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한대행의 권한대행 역할은 매우 제한적"이라던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은 어떻게 취임 나흘 만에 여권이 그토록 만류하던 헌법재판관 임명을 전격 발표했을까.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최 대행은 지난해 12월 31일 예정된 국무회의를 오전 10시에서 오후 4시30분으로 미루고, 당일 아침 소수 참모에게 헌법재판관을 임명하는 원고와 임명하지 않는 원고를 동시에 준비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이어 그날 오후 1시쯤 국회에서 진행된 우원식 국회의장과 여야 대표 회동을 지켜봤다. 이 자리에서 헌재 관련 협의 가능성이 거론되면 최 대행은 재판관 임명을 보류하려 했지만 별다른 진척이 없자 오후 국무회의에서 곧바로 헌법재판관 임명을 발표했다.
당초 최 대행은 한덕수 국무총리가 권한대행을 맡던 때에도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와 함께 한 총리를 찾아가 “나라와 경제가 어렵다. 불확실성을 빨리 끝내려면 헌법재판관 임명은 하셔야 한다”는 취지로 건의했다. 정부 핵심 관계자는 “버틴다고 달라질 것은 없고, 오히려 정치적 불확실성과 경제적 위기만 커진다는 것이 애초 최 대행의 생각이었다”며 “특검 거부권과 헌법재판관 임명 논란을 같이 종결하고 새해를 맞이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최 대행의 관료적 성향을 거론하는 이들도 있다. 윤 대통령과 운명을 같이하는 정치인 출신 공무원과 달리, 관료 출신인 최 대행은 권력의 향배와 정권 교체 가능성, 조직의 안정에 보다 민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최 대행은 과거 박근혜 정부 청와대에서 비서관으로 근무했고,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 검찰 수사를 받았었다. 전직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최 대행이 용산에서 경제수석으로 근무할 때 메모를 잘 안 했다. 향후 수사에서 증거로 쓰일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최 대행은 윤 대통령이 가장 아끼던 참모였다”며 “더 버텨줬어야 여당도 협상 공간이 생기지 않았겠나”라고 답답해 했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과 유상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유철환 국민권익위원장, 김태규 방송통신위원장 권한대행, 이완규 법제처장 등이 목소리를 높였다고 한다. 최 대행은 “월권을 한 측면이 있다. 홀로 결정했고, 사퇴도 각오하고 있다”고 답한 뒤 회의 중 간담회장을 박차고 나갔다. 눈시울이 붉어지며 울먹이기도 했다. 같은 기재부 출신인 김완섭 환경부 장관이 최 대행을 따라 나가며 간담회는 중단됐다. 이날 국무회의에 참석했던 한 인사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결국 기재부 마피아가 윤석열 정부를 팔아넘겼다”고 성토했다.
이런 가운데 대통령실은 1일,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을 포함해 수석비서관 이상 고위 참모진 전원이 사의를 표명했다. 정 실장의 사표 수리를 두고 대통령실과 기재부 사이에 진실 공방도 벌어졌다. 대통령실 측은 “정 실장의 사표는 오전에 수리가 된 것으로 전달받았다”고 했고, 기재부 측은 “모두 반려했다”고 밝혔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정 실장은 오늘 이후 출근하지 않을 생각도 갖고 있다”며 “정 실장이 그만둔다면 사표 수리와 상관없이 수석들 모두 대통령실을 나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