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탄핵때보다 더 위기…경제만큼은 여야 협의체 만들라" [전 경제수장 6인 긴급진단]

한국 경제가 ‘데드덕(Dead Duckㆍ레임덕보다 극심한 권력 공백)’의 수렁에 빠졌다. 윤석열 대통령 거취를 놓고 정치권이 극단 대립에 빠지며,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이 엄습한 것이다. 한때 ‘대한민국호’ 이끌었던 전직 경제 수장들은 적어도 경제만큼은 여·야가 합심해 초당적 위기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과거 탄핵 때보다 지금이 더 위기”

유일호 전 경제부총리. 뉴스1

유일호 전 경제부총리. 뉴스1

10일 중앙일보가 만난 전직 경제 수장들은 한국 경제가 ‘내우외환(內憂外患)’의 위기라고 한 목소리를 냈다. 경제 기초 체력은 계속 떨어지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으로 대외 경제 환경이 어려워지는데 국내 정치 불확실성까지 겹쳐서다. 특히 과거 정부의 탄핵을 경험했던 경제 수장들은 지금의 경제적 취약성이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과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보다 좋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한국 경제의 키를 잡았던 유일호 전 경제부총리(現 규제개혁위원장)는 “2016년 탄핵 이후에 천만다행으로 2017년 1분기에 반도체 호황이 왔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성장을 견인했다”면서 “그런 깜짝 호재가 없다면, 대외적 위기뿐 아니라 국내적 불확실성까지 더해져 당분간 상당한 불안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 중앙포토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 중앙포토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사태 직후 금융감독위원장을 맡았던,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現 윤경제연구소장)의 진단도 비슷했다. 2004년에는 중국의 경기 호황, 2016년에는 반도체 사이클의 상승세라는 외부 순풍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경제 상황이 안정적으로 흘러갈 거라고 보기에는 대외적으로도 난관이 많다는 것이다. 윤 전 장관은 “우크라이나·중동 정세가 어렵고, 미국은 국제 사회가 걱정하는 리더십이 등장했으며, 글로벌 공급망도 붕괴하고 있다”면서 “지금이 더 위기라는 것은 더 말할 것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현오석 전 경제부총리. 중앙포토

현오석 전 경제부총리. 중앙포토

정치적 불확실성이 계속되면 경제가 내부부터 먼저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박근혜 정부 초대 경제 수장인 현오석 전 경제부총리는 “3각 ‘퍼펙트 스톰(복합 위기 상황)’이 오고 있다. 과거 성장 방식인 추격형 모델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첫 번째 파도,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어려운 대외 여건이 두 번째 파도, 국내 정치적 불안이 세 번째 파도다”라며 “과거 외환위기와 차원이 다르게 지금은 내부적으로 더 곪고 오래 갈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경제 나락 막아야…여·야 협의체 만들라” 

전직 경제수장들은 정치는 둘로 쪼개졌어도, 경제는 일단 하나야 돼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실상 대통령 유고 상황인 만큼, 야당의 ‘역할론’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컸다.

홍재형 전 경제부총리. 연합뉴스

홍재형 전 경제부총리. 연합뉴스

김영삼 정부 시절 경제부총리를 지낸 홍재형 전 부총리는 “정치적 불안정성이 빨리 걷히지 않으면, 해외에서 한국 경제를 불안하게 보는 시선이 늘어날 것이고 그러면 아무리 애를 써도 분위기가 살아날 수 없다”면서 “여·야 지도자들이 경제만큼은 더 나락에 빠지지 않게 합심해 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근혜 정부 당시 금융위원장을 지낸 신제윤 전 위원장(現 삼성전자 사외이사)도 “정치는 탄핵이 됐던, 질서 있는 퇴진이 됐건 별개로 논의하라. 경제 문제는 ‘경제 시국 여·야 협의체’를 만들어 다뤄야 한다”고 제안했다. 유 전 부총리도 “2016년 탄핵 때도 마찬가지였고, 지금도 여·야가 합심해 방향을 결정하면 글로벌 신용평가사들도 정치적 리스크가 아예 사라졌거나, 상당히 줄어들었다고 판단할 것”이라고 했다.

 

“예산안·반도체 지원…야당도 진작 협조했어야”

전광우 전 금융위원장. 중앙포토

전광우 전 금융위원장. 중앙포토

특히 전직 수장들은 어렵더라도 “할 일은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장 일상적인 정책들이 문제없이 작동하는 모습을 보여야, 과도한 불안 심리도 걷힐 수 있어서다. 이명박 정부 당시 초대 금융위원장을 지낸 전광우 전 위원장(現 세계경제연구원장)은 “국정이 정상적으로 굴러갈 수 있도록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면서 “예를 들어 예산안 같은 현안 이슈는 야당이 진작 협조해줘야 했다”고 짚었다. 윤 전 장관도 “야당도 경제 상황에 대한 책임이 없지 않다”면서 “수권 정당이 되고 싶다면, 정국 안정에 기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 중앙포토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 중앙포토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위기에 빠진 국내 수출 기업에 대한 지원을 더는 미뤄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홍 전 부총리는 “미국이 고관세 정책으로 한국을 압박하면, 수출 기업들의 대미 흑자 폭이 줄 수밖에 없고, 반도체나 자동차 같은 핵심 산업도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며 “트럼프 외풍을 차단하고 국내 기업들의 생산성과 경쟁력을 높이는 대응 조치는 즉각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신제윤 위원장은 “위기를 극복하는 것은 정부나 정치권이 아니라 결국 기업”이라면서 “기업의 발목을 잡았던 것을 이번 기회에 풀고, 특히 반도체 특별법 같은 주력 산업에 대한 지원은 여·야가 빨리 합의해 ‘골든 타임’을 놓치면 안 된다”고 했다.

탄핵 정국 전 경제수장 6인의 조언 그래픽 이미지.

탄핵 정국 전 경제수장 6인의 조언 그래픽 이미지.

“해외 투자자 설득, 美에 경제 특사도 보내자”

대외 경제 불확실성에도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전 전 위원장은 “무디스·피치 등 국제 신용평가사들의 국가신용등급 강등 상황이 닥치지 않게 해외 투자자와 적극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특히 트럼프 신정부 정책에 대응하기 위해, 경제 부문만이라도 미국에 특사를 우선 보내 협의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신 전 위원장은 “미국 새 정부와 경제 분야 협조를 위해 여·야가 인정하는 경제 특사를 일단 보내야 한다”고 했다.

과감한 정책 전환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컸다. 전 전 위원장은 “이전보다 더 과감하게 적극적인 재정의 역할을 살려야 한다”면서 “지난 정부에서 재정 건전성이 크게 훼손됐으니까 이것을 회복해야 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됐을 때는 재정이 경기 회복의 마중물을 넣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