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시간 규제라는 덫 때문에 핵심 인재들이 집중 근로를 못 한다.” (김희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반도체 산업계와 전문가들이 반도체 연구개발(R&D) 인력의 주 52시간 근무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한 목소리로 호소했다. 28일 오후 경기도 평택에 위치한 삼성전자 평택 사업장에서 열린 한국반도체산업협회·고용노동부 주최 간담회에서다. 이날은 반도체 인력의 주 52시간 규제 예외 적용을 담은 반도체특별법이 상임위에서 표류하면서 국회 본회의 통과가 무산된 날이기도 했다.
업계는 일률적인 근로시간 규제로 인한 현장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김정회 협회 부회장은 “반도체 기술 난이도가 높고 차세대 기술 발전 속도가 빠르다”라며 “최근 젠슨 황 엔비디아 CEO(최고경영자)가 한국 기업에 더 빨리 제조해줄 수 없느냐 얘기했을 정도”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품 개발에 훨씬 많은 인력이 필요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 가능성은 떨어지고 있다”라며 “SK하이닉스는 새로운 반도체를 수율(양품의 비율) 높게 생산해내야 하는데 연구개발과 생산에서 어려움이 있다. 소부장, 팹리스 업계는 더 어렵다”라고 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연구 장비 세팅에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있는데, 30분만 더하면 결론이 도출되는 상황에서도 장비를 끄고, 다음날 다시 2시간 동안 장비를 세팅하면서 연구가 지연되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반도체 연구개발은 높은 수준의 전문성과 집중력이 요구되며, 생산 측면에서도 고객사의 발주량 변화니 품질 이슈에 따라 업무량 변동이 잦은 특성을 고려해 근로 시간 제도 개선이 필요하단 것이다.
전문가들도 힘을 보탰다. 홍상진 명지대 반도체공학과 교수는 “우리 반도체가 어렵게 세계 4강에 들어왔는데 미국·일본·중국이 더 강한 팀을 만들고 있다. ‘골 결정력’을 가질 수 있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해야 한다”라며 축구에 빗대어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김희성 교수는 현행 제도 하에서는 근로 시간을 유연하게 운용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고용부 인가를 받아 주 64시간 이내서 연장 노동을 할 수 있는 특별연장근로의 인가 건수는 지난해 6건, 올해 10월 기준 17건에 불과하다. 근로자 대표와 서면 합의를 거쳐 할 수 있는 탄력·선택·재량 근로를 활용하는 사업장도 각각 전체(5인 이상 54만여곳)의 9.5%, 6.5%, 2.2%에 그쳐 유연성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게 김 교수 설명이다.
정부도 주 52시간 규제를 일부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데엔 공감하고 있다. 이날 김문수 고용부 장관은 “코리안 스피드 자체가 중국, 일본보다 늦다”라며 “반도체특별법으로 연구개발자의 근로시간 선택 확대, 건강보호, 충분한 보상에 대해 노사가 서로 합의한다면 대한민국 반도체 활로를 찾을 수 있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반도체특별법의 원안 추진을 지원하겠다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