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다니던 직장 그만두고 전업 유튜버로…“창작 욕심 못 이겼죠”
“차를 유머러스하게 풀어보자”…코미디 섞은 리뷰로 인기 급상승
최우빈(32)과 정보혜(30)가 채널을 운영한다. 두 사람은 명지전문대학교 연극영화과 선후배 사이인데, 3년 전 유튜브를 하기 전까지는 졸업 후 서로에 대한 소식도 잘 몰랐다. 예술 계통의 학생들이 대체로 그러하듯, 두 사람도 사회에서 무명(無名) 배우로 활동하다 취업 전선에 뛰어드는 수순을 밟았다. 최우빈은 대학로에서 극단 생활을 하다가 대학병원 원무과에 취업했다. 정보혜는 금융회사에서 마케팅 직원으로 일했다.
처음 카비니를 구상한 건 최우빈이다. 그는 병원 응급실에 배정됐는데, 혼절하거나 만취한 채 실려 온 환자들의 신상을 확인하고 보호자에게 전화를 걸어 병원에 와달라는 업무를 봤다. 시간대가 주로 새벽이어서 연락이 안 되거나 설령 되더라도 보이스피싱으로 의심받는 일이 많았다.
“무일푼이더라도 거리에서 영화 만들 때가 불쑥 불쑥 떠올라 그리웠죠. 동기가 스크린이나 브라운관에 출연하면 부럽기도 했고. 대학로에서 연극하는 얘들도 있는데 나한테 이게 맞는 건가…. 정극(正劇)으로 돌아갈 마음은 없지만 전공을 살려 창의적인일을 하고 싶었어요.”
시간이 흘러 2021년 중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너도나도 집안에 틀어박혀 무료하게 보내는 일상이 반복됐다. 그때 그는 취미 삼아서라도 자동차 리뷰 영상을 유튜브에 올려보기로 결심한다.
“원래 차에 관심이 많았어요. 고등학생 때 친구들과 PC방에 가면 다들 게임할 때 저 혼자 자동차 커뮤니티에 들어가서 차량 모델과 옵션을 살펴봤거든요.”
차 리뷰는 재미없다? 업계 인식 바꾼 ‘카비니’
막상 혼자서 하려니 부담이 됐다. 마침 대학 동기로부터 학과 후배가 연기를 포기하고 취직했더니 매일 같이 회사 홍보 차원의 유튜브 영상을 편집하고 살더라는 소식을 들었다. 그게 정보혜였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일 거라 생각해 전화를 걸어 단도직입적으로 제안했다. “다 좋은데, 자동차 리뷰는 인기가 없지 않냐”는 답이 돌아왔다. 그때까지 자동차 리뷰는 경제지 기자들이 건조한 말투로 차를 소개하는 수준이어서 대부분 조회수는 백단위 수준에 불과했다. 오히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키즈 유튜브가 대세였다. 부모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보는 아이들이 요새 어디 한둘인가. 하지만 최우빈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우리만의 재밌는 영상을 만들면 된다”는 설득에 그녀는 결국 동참하기로 했다.
초창기엔 차에 대해 잘 아는 최우빈이 단독으로 출연했다. 그런데 시종일관 흐르는 진지한 분위기가 문제였다.
“너무 전문적이었어요. 차를 좋아하는 사람만 이해할 법한 내용이었죠. 자기들끼리만 아는 얘기 하자고 유튜브한 거 아니잖아요. 더 많은 시청자를 아우르려면 보혜가 출연하는 게 낫겠더라고요.”
그래서 역할을 바꿨다. 정보혜가 출연하고 최우빈이 촬영했다. 사실 그녀는 차를 몰라도 너무 몰랐는데 오히려 그 점을 이용해 보기로 했다. 그녀가 차의 미관이나 내부 인테리어를 소개하다가 전문성이 필요한 부분은 영상 밖의 최우빈에게 답을 구하는콩트(conte· 상황극) 형식으로 진행하자 반응이 확 좋아졌다.
