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촘촘해도 기업들 몰려온다…가상자산 허브 된 이곳

리처드 텡 바이낸스 CEO가 11일(현지시간) 오후 허브71과 해시드 주최로 열린 ADFW 벤처 스퀘어에서 토론을 하고 있다. 권유진 기자

리처드 텡 바이낸스 CEO가 11일(현지시간) 오후 허브71과 해시드 주최로 열린 ADFW 벤처 스퀘어에서 토론을 하고 있다. 권유진 기자

 
“가상자산이 주류로 자리잡기 위해선 명확한 규제가 필요하다. 규제가 명확해야 기업과 소비자가 시장에 신뢰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11일(현지시간) 아랍에미레이트(UAE) 아부다비 알 마리야섬에서 열린 아부다비파이낸스위크(ADFW)에 참석한 리처드 텡 바이낸스 최고경영자(CEO)는 가상자산 규제 확립의 필요성에 대해 이 같이 말했다. 바이낸스는 글로벌 1위 가상자산 거래소다. 올해 미국에서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가 승인되는 등 인지도·신뢰도가 높아진 가상자산 산업이 더 성장하기 위해선 규제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텡 CEO는 “주식, 외환, 상품 거래만 하던 전통적인 금융 사업자들이 가상자산을 포트폴리오에 추가하는 트렌드는 계속될 테지만, 이 때 자칫 장벽이 될 수 있는 규제 당국과의 사전 협력은 필수”라고도 덧붙였다.

시장을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규칙을 만들거나, 혹은 제도권 편입을 거부하거나. 가상자산을 두고 각국 규제기관의 태도가 두 갈래로 나눠지고 있다. 아부다비는 이 중 규칙을 만들자는 '룰 메이커'쪽 선두주자로 꼽힌다. 이번 행사를 주최한 아부다비글로벌마켓(ADGM)은 2018년 규제 프레임워크를 발표해 가상자산을 제도권에 편입시켰다. 금융 서비스의 규제·감독을 담당하는 금융서비스규제기관(FSRA)이 이를 관장한다. 아이 럼 곽 ADGM 수석 전무 이사는 이날 ADFW 세션에서 “원래 석유와 가스 산업이 UAE의 주요 수입원이었다”며 “그간 정부는 비금융 산업을 발전시켜 석유 의존도를 줄이려 했는데, 그 중 하나가 가상자산"이라고 말했다. 탈 석유 전략 중 하나로 글로벌 가상자산 허브를 구축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명확한 규제·사업자 의견 반영

전 세계적으로 가상자산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가운데, 규제는 기업이 해당 국가 진출을 검토할 때 고려하는 핵심 요소가 됐다. 규제가 명확한 곳에 가상자산 관련 기업들이 몰리고 있다는 의미다. ADGM에 따르면 이곳 등록 회사 숫자는 지난해 대비 올 상반기 31% 증가했다.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발행사인 블랙록도 올해 아부다비에서 사업을 운영할 수 있는 라이선스를 받았다. 카카오의 클레이튼과 네이버 라인의 핀시아가 통합 구축해 만든 블록체인 플랫폼 카이아(KAIA)는 아시아 프로젝트 중엔 처음으로 ADGM으로부터 허가받았다. 중동 최대 규모 금융 행사인 이번 ADFW에도 전 세계 2만 명 이상이 참가했다. 이들이 운용하는 자산은 총 30조 달러 이상으로 알려졌다.

아부다비 시내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아부다비 시내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가상자산 사업자들은 아부다비 시장의 가장 큰 장점으로 명확한 규제로 인한 예측 가능성을 꼽는다. 가상자산 투자 업체 XBTO의 필립 베카지 창업자 겸 CEO는 이날 세션에서 “10년 간 가상자산 시장에서 사업했는데, 원래 있던 곳에서는 규제 명확성이 떨어졌다”며 아부다비로 온 이유를 밝혔다. 카이아 재단 관계자는 “규제가 없으면 사업할 때마다 규제 당국에 일일이 가부 여부를 물어야 해 에너지 소모가 크다”며 “사업자 입장에선 갑자기 규제 당국에서 ‘지금 하고 있는 건 안 된다’ 하는게 제일 힘든데, 아부다비의 규제는 명확해 그럴 염려가 없다”고 말했다.


ADGM 규제의 또 다른 특징은 사업자들과 함께 규제를 만들어 간다는 점이다. 규제를 위한 규제가 아니라 실제 산업에 필요한 규제를 만들기 위해서다. 현재 FSRA는 승인받은 사업자들과 함께 탈중앙화금융(DeFi·디파이) 관련 규제를 만들고 있다. 네오위즈 계열사 네오핀도 FSRA가 디파이 규제 프레임워크를 구축하는데 참여하고 있다. 마성민 네오핀 최고기술책임자(CTO)는 “디파이 규제는 이용자를 보호하고 산업을 활성화하는데 중요한 핵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산하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인 허브(HUB)71 피터 아부 바흐헴 성장 및 전략 총괄은 “싱가포르, 홍콩, 스위스 등 다른 지역에서 웹 3.0 기업들이 규제 문제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ADGM이 먼저 규제를 만든 게 아부다비 가상자산 생태계에 있어 큰 기회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자본의 수도’ 생태계 조성

9일(현지시간)~12일 나흘간 열린 중동 최대 규모 금융 행사 아부다비파이낸스위크(ADFW) 행사장 모습. 권유진 기자

9일(현지시간)~12일 나흘간 열린 중동 최대 규모 금융 행사 아부다비파이낸스위크(ADFW) 행사장 모습. 권유진 기자

 
기업들이 모이면서 아부다비는 전통 금융사들과 가상자산 스타트업까지 아우르는 생태계가 되고 있다. 중동 지역 매체 자우야(ZAWYA)에 따르면 올해 6월 기준 UAE에서 가상자산 기관 투자 거래가 지난해 같은 기간 보다 55% 증가했다. ADFW 행사장 곳곳에도 ‘자본의 수도’(Capital of capital)라는 슬로건이 붙어있었다. 생태계를 통해 여러 기업들이 만나는 과정에서 또 다른 사업 기회가 생기고 성장하는 회사들이 나올 수 있다. 허브(HUB)71 아흐마드 알리 알 완 최고경영자(CEO)는 “대형 전통 금융사도 아부다비 생태계에 들어와 자신의 비즈니스에 도움 될 수 있는 스타트업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허브71에서 이미 스타트업을 한 번 검증하고, 생태계에 참가시킨다”며 “아부다비에 있는 것만으로 이점이 생기는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