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중대사, 아그레망 받고도 부임 '스톱'…탄핵에 외교도 '구멍'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가결로 인한 외교 공백이 현장에서 현실화할 거란 지적이 나온다. 외교 최전선에서 첨병 역할을 맡는 재외공관장의 부임이 줄줄이 차질을 빚을 거란 우려가 커지면서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지난 14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대한 가결을 선포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원식 국회의장이 지난 14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대한 가결을 선포하고 있다. 연합뉴스

 
17일 외교가에 따르면 지난 10월 주중국 대사로 내정됐던 김대기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중국 정부의 아그레망(외교 사절에 대한 주재국 동의)을 이미 받았지만, 부임하지 못 할 가능성이 커지는 분위기다. 특명전권대사는 본국 국가원수로부터 신임장을 받은 뒤 이를 주재국 정상에 제정해야 외교 활동을 할 수 있는데, 이 절차 자체에 제동이 걸리게 됐기 때문이다.

법률 상으로는 한덕수 권한대행이 대통령의 외교 권한 전부를 넘겨받지만, 직업 외교관이 아닌 특임공관장에 신임장을 수여하려면 정치적 부담이 따른다는 지적이다. 탄핵 심판 절차가 진행 중인 윤 대통령이 발탁한 대사 내정자에게 신임장을 수여하는 것 자체를 정치권 등은 사실상의 인사권 남용으로 해석할 수 있어서다.

이런 상황에서 김 전 실장의 주중 대사 인선은 사실상 백지화됐단 시각이 외교가에 우세하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지난 15일 기자들과 만나 김 전 실장 부임과 관련해 "좀 더 상황을 지켜보고 검토해봐야 한다"며 "지금 확실히 말하긴 시기적으로 적절치 않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2월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퇴임 소감을 말하는 김대기 전 대통령 비서실장. 연합뉴스

지난해 12월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퇴임 소감을 말하는 김대기 전 대통령 비서실장. 연합뉴스

 
김 전 실장이 부임을 못 한다면 그 자체로 일찌감치 아그레망을 내준 중국에 대한 외교적 결례에 해당할 수 있다. 그러나 내란 혐의를 받는 윤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를 중국에 보내는 게 더 큰 결례일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게다가 윤 대통령이 지난 12일 대국민 담화에서 중국인이 연루된 간첩 사건을 거론하자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같은 날 "깊은 놀라움과 불만을 느낀다"고 반발하는 등 윤 대통령을 향한 중국의 감정의 골도 깊어진 상황이다.


또한 헌법재판소에서 윤 대통령 탄핵안이 인용돼 차기 정부가 들어설 경우 주중 대사를 포함한 '4강(미국·일본·중국·러시아) 대사'는 새로 선출된 대통령이 임명하는 게 당연한 수순이란 분석이다. 김 전 실장의 부임이 차기 대통령에 대한 사실상의 인사권 침해 내지는 실익 없는 ‘알박기 인사’라는 오해를 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상대국인 중국 입장에서도 임기가 몇개월에 불과한 ‘시한부 대사’를 접수하는 게 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다이빙(戴兵) 신임 주한 중국 대사의 부임은 올해 안에 차질 없이 진행한다는 게 정부 구상이다. 다이 대사가 부임할 경우 한 권한대행에게 신임장을 제출하고 공식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그러나 중국 측이 주중국 한국 대사가 공석이라는 점을 고려해 주한 중국 대사의 부임도 함께 늦출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대국민 담화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대국민 담화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다만 탄핵 국면에서도 이미 공석이거나 특임공관장이 아닌 직업 외교관으로 내정된 공관장 부임은 계획대로 진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날 외교부에 따르면 이탈리아, 세르비아, 네덜란드, 불가리아 등 국가가 현재 대사 공석 상태다. 기존 대사가 이미 귀임한 상태에서 차기 내정자에 대한 주재국의 아그레망 부여 등 관련 절차가 진행 중이던 와중에 한국이 권한대행 체제로 전환하게 된 것이다. 권한대행 체제에서 신임 대사 부임이 늦어질 경우 차기 정부에서 공관장 인사를 하는 시점까지 감안하면 공관마다 길게는 1년까지도 대사 공석 상태가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앞서 2016∼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직무 정지 후 권한대행을 맡았던 황교안 전 국무총리는 주오스트리아, 주카자흐스탄 대사에 자신의 명의로 신임장을 수여했다. 모두 직업 외교관이 대사로 부임했던 경우였다. 따라서 이번 탄핵 국면에서도 외교 최전선 방어를 위한 필수적인 인사권 행사는 차질 없이 이뤄져야 정상 외교가 실종된 상황에서 외교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을 거란 목소리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