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쾌하다해 사진 뗐다" 尹맛집 곤욕…이곳 식당은 '성지'로

지난 2022년 5월 19일, 윤석열 대통령이 용산 집무실로 출근한 뒤 첫 외출로 5000원 짜리 국숫집을 방문했다. 대통령실 제공=연합뉴스

지난 2022년 5월 19일, 윤석열 대통령이 용산 집무실로 출근한 뒤 첫 외출로 5000원 짜리 국숫집을 방문했다. 대통령실 제공=연합뉴스

 
23일 오후 찾은 서울 용산구의 한 국수 가게엔 과거에 붙어있던 윤석열 대통령의 사진이 없었다. 윤 대통령이 용산 집무실로 출근한 뒤 처음으로 참모들과 외식한 식당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가게 주인 A씨는 “단골 한 명이 윤 대통령 얼굴을 보는 게 불쾌하다고 해 사진을 떼버렸다”며 “식당에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몰려와 손님들 간 언쟁이 벌어지기도 하고 한동안 골치가 아팠다”고 말했다. 손님 박모(65)씨는 “우리야 맛있게 먹고 가면 끝이지만 손님들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가게 입장에선 난처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용산 일대에서 이른바 ‘윤석열 맛집’으로 통했던 식당들이 비상계엄 사태 이후 곤욕을 치르고 있다. 소보로빵으로 유명한 한 제과점도 지난 9월 리모델링을 하며 윤 대통령 사진을 치웠다. 앞서 윤 대통령이 방문한 내용이 담긴 신문기사를 출력해 액자에 넣어 가게 입구에 걸어뒀다고 한다. 빵집 손님 신모(50)씨는 “이런 상황에서 웬만한 용기가 아니면 사진을 두기는 어렵지 않겠냐”고 말했다. 인근 상인 B씨도 “보수 지지자들에겐 호응이 좋았는데 국민 대다수가 탄핵을 지지하는 상황에서 계속 사진을 붙여두기 어렵다”고 말했다.

벽에 걸려 있던 윤석열 대통령 사진 등이 사라진 대구 서문시장 내 칼국수 집. 백경서 기자

벽에 걸려 있던 윤석열 대통령 사진 등이 사라진 대구 서문시장 내 칼국수 집. 백경서 기자

 
보수 텃밭으로 불리는 지방에서도 비슷한 분위기다. 박종호 대구 서문시장 상인회장은 “아무리 보수 지역으로 분류된다 해도 지역 경제에 핵폭탄급 영향을 미쳐서 윤 대통령을 원망하는 목소리가 높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맛집으로 언급했던 부산의 한 국밥집도 일주일 전 윤 대통령의 사진을 내렸다고 한다.

온라인 중고거래 플랫폼 중고나라에서 윤석열 대통령 시계가 평균가격 16만 5712원으로 검색된다. 비상 계엄 이후 10만원대 초반에 거래되는 매물이 늘어나면서 평균 거래 가격이 낮아진 걸로 보인다. 중고나라 캡처.

온라인 중고거래 플랫폼 중고나라에서 윤석열 대통령 시계가 평균가격 16만 5712원으로 검색된다. 비상 계엄 이후 10만원대 초반에 거래되는 매물이 늘어나면서 평균 거래 가격이 낮아진 걸로 보인다. 중고나라 캡처.

 
온라인 등에선 윤 대통령 관련 굿즈의 인기도 뚝 떨어졌다. 재임 기간을 기념해 제작된 ‘윤석열 시계’의 중고 가격은 취임 초 20만원 초반까지 올랐지만 최근엔 10만원 이하로도 떨어졌다. 중고거래 사이트 중고나라에 따르면, 윤 대통령 시계의 평균 가격은 16만 5712원으로, 문재인 시계(21만 6066원)나 박근혜 시계(22만 7111원) 평균 가격보다 저렴하다.

X(옛 트위터)에 올라온 선결제 인증 사진. 한 식당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집회에 참석한 참가자들에게 무료로 음식을 대접했다는 후기가 적혀 있다. X 캡처

X(옛 트위터)에 올라온 선결제 인증 사진. 한 식당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집회에 참석한 참가자들에게 무료로 음식을 대접했다는 후기가 적혀 있다. X 캡처

 
반면 대규모 탄핵 촉구 집회가 열렸던 서울 여의도 인근 식당은 최근 매출이 크게 올랐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선 ‘선결제’ 행렬이 이어지고, 집회 전후 수많은 이들이 식사하면서다. 온라인 페이지 ‘촛불집회가이드’엔 현재까지 총 254명의 후원자가 선결제 2만4533건을 진행했다고 나와 있다. 주로 국회의사당역 1번 출구 인근 카페나 9호선 지하철 라인을 따라 샛강역·여의도역·당산역 인근에 후원 가게가 포진해있다. 여의도역 인근에서 한식집을 운영하는 C씨는 “집회가 열린 한 토요일엔 선결제가 200만원 가까이 들어왔다”며 “오전 10시부터 저녁 9시까지 손님들이 계속 이어지면서 매출이 평소 대비 2배까지 올랐다”고 말했다.


이은희 소비자학과 교수는 “정치 격변 상황에서 시민들이 불매‧선결제 등을 통해 자신의 의사를 드러내는 것”이라며 “개인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과잉 양상으로 이어질 경우 전반적으로 내수 경제 위축을 심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