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권한 행사를 두고 여야가 강하게 충돌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에 영향을 미칠 헌법재판관 임명권과 야당 주도의 국회 운영에 제동을 걸 법률안 재의요구권(거부권)이 갈등의 양대 축이다.
여야는 17일 공석인 헌법재판관 후보자 3명의 임명을 두고 정반대의 입장을 내놓았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당 회의에서 “대통령 권한대행은 대통령 궐위 시에는 헌법재판관을 임명할 수 있지만, 대통령 직무정지 시에는 임명할 수 없다”며 “과거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도 (대통령) 탄핵안이 헌재에서 최종 인용된 이후에 대법원이 추천한 이선애 헌법재판관을 임명한 전례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가 곧바로 반박했다. 박 원내대표는 “지금 공석 3인은 국회의 추천 몫이고, 따라서 국회가 추천하면 대통령은 임명 절차만 진행하는 것”이라며 “권한대행이 임명을 못 한다는 것은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했다.
쟁점은 권한대행 요건을 규정한 헌법 71조 ‘대통령이 궐위되거나 사고로 인하여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다. 국민의힘은 ‘궐위’(闕位·어떤 직이 비어짐)에 방점을 찍고 있다. ‘탄핵안 인용으로 파면될 때까지는 대통령 궐위가 아니므로 권한대행의 임명권도 대통령 파면 이후 행사할 수 있다’는 논리다. 2017년 대통령 권한대행을 했던 황교안 전 총리는 이날 페이스북에 “2017년 1월 31일 박한철 헌법재판소장 퇴임으로 헌법재판관 공석이 생겼지만, 당시 권한대행이던 저는 새 재판관을 임명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선애 재판관은 탄핵 인용 후 임명했고, 헌재소장 자리는 아예 비워뒀다는 것이다. 실제로 2017년 당시 민주당은 “황교안 권한대행이 헌재소장이나 재판관을 임명하는 것은 민주주의 훼손”이라는 공세를 펼쳤다.
반면에 민주당은 ‘사고’(事故)에 초점을 둔다. ‘탄핵안 가결로 이미 대통령 사고 상태가 성립됐다’는 주장이다. 헌법재판관 인사청문특별위원회(인청특위) 야당 간사인 김한규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헌법재판관 후보자 세 분이 모두 대통령 권한대행의 조건인 ‘사고 상태’는 탄핵소추안이 가결돼 권한행사가 정지된 경우를 의미한다고 밝혔다. 따라서 한덕수 대행이 국회 몫의 헌법재판관을 임명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적었다. 국민의힘이 추천한 조한창 후보자도 헌법상 ‘사고’의 정의에 민주당 추천 정계선·마은혁 후보자와 같은 해석을 했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대통령이나 대법원이 아닌 국회 추천 몫 3인의 임명’이라는 점도 한 대행의 임명권 행사를 정당화하는 이유로 제시하고 있다. 2017년 박한철 헌재소장 후임은 대통령 몫이었기에 권한대행이 추천·임명할 수 없었지만, 이번에는 국회가 추천한 3인을 임명만 하는 소극적 권한행사라는 논리다. 당시 민주당 대표였던 추미애 의원은 이날 “대통령이 추천한 박한철은 대통령 본인이 권한을 행사할 수 없어 권한대행의 추천과 임명도 위헌이었다”며 “이번 경우는 권한대행의 임명거부가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권성동 원내대표도 2017년 국회 탄핵소추위원일 때는 대법원 추천 몫 재판관에 대해 “추천하고 대통령 권한대행이 임명하는 절차를 최소한 한달 전부터는 밟아야 한다”고 했었다.
이런 가운데 여야는 한 대행의 거부권 행사를 두고도 맞부딪혔다. 임명권과는 정반대로 민주당이 거부권을 행사해선 안되고, 국민의힘은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박찬대 원내대표는 이날 회의에서 “권한대행은 대통령이 아니다. 한 대행이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뭔가 큰 착각을 하고 계신 것”이라고 말했다. 진성준 정책위의장도 “권한대행은 대통령과 정치적 책임을 함께하지 않을 수 없다”며 “한 대행은 내란 공모, 내란 방조 혐의까지 받고 있다”고 압박했다.
반면에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16일 의원총회에서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고건 권한대행이 거부권을 행사했다”고 했다. 실제로 2004년 노 전 대통령 탄핵 당시 이해찬 열린우리당 의원은 “헌정 유린 가능성이 있는 법안에 대해 총리가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옳다”고 옹호했었다.
박형수 국민의힘 원내수석은 통화에서 “한 대행이 국가경제와 정부재정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악법을 막을 최후의 보루”라며 “한 대행에게 현상 유지·관리만 하라면서 추가경정예산(추경)을 주문하는 민주당 행태도 자가당착”이라고 지적했다.
한 대행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민주당은 한 대행을 탄핵할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 경우 한 대행의 직위를 두고 또 논란이 벌어질 수 있다. 한 대행을 기존 국무총리로만 한정한다면 재적 의원 과반(150석)으로 탄핵이 가능하지만, 대통령 권한대행에 따른 대통령직으로 간주하면 재적 3분의 2(200석)가 찬성해야 탄핵된다.
이와 관련 김용민 민주당 원내수석은 통화에서 “대통령 탄핵 의결 조건을 강화한 건 국민이 뽑은 선출직이기 때문”이라며 “한 대행은 선출직이 아니므로 150석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장예찬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이날 YTN에 출연해 “총리가 아니라 권한대행이기 때문에 200석이 필요하다”며 “대통령에 이어 총리까지 탄핵하는 민주당에 대한 비토 여론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권한대행 논란에 대해 지성우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명문화된 규정이 없어 학계에서도 다수 의견을 존중할 수밖에 없는 문제인데, 정치권이 당리당략에 치우쳐 국민 혼란을 가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