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렌스대와 하버드대 대학원에서 유럽 고대·중세사를 전공한 고인은 1969∼77년 평화봉사단원으로 한국에 머문 것을 계기로 한국사에 관심을 가졌다. 귀국 후 워싱턴대에서 일본사와 한국사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5년 하버드대 동아시아 언어·문명과 교수로 부임해 한국 현대사를 가르쳤다. 1993∼2004년 11년간 하버드대 한국학 연구소장을 지냈다.
그는 일제 강점기 기업인이었던 경성방직 김성수의 사례를 연구해 1991년에 쓴 『제국의 후예』에서 ‘한국 자본주의의 기원이 일제의 식민통치에 있다’는 주장을 펴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주류 한국사학계의 반발을 샀다. 당시 국내 사학계에선 '조선 후기에 이미 자본주의의 싹이 자랐고 일제 침략이 없었다면 한국 스스로 근대화를 달성했을 것'이라는 '내재적 발전론'이 주류였다.
에커트의 견해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산업화가 노동자를 착취하고 민족 정체성을 말살하려 한 일제 치하 조선인 자본가들의 식민지 공업화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본다는 점에서 뉴라이트와는 달랐다. 하지만 이 연구는 안병직·이영훈 서울대 교수 등 낙성대경제연구소 학자들이 주장한 식민지 근대화론을 강화하는 근거가 됐다. 그는 이 책으로 미국역사학회가 동아시아 역사 부문에 주는 존 페어뱅크상을 받았다.
박정희 연구에도 몰두해 『한국 근대화, 기적의 과정』(2005),『박정희와 현대 한국:군사주의의 뿌리, 1866∼1945』(2016)를 출간했다. 2005년 언론 인터뷰에서 "역사학자로서 박정희가 왜 그런 인물이 됐고, 왜 5·16 군사정변이 일어났고, 왜 그런 정책을 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박정희 시대는 논란의 여지는 있으나 한국 근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변혁기였다"고 주장했다.
그는 2015년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성명에 참여했고, 2021년 마크 램지어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가 일본군 위안부를 자발적 매춘부라고 주장하자 앤드루 고든 교수와 함께 비판 성명을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