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탄핵 때도 이정도 아니었다"…이재명 독주에 與잠룡들 쇼크

이쯤 되면 '씨가 말랐다'고 해도 될 법하다. 윤석열 대통령의 12·3 계엄 사태 이후 2주 만에 여권 차기 주자들의 지지율이 폭삭 주저앉았다. 지지율 5%를 넘은 이는 전무했다. 여권 주자 모두의 지지율을 더해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지지율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20일 발표된 한국갤럽의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결과를 요약하면 이렇다. 여당에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이대로 조기 대선이 열리면 참패”라는 위기감이 흘러나온다.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17~19일 한국갤럽의 전화면접 조사에 따르면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지지율은 37%로 1위였다. 다른 야권 주자로는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3%),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2%), 우원식 국회의장(1%)이 이름을 올렸다. 반면, 여권 주자 중 선두인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와 홍준표 대구시장 둘 다 5%에 그쳤다. 오세훈 서울시장, 유승민 전 의원,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은 2%였고, 안철수 의원은 1%였다.  

여권 주자 지지율을 다 합친 수치는 17%로, 이재명 대표 지지율(37%)의 절반을 밑돌았다. 세부지표도 일제히 ‘여권 주자의 몰락’을 가리켰다. 모든 지역·세대에서 지지율 1위는 이 대표였다. 보수의 심장으로 불리는 TK(대구·경북)에서도 이 대표(19%)가 1위였고 여권 주자는 한동훈 9%, 홍준표 8%, 오세훈 3%였다. 보수 지지세가 강한 70대 이상에서도 이 대표 지지율은 21%였고, 한동훈 10%, 홍준표·김문수 5%, 오세훈 2%였다. 여권 관계자는 “계엄 사태가 폭탄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각오했지만, 핵심 지지층마저 싸늘하게 등을 돌릴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갤럽 조사는 만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17~19일 전화 면접조사 방식으로 진행됐다. (자세한 여론조사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1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당 대표직 사퇴 입장을 밝힌 뒤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1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당 대표직 사퇴 입장을 밝힌 뒤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계엄 사태 전에도 이 대표는 유력한 차기 대선 주자였지만, 여권에는 한동훈이라는 대항마가 있었다. 한 전 대표 취임 초기인 7월 4주차 갤럽 조사에서 이재명 22%, 한동훈 19%로 오차범위 내였다. 하지만 계엄 사태를 기점으로 이 대표 지지율은 수직 상승했고, 한 전 대표의 지지율은 뚝 떨어졌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1차 원인은 본인뿐 아니라 여권 전체를 수렁으로 몰아넣은 윤 대통령의 자폭에 가까운 계엄 선포”라며 “하지만 이후 여권에서 벌어진 탄핵 찬반을 둘러싼 내분 양상에 피로감을 느낀 보수 지지층 이탈도 상당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여권의 현 상황은 8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됐을 때보다 더 심각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당시 보수 진영에는 '반기문'이라는 비빌 언덕이 있었다. 탄핵안 가결 뒤인 2017년 1월 12일 발표된 갤럽 조사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지지율이 31%로 가장 높았지만,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도 20%를 기록하며 완전한 열세는 아니었다.

1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민의힘 당사 앞에 윤석열 대통령 퇴진, 국민의힘 해체 등을 촉구하는 팻말들이 붙어있다. 연합뉴스

1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민의힘 당사 앞에 윤석열 대통령 퇴진, 국민의힘 해체 등을 촉구하는 팻말들이 붙어있다. 연합뉴스

여권 주자들이 맥을 못 추자 일각에선 “조기 대선이 열릴 경우 여당 대선 주자가 30%대 초·중반 득표율만 기록해도 선방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돈다”는 말이 나온다. 한 관계자는 “사법리스크에 휩싸인 이 대표의 약점이 명확하지만, 이를 파고들 만한 대항마가 없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이런 와중에 비상대책위원장 임명을 놓고 갈팡질팡하는 국민의힘의 모습은 위기감을 더 부채질하는 모양새다. 내부 의견 수렴을 거쳐 이르면 내주 초 비대위원장의 윤곽이 드러날 가능성이 큰데, 중진의원이 비대위원장을 맡는 방안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뼈를 깎는 쇄신을 해도 될까 말까인데, 현 사태에 책임이 큰 중진들이 비대위원장을 맡겠다는 건 보수 정치의 퇴행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