“사실 오너 드라이브도 본인 차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에요. 그런 분들도 저희 영상을 즐겁게 시청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모토가 됐죠.”
하지만 정보혜에게도 속사정은 있었다. 최우빈이 써준 대본을 그대로 읊는 것으로는 전달력에 한계가 있었다. 기본 지식이 없으니 촬영 때면 자연스러운 리액션이 안 나오고 기억을 더듬다 대사를 웅얼거리는 경우도 잦았다. 그게 싫어서 입시 치르듯 차를 공부했다.
그런데 업계에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유명 차 블로거들도 카비니를 주목하면서 구독자가 급상승했다. 그동안 유튜브 수익은 기름값을 충당하는 수준에 그쳤지만 구독자 3만 명을 넘기자 촬영 소품을 구비할 정도가 됐다. 현대차에서 협찬도 들어왔다. 신차를 출시하는데 카비니에서 홍보해주면 좋겠다는 거였다. “처음으로 인정받았다고 생각했죠. 대기업에서 우리 채널을 볼 정도가 됐으니까.” 최우빈은 이때 자신이 유튜버가 됐다는 걸 실감했다.
“저는 좀 달라요. 사람들이 저를 알아봐줄 때죠.” 정보혜가 말한다. “아무도 몰라주는데 구독자가 100만 명이면 뭐하나요?”
안정된 커리어보다 중요한 건 창작 욕심
카비니의 가장 큰 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됐을 때였다. 한때 불었던 ‘재택근무 붐’이 사그라지면서 다시 출근길의 정상화가 이뤄졌다. 하나둘씩 직장으로 모여들면서 소통이 활발해졌다. 당연히 주제는 다른 직원에 대한 세평이었는데, 최우빈이 유튜버라는 사실은 일주일이 되기도 전에 사내 모두가 알게 됐다. 보통 직장에선 직원이 회사에 올인해주길 원하는 법이다. 이때부터 최우빈에겐 남들과 비슷하게 일해도 ‘왜 업무에 집중하지 않느냐’는 핀잔이 날아들었다. 유튜브는 업무 외 시간에 했음에도 단지 그가 유튜버라는 이유만으로 동료들 눈에는 딴 데 관심 팔린 직원으로 보였다. 촬영 일정 때문에 연차를 내려고 하자 상사한테 불려가 “얼이 나간 것 같다”는 말도 들었다.
그런 와중에 카비니에 협찬을 제안하는 자동차 제조사가 많아졌다. 자동차 업계에서 영향력도 커졌다. 전업 유튜버로의 전향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모님께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당연히 유튜브는 결사 반대셨죠. 이해는 해요. 노후가 보장된 교직원을 때려치우고 언제 망해도 이상하지 않을 유튜버를 선택한다고 하니.”
반면 정보혜는 유튜버를 본업으로 삼을 생각은 없었다. “저는 사내에서 압박을 받은 적은 없어요. 애초에 금융 회사여서 n잡으로 돈을 버는 걸 당연시하는 분위기였고요. 솔직히 일하다 몰래 주식 차트 안 보는 직장인이 어디 있어요. 저는 그 시간 합쳐서 유튜브하는 거라고 여겼죠.”
최우빈은 퇴사를 결심했다. “연기와 연출에 대한 갈망이 여전했어요. 소위 ‘예술병(病)’이란 게 남아 있어서 콘텐트를 제작한다는 자부심을 스스로 꺾지 못한 거죠.”
하지만 정보혜는 달랐다. 전공과 관련된 일이니 잘해보자는 말은 통하지 않았다. “카메라 앞에 설 때가 좋지 않으냐”는 말도 무용지물이었다. 오히려 연기라는 말에서 그녀는 노이로제와 함께 약간의 현기증을 느꼈다. 낙방, 낙방, 낙방. 연영과 재학 때는 기획사에 들어갈 만큼 유망주였지만 그 뒤로는 내리막길이었다. 오디션에서 연거푸 떨어졌다. 자존감도 많이 깎였다. 그래도 틈만 나면 오디션 공고를 들여다봤고, 어김없이 지원했다. 스물일곱에 그 굴레를 깨트렸는데, 비결은 숫자에 집착하는 거였다.
