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왕고래'로 명명된 동해 심해 가스전 개발 프로젝트와 관련, 첫 시추를 진행할 노르웨이 업체 시드릴사 소속 드릴십인 '웨스트 카펠라호'가 지난 9일 오전 부산 영도구 외항에 정박하고 있다. 길이 228m, 폭 42m, 높이 19m 규모인 웨스트 카펠라호는 시추에 필요한 자재들을 선적한 뒤 이달 중순 시추 해역으로 이동해 본격적인 시추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송봉근 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후폭풍으로 탄핵 정국이 본격화한 가운데 윤 대통령이 내세웠던 주요 공약사업도 줄줄이 좌초 위기를 맞고 있다. 대통령 말만 믿고 독립적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대형 사업을 추진하고 있던 전국 지자체는 난감한 상황이다.
대표적인 공약사업이 동해 심해 가스·석유전 개발사업인 ‘대왕고래’ 시추작업이다. 여야 예산안 협상 과정에서 갑자기 비상계엄이 선포되면서 대왕고래 프로젝트 예산 497억원이 거의 전액 삭감된 채로 예산안이 통과됐다.
정부는 대왕고래 프로젝트 1차공 시추에는 1000억원가량 필요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 중 절반은 자체 예산을 통해 확보하고 나머지 절반에 해당하는 497억원은 정부 출자금으로 충당할 계획이었지만, 정부 출자금 전액이 삭감됐다.
예산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대왕고래 프로젝트 첫 시추에 투입되는 ‘웨스트 카펠라’호는 1차 시추 장소로 출항한 것으로 전해졌다. 시추 지역인 경북 포항 영일만 해역에서 오는 20일쯤 시추를 위한 구멍 뚫는 작업을 시작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강덕 경북 포항시장이 지난 9일 시청 브리핑룸에서 지역 민생안정 특별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이 시장은 "철강 및 이차전지 산업 위기 극복 긴급대책 마련과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지원, 일자리창출과 경기활성화를 위해 행정력을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뉴스1
이강덕 포항시장은 지난 14일 긴급회의를 열고 “국정이 혼란스러운 시기지만 흔들림 없이 시정을 추진하며 경제와 민생을 지키기 위해 총력을 다하겠다”며 “각종 지역 현안 사업이 계획대로 추진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남 지역 34년 숙원 사업인 국립 의대 신설도 혼란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전남도 등에 따르면 목포대와 순천대는 지난달 15일 통합에 합의하고 국립 의과대학 신설을 위한 통합의대 추천서를 정부에 제출했다. 의대 설립과 별개로 대학 통합을 추진 중인 두 대학은 오는 2026년 통합 의과대학을 개교를 목표로 의대 설립을 진행해 왔다.
김영록 전라남도지사가 지난해 1월 13일 오후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전남 국립의대 설립을 위한 국회 대토론회’에서 의대설립 촉구 정부 건의문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김영록 전남지사는 지난 16일 기자간담회에서 “전남 국립의대 설립은 정부의 대국민 약속으로, 어려움이 있더라도 자신감과 의지를 갖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국무총리도 지난달 29일 전남 방문 때 긍정적으로 답변한 부분인 만큼 두 대학과 함께 적극적으로 추진해 가겠다”고 말했다.
강원특별자치도가 역점 추진하던 주요 현안도 동력을 잃을 위기다. 윤 대통령은 지난 3월 춘천과 원주에서 민생토론회를 열고 첨단산업 육성, SOC 확충, 규제 완화 등을 대거 약속했다. 당시 “하늘이 두 쪽 나도 강원도민과의 약속을 지키겠다”는 강한 표현까지 썼다.
하지만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서 설악산 케이블카 추가 건설, 춘천 기업혁신파크 건설, 수열에너지클러스터 조성 등 강원 지역 공약 사업은 난관에 봉착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월 11일 강원특별자치도 춘천 강원도청 별관에서 '민생을 행복하게, 강원의 힘!'을 주제로 열린 열아홉 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충청권도 주요 현안사업 추진이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특히 윤 대통령 대선 공약이었던 대통령 제2 집무실과 국회 세종의사당 건립을 비롯해 대전 도심 통과 경부선·호남선 노선 철도 지하화, 수도권 공공기관 혁신도시 이전 등도 줄줄이 차질을 빚게 됐다.
부산 시민 염원이자 윤 대통령이 추진을 약속한 부산 사직야구장 재건축 사업에도 제동이 걸렸다. 부산 사직야구장 재건축 설계비 50억원이 내년 정부 예산에서 빠졌기 때문이다. 부산시는 내년에 사직야구장 설계 공모를 한 다음 2028년부터 2030년까지 공사할 계획이었다.
사직야구장 재건축 예산은 3262억원. 이 가운데 300억원은 국비로 확보할 방침이었다. 나머지는 부산시(2146억 원)와 롯데(817억 원)가 각각 부담하기로 했다. 설계 작업부터 차질이 예상되자 사직야구장 재건축 사업이 또다시 연기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박형준 부산시장이 지난 4일 새벽 부산시청에서 비상계엄 선포 관련 긴급 간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뉴스1
부산시는 추가경정예산 편성에 기대를 걸고 있다. 부산시 관계자는 “아직 실시 설계 공모까지 기간이 남아있고 2027년까지 사전 절차를 모두 마친 뒤 2028년 착공해 계획대로 사업을 마무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윤 대통령이 직접 챙겼던 부산글로벌허브도시특별법과 산업은행 본사 이전도 동력을 잃게 됐다. 산업은행 본사 이전 관련해 정부는 부산 이전을 위한 법 개정을, 산업은행도 조직개편 등을 진행 중이었다.
'부산글로벌허브도시 특별법'은 지난해 '2030 세계엑스포' 부산 유치에 실패한 이후 윤 대통령이 직접 부산을 방문해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이 법안은 수도권 일극 체제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부산을 남부권 거점도시로 만들겠다는 비전에서 출발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자유무역지역인 국제물류·금융특구를 지정하고 디지털·첨단융복합·미래모빌리티·친환경·첨단해양 등 6대 첨단산업의 투자를 유치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박형준 시장은 지난달 부산글로벌허브도시 특별법 연내 통과를 촉구하며 국회에서 농성했지만, 민주당은 다른 지역 특별법과 함께 심의하겠다는 생각이다.
무안·대전·부산·춘천·포항=최경호·신진호·이은지·박진호·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