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지 파이터 우승…‘K무용 시대’ 이끄는 최호종
치열한 계급전쟁의 꼭대기 ‘수석무용수’에 오른 최호종(30)도 최근까지 국립무용단에서 주역을 도맡던 대표적인 한국무용수다. 학생 시절 최고 권위의 동아무용콩쿠르에서 3년간 동·은·금상을 연이어 수상, 2017년 국립무용단에 최연소로 입단해 부수석까지 올랐다. 그런 그가 국립무용단을 퇴단하고 예능방송에 나온 것은 다소 의외였다. 그런데 경연이 거듭될 수록 독보적인 움직임으로 ‘최호종이 장르다’란 심사평을 들으며 화제의 인물이 됐다. 그가 나오는 영상들은 대부분 유튜브 인기급상승동영상 순위에 올라 글로벌 팬덤까지 생겼다.
스테파 출연진의 서울무용제, 암표 등장
안정된 국립단체를 박차고 나와 야전사령관을 자처했네요.
“춤의 스펙트럼을 넓히고 몸의 언어를 확장하는 게 제가 추구하는 이상이거든요. 국립에 있을 때도 일과 후엔 컨템포러리 단체 활동을 병행했었죠. 몸이 받쳐주는 만큼 열정을 최대한 불사르며 20대를 보냈는데, 정체성이나 방향성을 좀 더 확고하게 가져갈 수 있는 터닝 포인트가 필요했어요. 저의 태도는 변함없지만, 여기선 다양한 장르 사람들의 모임에서 제가 리더 역할이다 보니 분위기를 만들어가야 하는 책임감은 느낍니다. ”
상복도 터졌다. 이번 주에만 16일 전문무용수지원센터 ‘2024년을 빛낸 무용수상’, 19일 대한무용협회 ‘김백봉상’을 수상했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산실 홍보대사로도 위촉됐다. 순식간에 무용계 핵심 인물로 떠올랐지만, 무용 입문은 늦은 편이다. 내성적인 성격을 고치려 연극을 하다가 고3 때 무용으로 전향한 탓에 헤매기도 했단다. 하지만 온갖 장르와 기계체조까지 섭렵하며 몸과 춤의 메커니즘에 몰두한 결과 그만의 컨템포러리가 구축됐다.
스승이 누구길래 이런 안무가 나올까요.
“고등학교 때 극단의 청소년 대상 프로젝트에 참여했었는데, 류미선 연출가님께 무대에 서는 자세나 신념을 배웠어요. 한국무용을 택한 것도 그분 덕이죠. 저의 정서에 굵직하고 강인한 남성성 가득한 한국무용의 호흡이 잘 어울릴 것 같다고 권해 주셨거든요. 콩쿠르를 내내 함께 해주신 배강원 안무가님을 비롯해 춤 스승은 많은데, 테크닉이나 장르적 포인트는 거의 독학했어요. 종이컵 하나를 만들 때 종이를 자르고 뚜껑까지 조립하는 일련의 과정의 원리를 알면 애착이나 활용도 더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과정에 공을 들인건데, 권할 만한 방법은 아닌것 같아요. 다른 무용수에게는 시간낭비하지 말고 무조건 배우라고 합니다.(웃음)”
현대무용과 스트릿의 느낌도 있고 한국무용의 색깔은 엷은데요.
“컨템포러리로 전향하겠다고 마음먹은지 꽤 돼서 제 안에 경계는 없어요. 각 잡고 한국무용을 하려고 해도 자연스럽게 다른 해석이 나오죠.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 같아요.(웃음) 춤이란 애초에 한군데서 시작해 퍼졌다 생각하거든요. 스트릿이나 기계체조의 테크닉 자체가 아니라 흐름과 원리를 제 식으로 해석해서 가져왔어요. 한국무용의 멋은 결국 한국인의 흥과 한이라는 정서에서 나온다 생각해요. 그동안 춤의 형태 자체를 보존하느라 고립돼 있었던 감은 있는데, 좀 해체하고 정서를 현대 한국인으로서 해석하는 접근이 필요한 것 같아요. 젊은 세대들이 많이 하고 있죠.”
‘스테파’ 첫 미션에서 라이벌 구도였던 기무간에게 주역인 왕 역할을 뺏겼었죠.
“안무가가 원하는 캐릭터가 분명했는데 제가 고집을 부렸어요. 경연에서 캐릭터를 먼저 구축하고 시작하는 건 서바이벌에 좀 위배된다 생각했죠. 순수하게 기량이나 해석 같은 기본적인 틀에서 평가 받아야 하니까요. 어쨌든 그때 심사위원이 생각한 왕의 형상에는 무간이 형이 잘 맞았던 거죠.”
내년 대극장 공연 주제는 ‘고통받는 몸’
K콘텐츠 미션 ‘기생충’이 인상적이었어요.
“연극을 좀 했다 보니 캐릭터 리서치부터 몰입해서 재밌게 작업했어요. 영화의 캐릭터를 100년 전으로 돌린 건데, 어떤 컨셉트를 잡으면 더 깊숙이 들어갈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죠. 움직임에 영감을 받기 위해 피와 와인이라는 텍스트적 장치를 만들어 놓고 했는데, 그런 과정이 재밌었습니다.”
25일부터 갈라콘서트에서 신작도 선보이는데, 세 장르 혼합에 어려움은 없나요.
“제가 직접 안무한 솔로도 있는데, 수석으로서 권력을 자랑하는 장면이 될 것 같아요.(웃음) 세 장르가 한곳에 모여 춤을 추니 겉으로 보이는 라인은 다르지만, 개념적으로 같은 생각을 하고 춤추고 있느냐가 중요하겠죠.”
방송을 탔으니 본업에 소홀해지는 게 아닐까 싶은데, 2년 동안 STF무용단으로 활동하는 한편 부예술감독으로 몸담고 있는 전위적인 예술단체 ‘전복된 해부학적 풍경(SAL)’ 활동도 병행한단다. 내년 직접 안무하는 대극장 공연은 ‘고통받는 몸’을 주제로 고문의 메커니즘을 연구 중이란다.
그런 심각한 작품에도 관객이 몰린다면 ‘무용 대중화’가 실현되겠네요.
“STF는 대중예술을 하게 되겠지만, 제가 진짜 해야 하는 일은 안무자로서의 성장이거든요. 양면을 다 가져가되, 대신 명확하게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SAL은 춤이나 안무를 일종의 해부행위로 간주하고 때론 굉장히 충격적인 포인트를 만들기도 하는 가장 동시대적인 단체죠. 가 보지 않은 길을 탐구하면서 그 안에서 정체성을 찾는 일이고, 반면 STF는 대중화라는 명확한 방향을 향해 단거리 달리기처럼 빠르게 가는 일이죠. 두 무대의 관객은 다를 거예요. 지금 팬덤은 일시적인 것일 뿐, 둘 다 좋아하는 분은 소수일 테죠. 저를 통해 왔어도 결국 관객은 작품을 보고 가야 하니까요.”
최호종은 과연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