주식 시장을 공부하고 부동산 기사를 정독했다. 틈틈이 ‘임장’(부동산 현장 방문조사)도 돌아다녔다. 취업했을 때 이미 연기에 대한 마음을 비운 뒤였다. 정보혜가 말한다. “유튜브도 결국은 콘텐트 기획을 하고 대본을 짜고 촬영하는 게 영화 제작 과정과 다를 게 없거든요. 겨우 붙잡은 현실 대신에 유튜버로 전향하자고 생각하니 두려웠죠. 예전처럼 밑 빠진 둑에 물 붓는 거 아닌가….”
구독자들의 사연을 받아 곤란한 일을 대신 해주는 이벤트가 진행될 때였다. 한 구독자가 이메일에 이렇게 썼다. ‘아내 없이 홀로 딸을 키우는데 하루만 육아를 봐줄 수 있을까요’ 두 사람은 구독자의 자녀를 데리고 용인 에버랜드에서 온종일 시간을 보냈다. 나중에 구독자가 감사하다며 편지와 함께 응원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제작해 보내줬다. 그제야 그녀의 마음이 동했다. 퇴근길에 최우빈의 다짐을 받아냈다.
“기왕 하는 거 돈 많이 벌어야 된다.”
‘텐션’ 떨어지는 영상은 아무도 안 찾아
“흰 눈 사이로, 썰매를 타고 달리는 기분…”
12월 8일 서울 한강 반포지구의 야외주차장에서 정보혜가 볼보사(社)의 흰색 XC60 차량을 곁에 두고 최우빈이 든 카메라 앞에서 캐럴을 부르기 시작한다. 올가을은 따스했는데 하필이면 이날부터 기온이 영하권으로 뚝 떨어졌고, 강바람마저 매섭다.
그런데 정보혜는 카디건에 흰색 티셔츠를 받쳐 입고 하의엔 청바지를 입었을 뿐이다. “2017년 출시 후 이제 사골이 돼버렸지만 꾸준히 높은 판매량을 보이는 XC60의 60대 한정판 모델 윈터 에디션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정보혜가 차에 대한 이력을 설명하자 최우빈이 오케이 사인을 보낸다. 다음 대본을 점검할 때 정보혜가 턱을 떨면서 말한다. “텐션이 높을 때 영상이 재밌고 시청자도 지루해하지 않아요. 춥다고 잔뜩 껴입으면 소극적인 게 바로 티가 나요. 거기다 활동도 제약돼서 자연스럽게 내용이 루즈해지죠.”
두 사람은 차의 외관과 크기를 묘사하더니 미리 짜둔 동선에 따라 후미로 가서는 트렁크를 열고 여러 기능을 언급한다. 그리고는 차에 들어가 인테리어를 영상에 담는다. “가장 큰 장점은 편안한 시트죠. 나파(nappa·부드러운 양가죽) 가죽으로 돼 있지만 두께는 얇아요. 또 허벅지 받침이 길게 나와서 편안한 자세로 앉을 수도 있죠…” 그렇게 말하더니 뒷좌석을 접으면 트렁크에 누워 차박(차에서 자는 캠핑)도 할 수 있다며 아예 드러눕는다.
“제 키가 167㎝여서 좀 큰 편인데 그래도 공간이 충분하죠?”
