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급해진 정부, 상반기에 예산 431조 푼다…“가용재원 총동원”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1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1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정부가 내년에 편성된 예산의 75%인 431조원을 상반기에 풀기로 했다. 탄핵 정국 속 내수 회복에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는 데다 그나마 한국 경제를 견인해온 수출마저 흔들리자 재정 조기 집행을 통해 숨통을 틔우겠다는 취지다.  

기획재정부는 17일 국무회의에서 이런 내용을 담은 ‘2025년도 예산배정계획’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내년 전체 세출예산 574조8000억원 가운데 431조1000억원(75%)이 상반기에 배정됐다. 세출예산은 기금을 제외한 정부의 일반회계와 특별회계를 합한 예산이다. 상반기 배정 예산 비율은 2019년 처음으로 70%를 넘긴 후 점차 확대되다가 2023년부터 3년 연속 75%를 기록 중이다.

이날 국무회의를 주재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금융·외환시장 등 큰 틀에선 점차 안정화되고 있지만, 골목상권·중소기업·소상공인·자영업자 등의 어려움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며 “우리 경제가 조기에 활력을 되찾을 수 있도록 국가 재정과 공공기관, 민간투자 등 가용 재원을 총동원해 내년 상반기에 집중 집행해달라”고 주문했다. 특히 “예산안이 새해 첫날부터 즉시 집행될 수 있도록 재정 당국은 예산 배정을 신속히 마무리해 주길 바란다”며 속도전을 강조했다.

정부가 재정 조기 집행에 팔을 걷어붙인 건 대내외 경제 여건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당장 오는 1월 정식 출범하는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세계 각국에 대대적인 관세 부과를 예고하고 있다. 중국의 경기 회복 지연과 기술 경쟁력 신장도 한국의 수출 확대를 제한할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대내적으론 물가 상승률이 안정화되면서 하반기 살아날 것으로 기대했던 내수가 여전히 부진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3분기 소매판매액지수는 전년 동기와 비교해 1.9% 감소했다. 2022년 2분기 이후 10분기째 하락세다. 여기에 정치적 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미약했던 내수 회복세마저 꺾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최근 한국은행은 ‘비상계엄 이후 금융경제 영향 평가 및 대응방향’ 보고서에서 과거 두 차례 탄핵국면(2004년과 2016년)과 달리 이번엔 실물경제 측면에서 경제 심리 위축 조짐이 나타나고 있어 그 영향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한 바 있다. 예전엔 중국의 고성장(2004년), 반도체 경기 호조(2016년) 등 우호적인 대외 여건이 성장세를 뒷받침했지만 이번에는 통상환경 불확실성 증대, 주력 산업의 글로벌 경쟁 심화 등으로 어려움이 커진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국내외 주요 기관들도 속속 내년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2→2.1%, 국제통화기금(IMF)은 2.2→2.0%, 한국은행은 2.1→1.9%로 하향했다. 씨티은행(1.8→1.6%)·골드만삭스(2.2→1.8%)·JP모건(1.8→1.7%) 등 글로벌 투자은행도 전망치를 낮췄다. 비상계엄 여파까지 더해지면 경제 성장률이 1%대로 주저앉을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정국 주도권을 쥔 야당에선 경기 살리기용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필요성을 연일 강조하고 있다. 다만 이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긴급 현안질의에 출석한 최 부총리는 “정부가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인식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면서도 “예산이 통과된 지 얼마 안 됐고 시행도 아직 안 됐기 때문에 내년 1월부터 예산이 제대로 시행될 수 있도록 충실하게 집행을 준비하는 게 최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내년도에 여러 가지 대외 불확실성이나 민생 상황 등을 봐가면서 적절한 대응조치를 계속 검토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