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월 코엑스에서 열린 ‘제26회 반도체대전(SEDEX)’에 진열된 반도체 웨이퍼. 뉴스1
국내 최고의 반도체 전문가들이 현재 한국 반도체 산업의 상황을 절체절명의 위기로 진단하고 산업 육성을 위한 제언을 내주 발표한다. 비상계엄 사태로 국회에서 논의 중이던 반도체 특별법이 올스톱될 우려가 커진 가운데, ‘반도체 골든타임’을 놓치면 안 된다는 절박함이 담겨 있다.
9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한국공학한림원 내 반도체특별위원회는 오는 18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지난 10개월간 준비한 반도체 산업 육성 전략을 공개하는 발표회를 갖는다. 발표 제목은 ‘한국 반도체 이대로면 죽는다…이렇게 해야 된다’로 투자·연구개발(R&D)·인재·시스템반도체 등 4가지 영역에서 한국 반도체 산학연이 나가야할 방향을 제시할 예정이다. 반도체특위 소속 한 위원은 “한국 사회가 지금 정치적 혼란기에 있지만, 반도체 산업 전문가들이 오래 고민한 내용을 공유하고 현재 한국 반도체가 처한 위기를 정부·국회·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발표회를 열기로 했다”라며 “한국이 더이상 실기(失期)하면 안 된다는 위기감이 크다”고 말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장인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안과에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및 혁신성장을 위한 특별법안을 접수하고 있다. 뉴스1
공학기술계 석학과 산업계 리더들의 모임인 한국공학한림원은 한국의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높이려면 최고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는 내부 의견에 따라 지난 2월 반도체특위를 구성했다.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과 이혁재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반도체공동연구소 소장)가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소속 위원으로는 학계에서 권석준 성균관대 화학공학과 교수, 백광현 중앙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대한전자공학 회장), 김동순 세종대 반도체시스템공학과 교수와 산업계에선 안현 SK하이닉스 개발총괄 사장, 이현덕 원익IPS 부회장, 박재홍 보스 반도체 대표, 조명현 세미파이브 대표,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 등이 참여해 총 10명으로 구성됐다. 공학한림원 회장인 김기남 삼성전자 고문도 의견 보탠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물론,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시스템반도체 등 업계 전반과 학계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우선 전문가들은 현 상황을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고 진단했다. 과거 한국 반도체 산업은 막대한 투자를 통해 메모리 치킨게임에서 승리하며 20년 이상 메모리 제조 강국의 자리를 지켰다. 특위는 한국이 이 타이틀에 취해 생태계 전반의 체력을 키우는 일에는 소홀히 했다고 평가했다. 소부장 생태계를 키우지 못했으며 이는 미중 경쟁으로 글로벌 공급망 구조가 재편되자 취약함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또한 미국·중국·일본·대만 등은 과감한 정부 지원을 통해 생산기지를 확보하며 경쟁 중인데 한국은 제조 기지 경쟁력 면에서도 뒤처지는 상황이다. 대규모 시설투자가 필요한 반도체 산업 특성상 적기에 투자해야 선두를 차지할 수 있으며 그로 인한 수익으로 또다시 재투자를 하는 투자 선순환 구조 사이클을 타야 하지만, 한국은 이대로라면 정 반대의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는 위기 의식을 특위는 공유했다.
반도체 특위는 정부의 직접보조금과 투자세액 지원을 포함해 경쟁국에 준하는 과감한 지원을 통해 대기업은 대규모 시설 투자를 늘리고, 소부장 기업들도 자생력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할 예정이다. 또한 지속적인 R&D 투자를 통해 반도체 초격차를 이뤄야 한다는 내용도 발표 보고서에 포함한다.
반도체 전문 인재 부족과 두뇌 유출의 심각성도 호소할 예정이다. 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2031년이면 국내 반도체 산업 현장에서 약 5만6000명가량 인력이 부족할 전망이다. 특위의 한 위원은 “인력도 부족한데 우수 인재가 이공계 전공을 외면하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인력의 질 문제도 심각하다”며 “인력 유출에 대한 대책은 물론 글로벌 인력 유치를 위해 파격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글로벌 점유율 3%에 불과한 한국의 시스템반도체 분야의 경쟁력을 키우는 방안에 대해 또 다른 위원은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를 키우려면 파운드리(위탁생산) 생태계가 동반 성장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오른쪽) 고동진 의원과 대화하며 반도체 웨이퍼 등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