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만에 돌아온 뮤지컬 시라노, 완성도 높였지만 스토리 여전히 '갸우뚱'

“저 하늘이 날 버려도 이 육체가 소멸해도 내 영혼만은 영원히 숨쉬리. 바위 같은 걸음으로 빛나는 용기를 품고 혼자라도 한 걸음 한 걸음 가야만 해.”

뮤지컬 시라노의 결투 장면. 시라노(오른쪽)과 그의 숙적 드기슈 백작이 검투를 벌이고 있다. 사진 RG컴퍼니·CJENM

뮤지컬 시라노의 결투 장면. 시라노(오른쪽)과 그의 숙적 드기슈 백작이 검투를 벌이고 있다. 사진 RG컴퍼니·CJENM

전장의 최전방에 선 가스콘 부대의 영웅 시라노가 이렇게 노래한다. 사랑하는 록산을 뒤로 하고 나온 전쟁터에서 그는 용기를 내 앞으로 나아가리라 다짐한다. 그가 부르는 노래는 전쟁터에서 용기를 내려는 군인의 결의이자, 록산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더라도 '용기를 품고'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담은 기도처럼 들린다.

'낭만 호걸' 시라노의 사랑을 다룬 뮤지컬 시라노가 5년 만에 세 번째 시즌으로 돌아왔다. 이번 공연은 넘버와 무대 장치를 보강해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시라노와 가스콘 부대. 사진 RG컴퍼니·CJENM

시라노와 가스콘 부대. 사진 RG컴퍼니·CJENM

프랑스의 극작가 에드몽 로스탕의 희곡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 '시라노'는 17세기 프랑스를 배경으로, 용맹한 가스콘 부대의 영웅이자 뛰어난 언변과 검술 실력을 지닌 시라노의 이야기를 그린다. 시라노는 큰 코로 인해 외모에 자신감을 잃고 사랑하는 여인 록산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지만 미남 신병 크리스티앙과 록산의 사랑을 돕기 위해 자신의 재능을 아낌없이 쏟아부으며 사랑의 편지를 대필한다.

1막에서는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시라노의 익살스러운 면모가 돋보인다. 특히 크리스티앙과 시라노가 함께 록산을 향해 사랑 고백을 하는 발코니 장면은 로맨틱하면서도 코믹하다. 2막에서는 전쟁터를 누비는 용감한 전사로서의 시라노가 부각된다. 


뮤지컬 '시라노'의 히로인이자 삼각관계의 주인공인 록산은 이번 시즌에서 주체적이고 입체적인 여성으로 재탄생했다. 록산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부대를 위한 식량을 마차에 싣고 전쟁터 한가운데로 뛰어드는 용감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록산(왼쪽)과 록산을 바라보는 시라노. 사진 RG컴퍼니·CJENM

록산(왼쪽)과 록산을 바라보는 시라노. 사진 RG컴퍼니·CJENM

이번 시즌에는 세 개의 넘버가 보강됐다.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마타 하리'에 참여한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이 신곡 작업을 담당했다. 오프닝 넘버 '연극을 시작해'는 시대적 배경과 캐릭터 설명을 전달하며 초반 전개를 빠르게 이끈다. '말을 할 수 있다면', '달에서 떨어진 나'는 초연·재연에서 부족했던 서사를 보강하는 역할을 한다. 

추가된 넘버가 서사와 캐릭터를 보강하고 있음에도 전반적인 스토리는 여전히 아쉽다. 록산과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던 시라노가 말재주 없는 크리스티앙을 대신해 어둠 속에서 사랑 고백을 하는데도 록산이 바뀐 목소리를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설정, 크리스티앙이 죽은 지 십수 년이 지나도록 러브레터의 대필 작가가 시라노 자신임을 밝히지 않고 지내다 괴한이 휘두른 칼에 찔린 뒤 죽기 직전에 사실을 털어놓는 점 등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사건이 다소 억지스럽게 전개된다. 록산이 "사랑에 빠졌다"며 한참 자랑을 늘어놓다가, 시라노가 그 상대가 자신이라고 착각할 때쯤 "그 사람은 바로 크리스티앙"이라고 밝히는 장면에서 드러나는 '눈치 없는 여사친' 컨셉 역시 클리셰에 가깝다. 

이번 시즌에서는 최재림·조형균·고은성 배우가 시라노를 연기한다. 록산 역에는 나하나·김수연·이지수가 캐스팅됐다. 배우들의 연기와 가창력은 대체로 호평받고 있다. 

공연은 내년 2월 23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