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나무일까 풀일까…유용한데 미움받는 칡

눈이 한번 내리고 나니 겨울이다 싶습니다. 내내 따듯하더니 갑자기 추워져서 적응하기가 조금 어렵지요? 자연도 날씨에 민감합니다. 오랜 세월 동안 날씨에 적응하며 살아온 동식물들도 갑작스러운 변화에는 적응이 힘들지요. 가을이 따듯해서 내내 잎을 매달고 있던 나무들이 갑자기 추워지면서 이제야 죄다 잎들을 떨어뜨리기 시작합니다.  
풍성했던 잎이 지고 나면 나무의 맨몸이 드러나는데요. 이런 때에 숲에 가면 다양한 나무의 맨몸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구불구불 다른 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칡이 눈길을 끌죠. 칡이라고 하면 칡즙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텐데요. 칡은 우리나라 전국 산야에 흔하게 살며 오래전부터 우리 일상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식물입니다. 칡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주 많거든요.  

[우리 주변 식물들의 비밀 이야기] 57 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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칡의 줄기는 그대로 밧줄이 되기도 하고, 칡덩굴의 껍질로 실을 자아 직물을 짜기도 했어요. 갈포(葛布)라고 하는 천으로, 옷도 만들어 입고 갈건(葛巾)이라고 해서 머리에 쓰는 모자인 건도 만들었죠. 거기에 술을 걸러 먹었다는 이야기도 있고요. 녹색을 얻을 수 있는 염료 식물이기도 하죠. 요즘엔 칡으로 종이도 만들고 갈포벽지라고 벽지로 쓰기도 합니다. 이외에도 어린 순은 봄에 꺾어서 간식처럼 먹기도 하고, 뿌리를 또 다른 간식으로 만들어 먹기도 했죠. 칡뿌리에는 갈분(葛粉)이라고 하는 녹말성분이 있어서 말린 뿌리를 가루로 만들고 치대어 죽이나 묵을 쑤어 먹고, 칡냉면 같은 음식을 해 먹기도 했어요. 한방에서는 뿌리를 갈근(葛根)이라는 약재로 쓰는데, 갈근탕은 위에도 좋고 발한·해열 등 효과가 있어 감기에 좋은 약이 되기도 합니다. 뿌리나 꽃은 차로 달여 마시기도 해요. 숙취 해소에 도움을 준다고 합니다.

[우리 주변 식물들의 비밀 이야기] 57 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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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사람들은 칡을 별로 안 좋아합니다. 다른 나무를 타고 올라가면서 그 나무를 죽게 하기 때문에 칡을 제거해야 한다고들 하죠. 식물들도 저마다 자기 삶의 방식이 있는 것이라 인간의 감성으로 특정한 것을 나쁜 식물, 좋은 식물 이렇게 구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요. 칡을 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칡이 나무라는 사실을 잘 모릅니다. 칡도 나무예요. 나무 중에 덩굴나무죠. 덩굴나무들은 다른 나무를 감고 올라가야 햇빛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그런 운명으로 태어난 삶을 사는 거죠. 저마다 자기만의 삶의 방식이 있는데 무조건 칡만 없애는 것은 칡을 나쁘다고 생각하는 생각이 앞서기 때문인 거 같아요.  

[우리 주변 식물들의 비밀 이야기] 57 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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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칡은 콩과 식물입니다. 콩과 식물들은 뿌리혹박테리아와 공생을 하는 것으로 잘 알려졌죠. 식물들이 살아가는 데는 ‘질소’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질소는 공기 중에 있기 때문에 땅속에 있는 뿌리로 흡수하기가 어렵죠. 그것을 도와주는 게 뿌리혹박테리아입니다. 뿌리혹박테리아는 콩과 식물의 뿌리에 뿌리혹을 만들어 공생하면서 공기 중의 질소를 고정해 질소화합물을 식물에 공급하죠. 따라서 콩과 식물은 비료를 주지 않아도 잘 자라고 콩과 식물이 자란 자리의 흙 속엔 질소가 풍부해집니다. 그래서 황폐한 땅에 콩과 식물을 먼저 심으면 비옥해져서 이후 다른 식물이 와서 살기 좋습니다. 조금 멀리 떨어져서 보면 칡이 감고 올라가는 그 나무도 칡이 없었다면 그 자리에서 잘살기 어려웠을 수 있죠.  

[우리 주변 식물들의 비밀 이야기] 57 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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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칡이 나무라는 사실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나무와 풀을 구분하는 방법은 나이테의 유무, 리그닌(목질부)의 유무, 겨울철 지상부의 유무 등 다양하지만 우리가 직접 관찰하기에는 모두 어려운 요소들입니다. 그나마 우리가 눈으로 보고 풀과 나무를 구분하기 쉬운 것은 바로 ‘겨울눈’이에요. 나무는 이듬해에도 계속해서 살아가야 하므로 잎이 진 자리와 줄기나 가지 끝에 추위를 견디고 내년을 책임질 씨앗 역할을 할 겨울눈을 달고 있습니다. 겨울눈이 필요가 없는 풀은 대부분 씨앗을 만들기 때문에 겨울눈의 유무로 구분이 가능하죠. 남과 달라지려면 무엇인가 다른 모습을 하나는 갖고 있어야 합니다. 그게 내게는 어떤 것인지 한번 생각해보면서 한 해를 마무리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