 더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대외 여건 변화에 따라 성장률이 1%대로 둔화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는 해석이 나온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최근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2.1%에서 2.0%로 내렸다.

이런 가운데 오는 28일 내년 경제전망을 수정 발표하는 한국은행 또한 내년 1%대 성장률을 제시할 것이란 예상도 나오고 있다. 씨티은행은 한은이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1%에서 1.8~2.0% 수준으로 하향 조정할 것이라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