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난 때마다 백성들 이상한 힘 발휘"…현 시국 꿰뚫은 이 영화

무겁지만 묵직한 메시지를 던지는 영화 두 편이 연초 극장가에서 흥행 청신호를 켰다.  
안중근 의사(현빈)의 이토 히로부미(릴리 프랭키) 암살을 다룬 영화 '하얼빈'(지난달 24일 개봉)과 미국의 내란을 종군기자의 시선으로 그린 '시빌 워: 분열의 시대'(이하 '시빌 워')다. 

영화 '하얼빈'은 1909년, 하나의 목적을 위해 하얼빈으로 향하는 이들과 이를 쫓는 자들 사이의 숨 막히는 추적과 의심을 그린 작품이다. 사진 CJ ENM

영화 '하얼빈'은 1909년, 하나의 목적을 위해 하얼빈으로 향하는 이들과 이를 쫓는 자들 사이의 숨 막히는 추적과 의심을 그린 작품이다. 사진 CJ ENM

 
하얼빈은 3일 현재 318만 관객을 모으며 흥행세를 이어가고 있고, 지난달 31일 개봉과 동시에 외화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시빌 워'는 4만8000여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을 예고했다. 
'하얼빈'은 개봉 초 무거운 톤과 느린 전개 등이 흠결로 지적됐지만, 끓어오르는 감정 분출 대신 나라 잃은 분노와 비통함을 가슴에 꾹꾹 눌러 담은 연출이 외려 독립투쟁의 숭고미를 자아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안중근을 포함한 독립투사들의 인간적 고뇌도 비중 있게 그려냈다.  

특히 특정 대사가 '불법 비상계엄을 시도한 대통령 탄핵'이란 암울한 시국과 맞물려 관객의 공감을 자아내고 있다. "조선이란 나라는 어리석은 왕과 부패한 유생들이 지배해 온 나라지만 저 나라 백성들이 제일 골칫거리야. 받은 것도 없으면서 국난이 있을 때마다 이상한 힘을 발휘한단 말이지."(이토 히로부미) 
이번 내란 사태에서 계엄군을 온몸으로 저지하고, 평화적 탄핵 시위를 펼친 시민들의 단합된 힘을 연상케 한다는 반응이다.  

영화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 역을 맡은 일본 배우 릴리 프랭키. 사진 CJ ENM

영화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 역을 맡은 일본 배우 릴리 프랭키. 사진 CJ ENM

 
이와 관련, 우민호 감독은 "어디를 가나 자신을 노려보는 조선 민초들의 눈빛에 두려움을 느낀 이토가 실제로 한 말"이라며 "그 말이 지금 시대에 또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지게 돼 아이러니하면서 서글프다"고 말했다. 
"끝까지 싸우지 않으면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는 안중근의 대사 또한 국가비상사태에 처한 국민들에게 큰 울림을 주는 대사로 꼽힌다. 

장기 집권을 노리는 파시스트 대통령 때문에 나라가 여러 진영으로 분열된 미국을 배경으로 한 '시빌 워' 또한 우리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관객 반응이 나오면서 입소문을 타고 있다. 역사상 최악의 미국 내전 상황을 기록하기 위해 사선을 넘나들며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네 명의 기자들이 주인공이다.    


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의 한 장면. 미국이 여러 진영으로 분열돼 최악의 내전을 겪는 상황을 그렸다. 사진 마인드마크

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의 한 장면. 미국이 여러 진영으로 분열돼 최악의 내전을 겪는 상황을 그렸다. 사진 마인드마크

 
내란을 초래하고, 반정부 시위대에 폭격까지 감행한 대통령을 인터뷰하기 위해 워싱턴 DC로 향하는 기자들은 전장의 끔찍한 참상과 정치 위기가 불러온 경제난 등 디스토피아에 가까운 극도의 혼란을 목격한다.
"너는 어느 쪽 미국인이냐"면서 기자들의 가슴에 총부리를 들이대는 민병대원의 광기는 내 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극단적 대립과 혐오로 얼룩진 우리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대국민 담화 준비에만 골몰하는 대통령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한 번도 사과하지 않는다. 불리한 전황에도 정부군이 반란군을 진압하고 있다는 거짓말을 한다. 이는 신과 건국 이념의 승리라고 주장하면서 갈등을 더욱 부추긴다.   

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의 한 장면. 미국 최악의 내란을 초래한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를 준비하고 있다. 사진 마인드마크

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의 한 장면. 미국 최악의 내란을 초래한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를 준비하고 있다. 사진 마인드마크

 
영화는 민주주의의 퇴행과 정치적 양극화가 초래하는 '분열'이 '내란'으로 이어지는 비극이 단순히 영화적 상상에 그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섬뜩한 경고를 던진다. 영화를 관람한 '서울의 봄' 김성수 감독은 "이 영화는 무섭다 못해 섬뜩하다. 아마도 현실 세계가 전쟁과 갈등으로 들끓고 있기 때문"이라는 평을 남겼다. 

'이 시국에 미친 듯이 몰입할 수 밖에 없는 영화' '그 어느 때보다 우리의 현실과 닮아있는 작품' 등의 관객 평이 이어지고 있다. 단, 왜 이런 사태가 발생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고, 영화의 메시지가 뚜렷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황재현 CGV 전략지원 담당은 "'하얼빈'의 경우 독립운동가의 인간적 고뇌, 울림이 큰 대사가 부각되면서 관객을 꾸준히 끌어들이고 있다"면서 "지금 우리의 현실을 연상케 하는 '시빌 워' 또한 입소문이 퍼지고 있어 흥행에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