차를 설명하는 데만 1시간이 흘렀다. 바람이 계속 부는 탓에 실내 촬영분이 평소보다 더 길었다고 최우빈이 말한다. 이제는 차를 시승하는 일정이 남았다. 최우빈은 차를 몰면서 최대한 많은 정보를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려고 한다. 통상적으로 사람들이 대리점을 방문해 차를 시승해도 시간이 짧아서 장단점을 파악하기 어려운 사정을 감안해서다. “에어서스펜션(공기 압력을 사용한 충격흡수장치)이 장착돼서 보시죠, 여러분. 지금 방지턱을 넘어가는데 몸이 흔들리지 않죠. 다음은 충격이 심하기로 유명한 플라스틱 방지턱을 지나가 볼게요. 와, 역시 안정적이네요.” 그러면서도 아쉬운 점을 빼놓지 않는다.
“승차감은 한 체급 위의 차량과 비슷한데 바람 소리나 노면 소음이 좀 들리는 편이에요. 드라이브 모드가 따로 없어서 차고 조절도 안 되고 특히 디스플레이가 너무 작아요. 나이 많은 분들이 타시면 글자 폰트도 작아서 운행 중에 불편할 겁니다.”
인간이 알고리즘의 뜻을 어떻게 알까
촬영을 마친 뒤에도 일은 계속된다. 경기 김포의 사무실에서 최우빈은 제조사나 행사장에 전화를 걸어 업계 동향을 파악하고 내친김에 영업도 한다. 그러면서 모니터로는 신차들을 살피면서 다음 콘텐트를 구상한다. 정보혜는 화장을 지울 틈도 없이 자신의책상에 앉아 곧바로 영상을 편집한다.
“업무 강도로 따지면 편집이 더 힘들어요. 2시간 촬영본을 20분 내외로 줄여야 하는 데다 자막도 달아줘야 해서. 지금 밀린 영상이 5개인데 이 속도면 오늘도 야근이네요.”
최근 두 사람의 스트레스라면 구독자 수가 더 이상 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때는 50만 명까지 내다 봤지만 수개월째 23만 명에 머무르고 있다. 카비니의 주 수입원은 협찬이나 광고 그리고 유튜브 시청자 수이지만, 채널의 영향력을 보장하는 구독자 수도 굉장히 중요하다. 최우빈은 불경기에 자동차 시장이 둔화되면서 사람들이 차에 대한 관심이 떨어진것으로 판단한다.
“시청자라는 파이는 한정되는데 자동차 리뷰어는 늘어났어요. 그러다 보니 영상 퀄리티보다 신차가 출시되면 누가 먼저 리뷰해서 업로드하느냐의 싸움이 됐어요.” 언론계의 속보 경쟁과 비슷하다는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인다.
“전환점이 필요한 때예요. 저희에겐 기회일 수 있죠.”
그래서 올해 초부터 콘텐트의 다각화를 시도했다. 자동차라는 주제 안에서 창의적인 요소를 넣은 숏코미디가 그것이다. 최근에는 남자친구의 차 블루투스에서 낯선 여자의 이름이 등록된 걸 본 여자친구가 극도로 예민해져서 남자친구를 쏘아붙이는 내용의 영상을 올렸다. 대사가 많지도 않다. 툭툭 질문을 던지는 정보혜나 어떻게든 상황을 모면하려 횡설수설하는 최우빈의 연기가 유머러스하다.
유튜브 세계에서 정해진 답은 없다. 정보혜는 기대와 달리 조회수가 처참한 적이 있다고 말한다. 지난겨울, 그녀는 헬멧(안전모)을 쓰고 스쿠터를 몰면서 음식 배달하는 콘텐트를 찍었다. 운전이 익숙지 않아 몇 번이나 아스팔트에 넘어졌고 무릎에 후시딘을 발라가며 날이 저물 때까지 동네를 쏘다녔다. 두 사람은 자동차 리뷰어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획기적인 콘텐트라 자부했지만 조회수는 고작 1만 뷰. 백날 노력해도 방향을 잘못 잡으면 헛수고라는 얘기일까?
정보혜가 덧붙인다. “어떤 콘텐트가 대박이 날지는 아무도 몰라요. 답은 유튜브 알고리즘만 알고 있으니까. 그러니 일단 하는 데까지 해보는 거죠.”
안덕관 월간중앙 기자 ahn.deokkw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