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7년 차를 맞은 한 정보기술(IT) 스타트업은 지난 4일 투자 협의 중이던 글로벌 투자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현재 한국의 상황을 고려해 예정된 실사를 연기하자는 내용이었다. 회사 관계자는 “해외에서 볼 때 불안한 정치 상황이 사업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한 것 같다”며 “투자 유치 확정까지 과정이 길어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경기 침체로 얼어붙었던 벤처투자가 탄핵 정국으로 또 한 번 고비를 맞았다. 한국의 불안한 정치 상황을 우려한 국내외 큰손들이 투자 진행 속도를 늦추면서다. 자금 회수까지 오랜 기간이 소요되는 초기 스타트업의 경우 투자 유치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전망이다.
막 오른 축제, 불안한 벤처
예정대로 행사는 개막했지만 일부 참가자의 이탈도 있었다. 12일 연사로 참여할 예정이던 사우디아라비아 중소기업청 ‘몬샷’ 관계자가 행사 불참을 통보했다. 이를 의식한 듯 기조연설에 나선 박성현 리벨리온 대표는 해외 VC를 향해 “정치적으로 어수선한 상황에서 참석해 줘서 감사하다”라고 말했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스타트업 관계자는 “미팅을 약속했던 해외 투자사 한 곳이 이번 컴업에 못 온다고 통보했다”며 “아무래도 최근 비상계엄 사태 이후의 정치적 상황이 벤처업계에 찬물을 끼얹은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고민 큰 초기 스타트업
특히 초기 단계 스타트업은 불안정한 시장 상황으로 투자 환경이 더욱 척박해질까 걱정이 크다. 이미 벤처투자 시장이 장기 침체에 접어들며 초기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 집행이 더 깐깐해졌기 때문이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7월 기준) 초기 스타트업에 대한 신규 투자액은 6929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조3270억원)보다 48% 감소했다.
올해 초 세 번째 창업에 도전한 한 스타트업 대표는 “VC들은 투자한 기업이 상장해서 제대로 가치를 인정 받아야 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데 한국 증시 상황이 안 좋다 보니 상장을 추진하기가 여의치 않다”라며 “추가 투자 계획을 보류하는 곳도 많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 바이오 벤처 관계자도 “당장 어려움은 없더라도 정치적 불확실성이 길어지는 것은 벤처기업에 악재”라며 “글로벌 기업의 투자나 공동 연구 제안이 위축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벤처 투자 얼어붙을라
정부는 국내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과 외국인 창업가 유치 전략을 예정대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날 컴업 개막식에 참석한 오영주 중기부 장관은 “내년까지 한국 벤처캐피탈 시장을 100억 달러(약 14조원) 규모로 확장한다는 계획”이라며 “한국을 ‘글로벌 4대 벤처투자 강국’으로 만들기 위해 기술 기업 육성에 총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국내 VC 관계자는 “일련의 사태로 인해 해외 투자자들은 한국을 불안정하고 신뢰할 수 없는 국가로 인식하게 됐다”며 “글로벌 경기 자체도 좋지 않기 때문에 국내에서 이탈하는 외국인 투자자가 더욱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