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방첩사, 11월 계엄문건 작성"…전두환 포고령 참고한듯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이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이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국군방첩사령부가 지난달 초 비상계엄에 대비한 계엄사·합동수사본부(합수본부)의 운영에 관한 내부 문건을 만들었다는 주장이 8일 제기됐다. 특히 해당 문건은 지난 1980년 전두환 신군부가 비상계엄 전국 확대 직후 발표한 포고령을 참고했는데, “처단한다”는 표현이나 정치활동 중지 등 내용에서 지난 3일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 뒤 발표된 포고령 1호와 유사성을 보였다. 야권은 이를 방첩사가 사전에 계엄을 준비한 정황으로 보고 있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국회 소통관에서 "지난 11월 경 작성된 ‘계엄사 합수본 운영 참고자료 문건’을 입수했다"며 8쪽 분량의 문건을 공개했다. 이어 "이는 여인형 (전)방첩사령관의 직접 지시로 방첩사 비서실에서 작성, 여 전 사령관에게 보고하고 결심 받은 문건"이라면서 "‘윤석열 내란’이 사전에 치밀하게 모의된 정황을 담고 있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다만 제보자 보호를 위해 원본 문서를 재구성했다고 그는 덧붙였다.

추 의원에 따르면 문건의 표지에는 『참고보고(參考報告) (계엄사-합수본부 운영 참고자료)』라고 써 있다. 이어 ▶계엄선포 ▶계엄사령관·계엄사령부 ▶합동수사기구 ▶기타 고려사항(계엄·통합 방위 동시 발령 시) ▶참고 1~7 등으로 구성됐다.

특히 ‘참고6.’에는 ‘계엄사령관 특별조치권 행사사례('80.5.17./10.26.사태)’로 1980년 5월 17일 발표된 계엄포고령 10호 전문이 붙어 있다. 이는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 사건인 10·26 사태를 기해 선포됐던 비상계엄을 전두환 신군부가 이날 24시 부로 전국으로 확대한 조치였다.

당시 계엄사령관이었던 이희성 육군 대장 명의로 발표된 포고령 10호는 “모든 정치 활동을 중지하며 정치 목적의 옥내외 집회 및 시위를 일체 금한다”, “언론 출판 보도 및 방송은 사전 검열을 받아야 한다”, “유언비어의 날조 및 유포를 금한다”, “본 포고를 위반한 자는 영장 없이 체포·구금·수색하며 엄중 처단한다”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1980년 5월 17일 선포된 '계엄포고령 제10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 아카이브

1980년 5월 17일 선포된 '계엄포고령 제10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 아카이브

 
이는 윤석열 정부가 지난 3일 박안수 계엄사령관(육군참모총장) 명의로 발령한 ‘계엄사령부 포고령(제1호)’와 비슷한 부분이 있다. 포고령 1호에는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 “가짜뉴스, 여론조작, 허위 선동을 금한다”, “사회 혼란을 조장하는 파업, 태업, 집해행위를 금한다”, “포고령 위반자에 대해선 영장없이 체포, 구금, 압수수색을 할 수 있으며, 계엄법에 의해 처단한다" 등 내용이 들어가 있었다. 

계엄법 상으로도 포고령 위반 행위는 “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할 뿐이다. 그런데 윤 정부의 포고령 1호에 “처단한다”는 수위 높은 표현이 두 차례나 들어간 것을 두고 군 내에서조차 석연치 않다는 의구심이 제기됐다. 

1항에서 일체의 정치 활동을 금지한 데 대해서도 위헌 소지가 제기됐다. 헌법은 비상 계엄시 ‘정부나 법원의 권한’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하지만, 국회 활동 등은 이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계엄법도 계엄사령관이 관장할 수 있는 건 사법과 행정 사무로만 규정한다.

특히 “처단”이라는 표현이나 정치 활동 금지 등은 지난 2017년 방첩사의 전신인 기무사령부가 작성한 계엄 대비 문건 상의 예비 포고령에도 없던 내용이다. 2017년 문건에는 포고령 위반 행위시 “계엄법에 의거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법문만 인용했다. 국회의 정치 활동 금지 조항 역시 2017년 기무사 문건에는 없었다. 공교롭게도 방첩사는 문건에 보다 최근 문서인 2017년 기무사 포고령은 아예 참고 자료로 첨부하지 않았다. 

11월 초라는 작성 시기도 석연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방첩사는 매년 3월 자유의 방패(FS) 연합연습 기간 등에 계엄 상황을 상정한 합수본부 운영 예규를 업데이트해왔다. 하지만 지난 11월에는 이런 수준의 연습이나 훈련은 없었다.   

2017년 기무사령부의 계엄 대비 문건. 군인권센터

2017년 기무사령부의 계엄 대비 문건. 군인권센터

이외에 문건에는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 시 대통령의 거부 권한', '계엄사령관에 육·해·공군 총장이 임명될 수 있는지', '계엄 발생시 합수본부의 권한 및 한계’ 등에 대한 검토 내용도 들어갔다. 합수본부의 권한에 대해선 “비상계엄 하 계엄사령관이 지정한 사건은 영장 없이 체포가 가능하며, 국가보안법 위반 범죄 등에 대해선 민간인까지 수사 대상 확대 가능”이라고 적혔다. 또 조직 보강 요소로 “사이버 범죄의 급증 추세 고려시 합수본부 예하에 사이버 수사국을 편성하는 방안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한 점도 눈에 띈다.

이와 관련, 국방부는 “문건의 진위 여부에 대한 확인이 당장은 어렵다”는 반응이다. 다만 복수의 군 소식통들에 따르면 해당 문건의 양식은 방첩사 내부 문서 양식과 매우 유사한 형태라고 한다. 

의혹의 중심에 선 여 전 사령관 등은 사전 모의 등에는 선을 긋고 있다. 여 전 사령관은 7일 KBS 인터뷰에서 해당 문건에 대해 “올 한 해 연습하고 훈련하면서 연말 작전 계획을 재발간하는데, 그 경과를 보고하고 토의하는 정례적인 부분”이라며 “계엄을 사전에 준비하는 정황이 아니라 연말 쯤 저와 관련 참모들이 검토하는 아주 일상적인 일”이라고 주장했다. 문건 작성자로 지목된 정성우 방첩사 1처장(전 비서실장)도 8일 중앙일보에 “사전 모의 의혹은 결코 사실이 아니다. 조사를 통해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